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2021. 8. 16. 19:55미술/미술 이야기 (책)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당신에게 보여주고픈 그림들 ─

 

2018.3.6. 

 

 


저자 이연식은 미술사가로서 미술과 관련된 저술과 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를 졸업했다.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눈속임 그림》 《아트 파탈》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괴물이 된 그림》 등을 썼고, ‘무서운 그림’ 시리즈,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 《맛있는 그림》《다케시의 낙서 입문》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등을 번역했다.

 

 

 

 

 

목차

들어가며 나이든 예술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1장 나이들어 맞닥뜨린 혼란과 절망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2장 외면받는 거장의 힘과 자존심 -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1606-1669)
3장 미래를 가리키는 거인 -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1775-1851)


4장 과거를 거듭 정리하고픈 욕망 - 에드가 드가 (1834-1917)
5장 기억에 의지한 분투 - 클로드 모네 (1840-1926)
6장 질서와 분방함 사이에서 찾아낸 대답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9)


7장 갈등을 이겨내고 일군 위대한 종합 - 바실리 칸딘스키 (1866-1944)
8장 번민의 롤러코스터와 갑작스런 추락 - 잭슨 폴록 (1912-1956)
9장 모든 게 거짓이라는 자기부정 - 마크 로스코 (1904-1970)


10장 인생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마지막 수수께끼 - 뒤샹
그럼에도 다루지 않은 작가들

 

 

 

 

 

책 속으로

이 책에 대한 구상은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화가와 조각가의 작품집을 적잖이 봤다. 작품은 대체로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 예술가들은 초반의 미숙한 시기를 거쳐 중년에 스타일이 만개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작품이 점점 이상해졌다. 왜 예술가는 가장 좋은 순간에 멈추지 못하는 걸까? 왜 작업을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지지 않는 걸까? 노년의 예술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작품에 딸린 비평이나 해설을 봐도 분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술가들이 나이들어 작품이 이상해지는 양상에는 묘하게도 어떤 공통점이 있다. -6쪽

한때 서유럽의 모든 군주가 탐내던 화가 티치아노가 같은 주제를 두 번 그린 그림은 종종 서로 비교된다.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다. 한 점은 50대 초반인 1540년대 초에, 또 한 점은 나이 여든이던 1570년에 그렸다. 젊을 때 그린 산뜻하고 정돈된 그림과 달리 나이들어 그린 그림에서는 윤곽선이 무너지면서 세부가 뭉개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그림 속 인물들은 광채와 어둠에 휘감긴 모습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장면에 대한 비감은 더욱 깊어진다. -7쪽

미켈란젤로는 오래 살았다. 거의 90년을 살았으니 오늘날 기준으로도 장수한 셈이고, 당시로서는 경이적이었다. 오랫동안 대체로 건강하게 살다 보니 작품도 많이 남겼다. 그는 노년으로 갈수록 마무리에 신경을 덜 썼다. 작업과정을 거의 마치고도 표면을 깨끗하게 다듬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 언제부턴가 미켈란젤로의 마음속에서는 회의가 일었다. 형상을 끄집어낸다는 생각은 그럴싸했지만, 점점 돌 속의 형상이 내는 목소리가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피렌체의 피에타’라고도 하는 〈반디니의 피에타〉는 늙은 예술가가 겪은 혼란과 좌절을 보여준다. -25쪽

렘브란트가 20대 초반과 중반에 그린 놀라운 그림들과 30대와 40대에 그린 그림들을 비교하면, 20대 때 그림은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30대와 40대 때 그림들은 편안해지면서 느른해진다. 서른이 넘어서 대충 40대 초반까지는 그림들이 밋밋하다. 그런데 40대 중반 무렵부터, 그러니까 1650년대 들어서면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색다른 조짐을 보인다. 렘브란트가 자신과 친했던 부르주아, 얀 식스를 그린 그림은 이런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45쪽

터너가 스스로 단단하게 일구어간 확신은 중년에서 노년에 걸치는 기간 동안 예술가가 지니게 된 힘을 보여준다. 주변에서는 터너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저 괜찮은 예술가가 나이들어서 이상해졌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겪어온 예술가 본인은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음을 깊이 느끼고, 그런 확신을 바탕으로 묵직한 걸음걸이를 보여준다. -83쪽

젊었을 적 드가는 수목과 하늘을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동료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풍경을 그리는 걸 비아냥댔다. 헌병대를 동원해서 그런 화가들을 성가시게 했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했다. 그랬던 드가가 정작 노년이 되자 점점 풍경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드가가 그린 풍경은 모네나 르누아르, 시슬리가 그린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크게 다르다. 차갑고, 으스스하고, 우울하다. 비관적이고 멜랑콜릭한 드가의 기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95쪽

1910년대 전후로 모네는 수련을 자신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앞서 1880년대 말에 수련을 두어 점 그리다가 말았는데, 한참 뒤 괜찮은 거 없나 하고 앞서 그린 작품을 뒤적이다가 수련을 발견하고는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예전에 썼던 메모나 노트를 우연히 다시 보고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처럼 말이다. 모네는 일찍부터 물에 비친 풍경을 좋아했다. 수면이 햇빛을 받아 일렁이는 모습, 실체가 아닌 허상이 만들어낸 리드미컬한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수련은 그런 매혹을 되살릴 좋은 주제였다. -128쪽

 

 

 

출판사서평



“예술은 축적된 문화의 관례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적 활동이다. 이런 점 때문에 예술은 노년과 연결된다. 노년은 저마다 이어온 관례와 쌓아온 경험이 마침내 답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 노년은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나이든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세계는 노년과 삶에 대해 흥미로운 물음을 끌어낼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에서는 총 10명의 예술가(그리고 뒤에 몇몇 더)의 말년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모두가 아는 그런 작가들이다. 책이나 방송,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에서도 가장 많이 소개됐을 이 작가들의 작품은 대개 한창 때의 걸작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성기의 거장과 그들의 걸작만을 정지화면처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에서 다루는 예술가와 작품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이야기의 방향은, ...시간을 쌓으며 노년까지 다다른 예술가들과 그 말년의 작품으로 향한다. 예술가들도 모두 나이가 들었고, 자신이 겪어온 세월이 작품에 담겼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미켈란젤로. [피에타]와 [다윗] 같은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조각가라는 명성을 얻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경이로운 솜씨로 완성시킨 예술가.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무리에 어려움을 겪고 뱃심은 온데간데없이 혼란이 넘쳐난다. 젊은이는 미숙함과 달뜸이 있기에 오히려 확신으로 가득찰 수 있음을 보여준다.
렘브란트는 17세기 초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다. 10대 후반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일찍 성공을 거뒀는데, 나이가 들수록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운을 겪다 세상을 떠난다. 일찍 성공을 맛보게 한 그 화풍이 렘브란트의 발목을 잡았다. 대중의 취향이 엄숙하고 드라마틱한 화풍을 떠나버렸음에도 렘브란트는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대중이 떠난 곳에서 렘브란트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 말년의 작품들은 예술적 성취와 불운한 인생에 대한 회한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말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많이 젊은 44세에 세상을 떠난 폴록은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다. 바닥에 눕힌 화폭에 물감을 흩뿌리는 드리핑 기법으로 추상화계의 일약 스타가 된 폴록은 그 전성기가 너무 짧았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별로 없었고 그 연약함을 폭음이나 내지름처럼 폭력적으로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 예민한 예술가가 뚝심이 있었다면, 조금만 참을성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스타일을 있는 힘껏 밀어붙이지 못하고 다시 구체적인 형상으로 돌아간다. 그 국면이 비극적이다.
색면회화로 명성을 얻은 로스코.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종교적 감흥 같은, 경건한 감정을 느끼며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로스코도 자신의 작품이 불러오는 효과를 알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골몰했다. 그런데 로스코는 명성이 높아질수록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려웠다. 평생 자신이 비주류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칭송할수록 사기꾼이 되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작품도 어두워졌다. 우울감에 시달리던 로스코는 한창 칭송받을 때 자살했다. 인생은 모순적이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게 정말로 갖고 싶었던 건지 확실하지 않고, 정작 얻고 나서는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가 없다.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는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폴록, 로스코 외에 터너, 드가, 모네, 르느아르, 칸딘스키, 뒤샹 그리고 몇몇 작가들을 더 소개한다. 이들의 젊은 시절 작품과 노인이 된 후 작품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듯 노년에 맞닥뜨린 국면이 모두 다르다는 점, 그들이 말년에 남긴 작품들 모두 예술과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답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점, 그래서 아직 늙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 노년이란 뭔가 기대할 만한 때이기도 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그리고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
이 책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사이드는 문학과 음악의 영역에서 나이든 예술가들이 보여준 기이한 모순과 비타협적인 태도를 다뤘다. 오래 전부터 저자는 나이든 예술가의 세계를 가장 쉽고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은 조형예술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저자가 바라듯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는 사이드 책에 대한 조형예술의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르누아르의 주변 사람들은 〈목욕하는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뒤랑 뤼엘이 르누아르의 새로운 그림들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르누아르는 전속 화랑을 바꿔버렸다. 인상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신예 평론가들은 왜 스스로의 장점을 내던지고 전통적인 화풍을 흉내내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그리느냐고 르누아르를 질타했다. -155쪽

대략 1947년부터 1952년 무렵까지 폴록은 그를 유명하게 만든 드리핑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하지만 점차로 그는 자기 작업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아주 간단히 말해 그는 자신의 작업을 어떤 식으로 계속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210쪽

체제에 비판적인 젊은이들은 한창 때에는 서로 누가 더 저항적인지를 열렬히 과시한다. 하지만 결국 제 앞가림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이념의 폐허를 떠나 실속을 좇는다. 그런데 저항에 대한 기억(저항의 제스처에 대한 기억)은 여생에서 어떤 강박처럼 이 사람을 따라다닌다. 로스코도 그랬다. 로스코는 평생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반항하는 자라고 생각했다. -221쪽

1960년대에 들어서 팝아트와 개념미술이 등장하면서 미술계에서 뒤샹의 지위는 크게 달라졌다. 기성품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아트의 방법론은 레디메이드의 후배인 셈이었고, 예술가의 아이디어 자체가 바로 예술이 된다는 개념미술의 방법론 또한 뒤샹의 것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이미 앞질러 실현되었음을 알아차리고는 뒤샹에게 찬사를 보냈다. 뒤샹은 젊은 예술가들의 우상이 되었고 이제 그의 회고전이 각지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260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1

 

1. 구상하는 단계

2. 예비작업 던계

3. 본격적인 작업

4. 작품을 완성에 이르게 하는 후반작업

5. 마무리 작업

 

 

미켈란젤로 (1564년 / 90세) - <론다니니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1555년 / 80세)의 '<반디니의 피에타>

 

 

 

 

2

<호수 위로 지는 해>

 

<비와 증기와 속도: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터너는 색채 자체에 점점 더 몰두했다. 특히 적극적이 된 것은 1820년대 이후 그러니까 나이 50을 전후해서고,

보란 듯이 이런 그림을 내놓은 건 1840년대 60대 후반이었다.

터너의 그림은 묘사도 적어지고 붓질도 적어졌다.

터너는 뭔가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형태로 붙잡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터너의 그림은 그림이 시작되는 지점과 사라지는 지점 사이를 부유했다.

터너는 고전적인 풍경화의 엄숙한 아름다움에서 시작하여 낭만주의의 격정을 거쳐

말년에는 미증유의 예술을 예고했던 예술가다.

영국에는 터너의 후계자가 없었다. 원로 예술가의 뭔가 난감한 말년 작품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뒷날 프랑스의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터너를 재발견했다.

터너는 구체적인 사물에 매달리는 대신 빛과 대기를 보여주는 것을 회화의 방향으로써 보여주었고,

회화를 이루는 형태와 색채의 근본적인 조건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추상미술을 예견했다.

당대의 유행 속에 안온하게 인정받는 걸 포기하고 세계와 직접 대면하려 노력했던 터너는

노년에 주어진 자신감으로 더욱 새롭고 근원적인 예술을 탐구하여 뒤에 오는 이들에게 염감을 주었다.

 

 

 

3

르누아르를 싫어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가리켜 '미학적인 테러'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끔찍스러워 한다.

그의 그림이 중산층의 안락함과 평화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살피지도 않고,

무엇보다 작품세계 전체가 비판적인 태도나 숙고하는 전망 같은 걸 결여하고 있으며,

혁신적인 관점도 없고, 그저 본능적이며 감각적이고, 순응적이며 지리멸렬하다는 것이다.

 

드가는 밖에서 보기에는 전통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전통에 주눅들지 않았다.

드가는 전통을 해체하고 재해석했다.  반면 르누아르는 전통에 아첨했다.

세속적인 성공에 대해서도 드가와 르누아르는 생각이 달랐다.

드가는 대중의 취향을 불신했던 터라 예술가가 너무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아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르누아르는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호의와 인정을 받고 싶었다.

 

 

 

4

 

명성을 누리는 이들 중 어떤 이는 자신에게 당연히 명성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에게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뭔가를 잘못 알거나 뭔가를 알아채지 못한 때문에 자신에게 갈채를 보낸다고 생각한다.

착오가 바로 잡히고 대중이 정신을 차리면 자신을 외면할 것이다.

앞서 뻔뻔스럽게 갈채와 명성을 누렸던 것에 대해서도 따지고 비웃을 것이다.

명성의 이면에는 공포가 도사린다.

폴록은 부끄러웠다.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 작품들이 환영받는다는 것에.

하지만 환영받는 방향으로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언젠가는 알아볼 것만 같다. 자신이 속빈 강정이라는 걸.

대중의 갈채를 뿌리칠 자신은 없다. 갈채가 만족감을 주는 걸까? 그림이 팔리니 좋은 건가?

예술가는 명성의 노예가 되고, 대중은 예술가를 노예로 부린다. 광대처럼.

예술가는 색다른 뭔가를 꺼내 보여서 대중을 놀라게 할 수도 있지만, 순식간에 외면당할 수도 있다.

두렵다.

 

베티 파슨스 갤러리에서 1950년 11월 폴록의 개인전이 열렸다. 작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

폴록이 드리핑 작업을 내보인지 3년 남짓밖에 안됐는데 사람들은 금세 익숙해져버렸다.

작품 하나 하나가 다르지만 사람들은 그게 그거라고 여겼다. 시장에서 폴록의 작품은 포화상태였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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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1903-1970)는 뒷날 명상적이고 신비롭고 신중한 예술가처럼 보이게 되었지만,

젊을 적에는 뭔가 돋보이고 싶어하는 타입이었다.

로스코는 한때 배우를 꿈꿨고 스스로의 연기력에 꽤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배우로 활동하기에 여의치 않았다.

그는 뉴욕에서 미술의 세계에 접했고 여기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발견했다.

 

로스코는 1925년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 들어가 맥스 웨버라는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로스코와 마찬가지로 러시아계 유대인이었던 웨버는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예술을 접했다.

웨버는 미술이 내면의 깊은 것을 끄집어내는 예언적인 구실을 한다고 강조했다.

로스코가 뒤에 예언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 웨버를 만난 때문일까,

원래 예언자적이었던 로스코가 웨버의 가르침을 빨아들인 걸까?

젊은 로스코는 철학과 문학에 몰두했고 신화와 심리학에 대해서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작업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젊은 로스코는 과시욕과 무력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호스코의 畵業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사실주의 시기, 두 번째는 초현실주의 시기, 세 번째는 색면회화 시기다.

1943년 무렵부터 로스코는 추상화가인 클리포드 스틸과 교류하면서 색채로 가득한 평평한 화면의 힘을 의식하게 됐다.

스틸에게서 감화를 받지 않았다면 로스코의 그림은 구제불능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담하면서도 세련된 마티스를 발견하면서 로스코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섰다.

마침내 1940년대 말 로스코는 뭔가 구체적인 것을 암시하는 형상들을 모두 없애고 물감 만으로 캔버스를 덮기 시작했다.

그 결과 로스코의 그림은 크고도 모호한 세계를 보여주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 미술계는 팝아트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추상미술은 고압적이고 엘리트적이고 오만해보였다.

이제는 기득권을 쥔 채로 뭉개고 앉은 퇴물처럼 느껴졌다.

로스코는 자신이 예술적으로 막다른 길에 이른 게 아닐까 두려워했다.

마티스의 그림이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밝고 투명해 진 것과 달리 로스코의 그림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로스코는 건강도 나빠지고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았다.

 

1970년 2월 25일 로스코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아무런 암시도 유서도 없었다.

로스코는 자신의 삶도 건사하지 못했으니 로스코의 삶과 예술은,

'예술이 인간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위로하지도 못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그림은 명상적이다. 나아가 종교적이고 비극적이고 연극적이다.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으니까 보는 이가 뭐든지 투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서 관객이 느끼는 감정과 예술가가 그림에 담은 감정이 같은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로스코는 관객과 교감하기를 원했다고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예술가와 관객은 저마다 자기만의 감정에 빠져 헤매고 다닌 건지도 모른다.

로스코는 스스로 사제(司祭)인 양 굴었다. 사제는 절대적인 힘과 연결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힘이 약하거나 사라지면 중갸자는 가치를 잃는다.

로스코는 사제놀이에 취했다가 꿈에서 깨어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나니 비참했다.

그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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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이든 예술가는 위기를 겪는다.

스스로가 그때까지 해왔던 작업이, 만들어 왔던 작품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 사로잡힌다.

요컨대 자신이 해온 것이 죄다 헛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에게든 닥쳐온다. 중년에서 노년에 이를 무렵에 ─.

"나는 헛살아온 것 같소."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누구보다 잘 해왔잖아요."

"그래? 정말 그런가? . . . . ."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지금껏 해온 건 부질없소."

 

 

 

 

보티첼리

 

제임스 티소

 

오딜롱 딜롱

 

앙리 가르티에 브레송

 

살바도르 달리

 

모네 / 르누아르

 

마티스 / 피카소

 

 

 

"내게 10년이나 15년을 더 준다면 조각을 온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을텐데."

--- 90세 미켈란젤로

 

"하늘이 내게 5년의 수명을 더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될 수 있을텐데."

--- 89세 임종전 가쓰시카 호쿠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