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너머 그대에게』

2021. 8. 22. 12:48미술/미술 이야기 (책)

이주향의 마음 갤러리, 그림 너머 그대에게

2012. 5. 10.  품절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군요. 이름은 귀에 익는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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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 당신을 위한 이주향의 마음 갤러리 『그림 너머 그대에게』.

 

이 책은 2011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일간신문에 저자가 ‘이주향의 철학으로 그림 읽기’로 매주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서양 미술을 매개로 신화와 종교, 철학 이야기를 오롯이 들려주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  마르크 샤갈의 ‘거울’,  앙리 마티스의 ‘원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자’,  마르크 샤갈의 ‘떨기나무 앞의 모세’,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의 그림 속에 담긴 집단 무의식을 통찰하고, 신화 속에 갇힌 생의 지혜를 풀어내고, 종교 속에 숨겨진 세상의 비밀을 들춰 보인다. 그림 속에 담긴 다양한 생각들을 읽어보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이주향 소설가

현 수원대학교 인문대 교양교직과 교수로 「심성내용의 비개성주의적 개별화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나는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 '나는 길들여 지지 않는다' 등 이 있다.

 

 

 

목차

 

1. 사랑,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혁명 같은 사랑의 표정 ·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언제부터 이렇게 이뻤나요? · 디에고 벨라스케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행복한 거울 · 마르크 샤갈, 〈거울〉
황금보다 귀한 꽃 · 에드워드 번 존스,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
완벽한 키스와 흰 보자기 · 르네 마그리트, 〈연인〉


위험한 사랑의 이유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삼손과 델릴라〉
세상을 등질 힘 · 안토니오 카노바, 〈에로스와 프시케〉
사랑의 금기를 깨는 등불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잠든 에로스를 지켜보는 프시케〉
소망합니다, 그대 내 사랑이 되기를 ·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그리다 ·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는 카미유〉


더없이 편안한 자세 ·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텅 빈 충만의 춤 · 앙리 마티스, 〈원무〉
무드는 감정을 방해한다 · 조르주 로슈그로스, 〈꽃밭의 기사〉
소녀의 노란 봄꿈 · 조지 클라우센, 〈들판의 작은 꽃〉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차라리 울지 · 에드바르 뭉크, 〈절규〉
슬픔이 슬픔에게 · 빈센트 반 고흐, 〈슬픔〉
동굴의 시간 ·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2. 생명과 신비의 노래


달의 노래, 뱀의 춤 ·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여자〉
달빛 한 줌, 지팡이 하나 ·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인〉
복수하는 마녀의 신화적 원형 · 외젠 들라크루아, 〈격노한 메데이아〉
네 운명을 사랑하라!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아리아드네〉
팜므파탈의 에너지 · 티치아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우리 시대의 오르페우스 ·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
보고 있나요, 당신을 위한 이 춤 · 귀스타브 모로, 〈환영〉
“어서 오너라, 은총을 받은 이여!” · 얀 반 에이크, 〈수태고지〉
성모 발치의 흰 고양이 · 폴 고갱, 〈신의 아이〉
예수의 힘 ·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짐〉


체념의 시간에 만난 신 · 마르크 샤갈, 〈떨기나무 앞의 모세〉
혁명적 크리스마스 · 피테르 브뢰헬,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번뇌는 별빛이라 ·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3. 마음 너머 나를 보다


총 맞은 것처럼 · 귀스타브 쿠르베, 〈상처 입은 남자〉
허물어진 것에서 나를 보다 · 엘리후 베더, 〈스핑크스의 질문자〉
무상관無常觀 · 조르주 드 라 투르,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사랑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쉬...

 

 

 

 

책 속으로

아버지의 사랑은 안전 지향적입니다. 청동의 탑처럼 든든하다 못해 육중하지만, 그것은 벽, 거대한 벽입니다. 그 탑 속에 길들여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거기서 형성된 가치관은 ‘안전’밖에는 모릅니다. 안전한 직장, 안전한 만남, 안전한 서정, 안전한 사랑, 안전한 결혼, 장수만이 목적인 안전한 건강…….
안전하지만 지지부진한 그곳에서 다나에는 하늘의 신 제우스를 만난 것입니다. 다나에의 제우스, 유명하지요? 아, 바람둥이 제우스. 이번엔 또 다나에야? 하고 아는 척을 하면 다 아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신화 속 제우스는 가부장제라는 울타리 속에서 이해해야 할 난봉꾼 진주낭군이 아닙니다. 제우스의 사랑은 사랑이, 하늘이, 의미가 어떻게 ‘나’에게로 걸어 들어오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적 이미지니까요.
나는 철두철미하게 방어의 벽 속에 갇혀 있는 다나에를 만나기 위해 황금 빗물로 스며든 제우스의 사랑에 감동합니다. 왜 나는 감동을 받는 걸까요? 아, 제우스가 왔습니다. 황금 소나기로 왔습니다. 황금 소나기로 내려와 스며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보십시오. 황금빛 환상적 사랑에 반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나에의 표정과 자태를. 사랑은 막을 수 없습니다. 청동의 탑 속에 갇혀서도 완벽하게, 완벽한 세상, 꽉 찬 세상을 만드니까요.
- 중에서(본문 18∼20쪽)



엘리후 베더는 이십대에 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해가 되지요? 가만히 있어도 괴롭고 외로운 그때, 철부지도 철이 나야 하는 때. 철이 나기까지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어 있는 그때! 그런데 이십대의 그림 치고는 그림이 너무나 늙었습니다. 좌절된 욕망으로 무릎을 꺾은 남자와 광막한 폐허에 애상까지.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애당초 젊음은 넘쳐나는 열정만큼 좌절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꽃그늘 아래서 울어보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에 초라한 방랑자가 되어 쓰러져보지 않고 어찌 스핑크스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스핑크스도 이미 허물어져 있네요. 스핑크스는 왕자王者의 상징입니다. 한때는 매혹적이었으나 이제는 스러져 버려진 옛 영화의 그림자입니다. 그러고 보면 저 그림은 이중적입니다. 막막한 광야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창백해진 젊음이,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려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존재에 기대 답을 구하는 것. 그렇게 볼 때 저 그림은 제 고통에 짓눌려 지치고 지친 영혼의 자화상입니다.
- 중에서(본문 191쪽)



반 고흐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외톨박이 화가야. 누구도 내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글거리는 태양마저도 나를 보고는 외면한다. 내 심장은 항상 사랑과 열정으로 고동치는데, 그야말로 고독한 외침일 뿐이구나.”
그래서 저 해바라기, 보고만 있어도 바람의 냄새가 나나 봅니다. 저만큼 피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요? 그 고독과 상처의 시간을 햇빛을 빨며 흡수하며 그저 ‘해바라기’로 견디며 쓸쓸하게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왔을 해바라기가 ...

 

 

 

출판사서평

세상살이가 조금 힘들더라도,
사랑이 조금 벅차더라도 괜찮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만 있다면.


“인생은 내가 전전긍긍하는 그곳에서가 아니라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매듭이 생기고
생각지 않은 곳에서 매듭이 풀립니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다가온 그림들이
자기 패를 보여주며 나의 패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프롤로그 중에서

응시하는 영혼이 아름답다
철학자의 시선으로 그림을 통해 바라본 일상의 행복과 삶의 신비


온통 푸르른 들판에 편하게 엎드린 한 소녀가 노란색 작은 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림 한 점. 영국의 화가 조지 클라우센 경의 〈들판의 작은 꽃〉은 작디작은 생명에 매혹된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철학자 이주향 교수는 이 그림에 대해 ‘생명 있는 것에 매료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소녀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것들에 이끌려 저렇게 한눈을 파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이냐고 묻는다.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 한 점을 통해 집착과 미련이 남지 않도록 온전하게 살고 사랑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주향 교수의 신작 에세이 《그림 너머 그대에게》는 클림트, 반 고흐, 샤갈, 루벤스, 렘브란트, 모네 등 여러 화가의 작품 50여 점을 매개로 우리의 일상과 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치 오후의 조용한 갤러리를 함께 거닐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대화를 나누듯 편안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그림 속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는 그림들
그 속에 나와 당신의 삶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번 존스의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는 초라한 거지 소녀와 그녀를 사랑한 왕을 낭만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주향 교수는 이 작품에서 스스로 왕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왕의 모습에 특히 주목한다. 여기서 왕관은 돈이자 명예, 권력을 상징하는데 결국 그것이 스스로를 얽매는 덫이자 참된 자신을 가려버리는 겉치레가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스스로가 별것 아닌 것을 화려한 왕관인 양 붙들고 고뇌하는 왕은 아닌지, 아름다운 소녀가 그동안 보살피지 못해 버려졌던 마음의 직관은 아닌지 질문하며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왕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스스로 초라해지는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그림 너머 그대에게》에서 이주향 교수가 함께 바라보자고 소개하는 그림들은 모두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는 질문과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을 통해서는 고단하지만 소중한 것 하나를 지켜내는 삶의 위대함을, 귀스타브 쿠르베의 〈상처 입은 남자〉에서는 아픈 상처를 느끼고 배워야 하는 이유를, 장 프랑수아 밀레의 아주 유명한 그림 〈만종〉에서는 소박하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1

클림트, <다나에>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1907)   캔버스에 유채.  77 x 83  개인소장

 

 

 

 

2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세비아 물장수> (1619)

 

런던 앱슬리하우스 소장본

 

벨리스케스 - <계란 프라이를 하는 늙은 여인>, (1618)   100.5 x 119.5cm  #Scottish_National_Gallery

 

 

많지는 않지만 벨라스케스는 풍속화, 이른바 장르 그림도 그렸다. 특히 왕실화가가 되기 전에 그린 그림들이 많다.

그는 어린 시절 이른바 보데곤 Bodgones라는 장르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보데곤은 부엌 풍경, 또는 부엌 정물화를 의미한다.

<계란 프라이를 하는 늙은 여인>이라는 그림이 벨라스케스의 초기 그림 중 대표적인 그림이다.

아주 정교하고, 음영법 즉 테네브리즘을 잘 사용한 작품이다.

위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19살때 그린 그림이다.

여러 카피본이 있는 <세비야의 물장수>라는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초기, 보데곤 스타일 그림이 완성단계에 들었음을 보여준다.

등장 인물들을 하일라이트하여 화면을 꽉 채우는 구도 등은 그대로 카라바조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등장인물에 보이는 스페인 식의 인상을 제외한다면 사실 카라바조의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듯 보인다.

[출처] 계란 프라이를 하는 늙은 여인 - 벨라스케스|작성자 ArtePhile

 

 

 

 

3

 

행복을 追求하는 한 너는

행복할 만큼 성숙하지 않다.

가장 사랑스러운 것들이 모두 너의 것일지라도.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고,

목표를 가지고 초조해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밖에 내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의 물결은

네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너의 영혼은 평화를 찾는다.

 

─ 헤르만 헤세, 「행복」

 

 

☜ 번역이 투박하네요.

 

 

 

4

르네 마그리트 <연인> (1928)  54x73.4

 

 

 

 

 

5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세상을 등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 로맹 가리

 

 

 

 

6

 

장 레옹 제롬 -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1890)  88.9 x 68.6 메트로폴리스미술관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Pygmalion And Galatea, 1890년 작품, 74x94cm, 개인소장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예술가이이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 섬의 예술가이다. 이 섬의 부도덕한 여인네들에 혐오감을 느껴, 독신으로 살면서 조각에만 몰두를 한다. 그는 자연의 고귀한 재료인 "백설처럼 흰" 상아로 실물 크기의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한다. 완성된 조각은 마치 살아있는 여인처럼 보였다. 피그말리온은 조각을 보면 볼수록 사랑에 빠졌다. 원래부터 자신이 이상적으로 그리던 여인을 조각한 것이었다. 마침내 그의 사랑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는 그녀를 뜨겁게 열망하게 되었다.

그는 키프로스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에게 온갖 제물을 바치면서 이 조각과 같은 여인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조각과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그말리온이 집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조각에 키스를 하자, 조각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여인으로 변했다.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위 그림은 수많은 다른 작가들처럼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장 레옹 제롬의 작품이다. 위의 그림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유명한 그림이고, 아래 따로 그린 다른 그림도 있지만 개인소장이라 우리는 볼 수가 없다. 참고로 제롬은 조각으로도 이 장면을 남겼다.

피그말리온이 조각한 여인의 이름은 원작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는 나오지 않는단다. 하지만 그녀는 18세기 이후로는 갈라테아 또는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얻었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수많은 시와, 소설, 연극, 오페라 등으로 다시 탄생하였다. 그림이나 조각으로 이를 재탄생시킨 사람만도 브론지노에서 에드워드 번존스, 로뎅, 고야, 폰 슈투크, 부셰까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이 그림은 제롬의 그림이 가장 낫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리라 싶다.

그리고 연극 가운데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대 이야기로 각색한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이 지금은 가장 유명하다. 이 연극이 유명한 이유는 이를 헐리우드에서 받아 My Fair Lady라는 줄리 앤드류스 주연의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한동안 주말의 명화를 장식하던 영화이기도 하다.

 

[출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 장 레옹 제롬|작성자 ArtePhile

 

 

 

 

 

7

 

《순례자》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말했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금기도 지켜질 때는 안전하지만 지켜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에덴의 금기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여호와는 인간이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지 않기를 애타게 원하셨던 걸까요?

혹 여호와는 인간 스스로 목숨을 걸고 그 나무 열매의 비밀을 알게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니체가 말합니다. '인식의 나무 아래 뱀으로 누워 이브를 유혹했던 것은 神 자신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