《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2021. 11. 6. 19:01책 · 펌글 · 자료/예술.여행.문화...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은 누구를 위해 슬퍼하는가?
장애인, 추방자, 유대인, 창녀, 유색인, 자살자, 유기아와 사생아, 성 소수자
세상의 모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소외된 자들의 예술



●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 오페라 평론가, 문화 예술 칼럼니스트, 풍월당 대표 등 명함이 모자랄 정도로 직함이 많은 박종호. 그의 책 『불멸의 오페라』는 오페라의 바이블로, 그가 운영하는 클래식 전문 음반 매장 ‘풍월당’은 클래식 마니아들의 성지로 유명하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불멸의 오페라』,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등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그가 새 책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를 선보인다. 이 책에는 그가 수백 차례 유럽 여행을 다니며 수천 편의 공연을 보고 들은 경험과, 책 뒤편에 밝힌 180여 편에 이르는 책, 영화, 공연 영상 등의 참고 자료를 섭렵한 그의 전방위적 지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사람이 시인이자 음악가, 철학자이며 동시에 과학자이자 정치가, 또는 건축가이거나 의사이기도 했다. 시와 음악, 역사와 정치, 문학과 철학을 함께 논하는 종합 예술가이자 교양인들이었다. 그런 예술이 점차 세분화되고 상업화되어 가면서 예술은 추구하던 원래의 목표를 잊고 길을 잃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박수와 칭찬, 돈과 권력, 명예에 취하기 시작했고, 예술 향유자들도 예술은 그저 즐기는 것이라거나 위로받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게 되었다. 심지어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자랑이나 과시로 삼기도 한다.
이에 박종호는 “예술은 밝은 곳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가려운 등이나 긁어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잘난 사람들의 남아도는 시간을 때워 주거나, 고급스러운 취미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남과 다른 고상함을 보여 주기 위해, 그렇게 해서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라고 말한다.

● 예술, 우리의 마지막 희망

그렇다면 도대체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예로부터 예술은 주로 약자들, 소수자들, 소외된 자들에 관해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예술가 그 자신들 역시 소외된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회가 가진 편견과 무지, 인간의 탐욕, 위선적인 체제, 그리고 종교와 권력의 이기주의에 의해서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대신해서 외치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그것이 예술가의 소명이다. 저자는 “어두운 곳을 비추고 지치고 버려진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예술이 소외되고 버려진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다. 수많은 문학, 연극, 음악, 오페라, 미술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약자들이었다. 가장 화려해 보이는 장르인 오페라만 봐도, 『나비 부인』의 초초상은 소녀 가장,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는 매춘부, 『카르멘』의 주인공은...

 

 

출판 2016. 11.30

 

 

 

목차

 

들어가며 -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다
프롤로그 - 소외된 자들의 예술

1 장애인 - 천형으로 짊으진 고통과 모멸
2 추방자 - 떠도는 자들에 의해 탄생한 예술
3 유대인 - 박해와 방랑으로 이어진 수천 년
4 창녀 -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가 버린 그녀들
5 유색인 - 인종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하는 세상을
6 자살자 - 그들에게 열려 있던 유일한 비상구
7 유기아와 사생아 - 정말 축복받아야 할 아이들
8 성 소수자 - 이해받지 못하는 사랑의 진실

에필로그 - 진짜 예술 같은 세상을 기다리며
나가며 - 잘못과 반성을 거듭한 예술의 여로

 

 

 

 

박종호 평론가, 칼럼니스트

 

풍월당 대표, 오페라 평론가, 문화 예술 칼럼니스트, 정신과 전문의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신은 품격 있는 교양인, 균형 잡힌 경계인이 되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오늘도 공부하고 있다.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고 관찰하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정작 필요한 사람은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가진 관찰자라고 생각하는 그는,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도전도 거부하지 않는다. 1993년 첫 유럽 여행 이후, 지금까지 수백 차례 유럽을 다녀왔지만, 그는 매번 새로운 주제로 여행을 떠난다. 2003년 우려와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클래식 음반 매장 풍월당을, 2007년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풍월당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풍월당과 풍월당 아카데미가 고양된 정신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공적 장소가 되기를 꿈꾸며 경영인의 자리를 고집하지 않고, 풍월당 아카데미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2, 3, '불멸의 오페라' Ⅰ, Ⅱ, '오페라 에센스 55',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유럽음악축제 순례기', '박종호의 이탈리아 여행기: 황홀한 여행',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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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태와 치장이 예술의 전부가 아니다." ─ 게테 콜비츠

 

책을 읽지는 않아도 책을 냈다는사람은 부지기수다. 우후죽순 건립한 공연장은 텅벙 비었는데 너나 나나 음악가고 성악가고 작곡가다. 명함에 화가고 시임이고 수필가라고 파고 다니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동네마다 거리마다 교습소와 학원이 넘쳐나고 아침부터 밤까지 악기 들고 레슨 받으러 뛰어다니고 차에 실려 다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예술적인 나라가 되었는가?

 

대체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은 다 같은 것이다. 장르는 다르나 내용은 같다. 방식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어두운 곳을 비추며, 지치고 버려진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밝은 곳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가려운 등이나 긁어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잘난 사람들의 남아도는 시간을 때워주거나, 고급스런 취미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고상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약자에 대한 위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강자에 대한 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술은 이 땅의 잘못된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강자들의 정신을 깨우는 것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진정한 예술은 사람들의 얼어붙은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 한다.

 

─ 머리말 중에서

 

 

 

 

 

 

2

 

슈베르트는 너무 가난하여 자신의 피아노를 가졌던 적이 거의 없다. 슈베르트의 곡들은 정작 그 자신은 실제로 들어보지도 못한 곡들이 수두룩했으며, 많은 곡들은 그의 머릿속 상상의 피아노로 작곡된 것이다.

 

 

 

 

3

 

하이쿠 최고의 시인 마츠오 바쇼(1644-1694)는 어린 나이에 무사의 수련을 쌓기 위해 무사이자 하이쿠의 스승의 수하로 들어갔다. 하지만 스승이 죽자 무사의 길을 접고 강변에 작은 압자를 지어 은거에 들어갔다. 하이쿠를 짓는 시인으로 살기로 한 그의 나이 23세였다.  그런데 그의 하이쿠가 크게 반향을 일으키자 열광하는 사람들의 유희성에 실망하여 그는 41세에 방랑의 길을 떠났다.

 

해(日)와 달(月)은 백년 과객이요

오고가는 해(年) 또한 나그네.

/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4

 

"경들이시여, 상원의원인 당신들이 누리는 특권의 아버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연입니다.

특권의 아들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악용입니다.

경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들의 모든 소유하는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헐벗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중에서

 

어떤 정치가도 어떤 개혁가도 하지 못하는 얘기를 먼저 하는 이는 빅토르 위고,

어떤 신문도 교과서도 싣지 못한 글을 먼저 쓰는 것은 소설, 예술이다.

 

 

 

5

정약용은 "유배지에서도 '여덟 가지 친구'를 만날 수 있으니 외롭지만은 않다"며

그가 '八友'라고 이름 붙인 유배지의 친구들은 

바람,

달,

구름,

비,

산,

물,

꽃,

버들, 이다.

 

그 벗들을 만나 즐기는 것을

음풍(吟諷),

농월(弄月),

간운(看雲),

대우(對雨),

등산,

임수(臨水),

방화(訪花),

수류(隨柳)  라고 부른다.

 

 

 

 

6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1798-1857)는 그리스 태생이지만 어린시절부터 이탈리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탈리아어로 창작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오랜 외국생활 끝에 아예 조국의 언어를 잊은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시인이 된 다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이 그리스 말을 제대로 모르는 것을 깨닫고 큰 자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 전국을 방랑하면서 만나는 시골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토속어를 채집했다. 결국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모국어로 써낼 수 있었던 詩歌 「자유의 찬가」는 나중에 그리스 국가로 채택된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