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ENGLAND ─ 리버풀, 풀만 호텔

2019. 8. 18. 10:56여행/영국







 











손흥민이 리버풀 어웨이 경기 오면 묵는 숙소가 바로 이 풀문호텔이라네.

리버풀의 이미지를 잘 살린 호텔 CIP맘에 쏙 들더라.


CIP는 건축, 특히 실내건축 인테리어쪽에서 쓰는 용어일세. (corporate image identity program)




옛날의 리버풀은 항구로서 크게 번영하였는데,

2차대전 이후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이젠 아주 낙후된 거렁뱅이 도시가 되었다더군.

실제로 도심 외곽은 말 그대로 폐허(廢墟)더라.




리버풀은 항구이며 머지사이드 도시권의 핵심지역이다. 머지 강 오른쪽(북쪽)을 둘러싸고 불규칙한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해에서 수㎞ 떨어져 있다.  1207년은 리버풀 역사상 중요한 시기로, 이 해에 잉글랜드 존 왕이 칙허를 내려 이곳에 세워진 계획된 신도시를 특권도시로 승인해주었다. 중세에는 발전이 느렸으나 18세기에 들어와 미국 및 서인도제도와 수지 맞는 교역을 함으로써 급속히 발전해 영국에서 2번째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일반적 교역형태에 있어 중요한 요소를 이룬 것은 리버풀 삼각무역이었는데, 이는 머지 강 배후지에서 만든 상품들과 서아프리카의 노예들을 교환한 뒤 서인도제도에서 그 노예들을 설탕·당밀·양념 및 기타 농장 재배작물과 바꾸는 것이다. 1715년 리버풀 최초의 부두가 세워졌다. 18세기말까지 머지 강을 따라 부두 4개를 더 건설함으로써, 항구의 부두 면적에 있어서는 런던보다 앞섰다.


1830년 잉글랜드 최초로 두 주요도시를 잇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개통되었다. 그 이후 영국의 모든 주요 공업중심지로 쉽고 값싸게 갈 수 있는 철도망과 머지 강을 가로질러 리버풀과 위럴을 잇는 증기선항로가 개설되었다. 이곳이 발전함에 따라 주위의 여러 지역과 아일랜드에서 이민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특히 1845~48년 아일랜드 기근과 그 이후에 두드러졌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이곳은 머지 강을 따라 북쪽의 혼비(1884)에서 남쪽의 허쿨라니움(1866)까지 연결된 길이 11㎞에 이르는 부두의 중심부가 되었다. 후에도 부두를 개량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수출항과 여객항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변화의 주된 이유는 영국의 경제생활에서 리버풀이 차지하던 공업 배후지역으로서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하고 미국 및 서아프리카와의 전통적 교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두에 대한 적은 자본투자와 실업자 발생이 이런 변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곳은 지금도 주위의 대도시권지역에 대해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운송·통신·유통·선박업과 같은 전통적 산업은 쇠퇴했으나, 아직도 도시의 경제생활에는 중요하다.





 




 

자작나무는 아니고,


















 

 



 

 




 




 


 

 

 


이번 영국 여행 중에 묵은 호텔들이 다들 괜찮았는데,

건축가의 일관성 있는 설계가 인상 깊더군.




 

 



영국날씨,

소문대로 정말 천변만화더라. 언제 어떻게 변할 지는 하늘에 계신 주님만이 안다.

여름에도 반팔 옷 입을 일이 없더라. 우리나라 가을날씨다.

맑을 때는 얼마나 하늘이 청명한지, ....... , 구름사진 많이 찍어왔다.

암튼. 피서 잘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