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2. 20:45ㆍ미술/미술 이야기 (책)
2019. 1. 30
책소개
살다 보면 주춤할 때가 있다. 마음이 번잡하고 힘들 때 저자는 붓 하나로 세상과 대적했던 한 일본 화가의 그림에 매료되어 일본 미술관 기행을 시작한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가장 낯선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발이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일본 구석구석을 다니며 미술관을 찾는다. 그렇게 하기를 10년 남짓. 그 동안 끊은 JR 패스가 100장 이상, 다닌 길만 50만 킬로미터 이상, 수백 권의 도록들과 수많은 작가들, 길 위에서 만난 인연들이 기록이 되었고, 공부가 되었다.
이 책은 스스로 ‘가난한 호사가’라 부르는 저자의 성실한 미술관 기행기이다. 그가 만난 수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특히 한국에 소개된 적이 거의 없는 “새로운” 일본 현대 미술을 다루는 숨은 보석 같은 미술관 30곳을 골랐다. 그 중에서도 근대 이후 주어진 일본 사회의 문제를 미술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작가의 작품이 있는 곳, 지역의 특수성을 담은 곳, 보기에 재미있는 곳, 미술관의 건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곳, 우리를 사유하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는 곳 등을 모았다.
일본 미술에 매료되어 어림잡아 50만 킬로미터를 넘게 여행했다. 일본 미술이 충분히 존중받을 만한 세계미술사의 굵은 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제국주의 역사를 근본부터 회의한 한 작가를 알게 된 후, 일본 현대 미술의 깊고 다양한 심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통을 혐오하거나, 혹은 그것을 깊이 껴안고 시작하거나 어찌됐든 전통과 길항하고 대적하며 현대미술의 길을 개척해가는 작가들이 부러웠다. 빈한한 농민화가부터 현대적 귀족 자제까지 출신성분의 다양함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들의 당대 미술을 보고 또 보았다. 본 적 없던 그림들, 그러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몰랐던 일본 미술에 대해 소개하고 싶었다.
목차
머리말
홋카이도, 토호쿠
01_격투하는 삶 : 칸다 닛쇼 기념미술관
02_상처 받은 대지를 치유하는 우주의 뜰 : 모에레누마 공원
03_푸른 숲에 내리는 눈 :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04_서투른 고통을 기억하다 : 도몬 켄 기념관
<무로지의 12지신상> - 가마쿠라 중기의 작품
가마쿠라에 바쿠후가 세워졌던 1185년부터 1333년 바쿠후가 멸망할 때까지를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라고 한다. 처음에는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가 실권을 잡았으나 곧 호조 씨[北條氏] 집안이 실권을 잡게 되었다. 헤이안 시대와는 달리 무사계급이 실권을 잡자 귀족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따라서 다시 운동감과 힘을 중시하는 미술이 등장했다.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진척되어온 국풍화(國風化), 즉 일본 고유의 색채를 드러내는 경향이 이 시대에도 계속되었는데 에마키모노가 크게 성행한 것이나 신도미술인 스이자쿠가[垂迹畵]가 제작된 것이 그 예이다. 여기에다 중국 송대(宋代)의 건축·조각·회화 기법이 가미되어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다.
칸토
05_기린을 기다리다 : 군마현립 타테바야시 미술관
06_지는 건축, 약한 건축 : 무라이 마사나리 기념미술관
07_말수 적은 선생들 :토쿄 미술관 산책
추부
08_단서, 퍼즐을 풀다 :에치고츠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키나레]
09_숨어있기 좋은 방 : 카루이자와 센주 히로시 미술관
10_주머니 속의 압정 : 세존 현대미술관
11_이 문명이 멸망해도 너희는 살아남으라 : 이즈포토뮤지엄
12_물소들이 늠름히 강을 건넌다 : 아키노 후쿠 미술관
13_변화의 사이를 경험하다 : 카나자와 21세기미술관
칸사이
14_많은 강을 건너 다시 숲속으로 : 미호뮤지엄
15_물과 빛이 일렁이다 : 사가와 미술관
16_그림은 힘이 세다 : 와카야마 현립근대미술관
17_기억과 기대 사이 : 칸사이 미술 소풍
추고쿠
18_햇빛 쏟아지던 날들 : 나기초 현대미술관
19_우리는 무슨 동사의 주인이고자 하는가 : 우에다 쇼지 사진미술관
20_운명에 응전하다 : 시마네 현립미술관
21_우리 곁의 작가들, 만신창이 미술론 : 히로시마 현대미술관
22_본 것은 보았다고 해라 : 카즈키 야스오 미술관, 야마구치 현립미술관
큐슈
23_종잡을 수 없는 여러 사람의 여러 걸음 :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24_어느 봄날 찾아낸 새싹의 일 : 쿠마모토시 현대미술관
책 속으로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듯
우리를 흔드는 것은 예술이고, 이야기고, 상상이다. - 267쪽
“모두가 폭탄 따위 만들지 않고, 어여쁜 불꽃놀이만 만들었다면, 절대로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모두가 폭탄 따위 만들지 않고, 미술관에 가고, 음악회에 가고, 연극과 영화를 보러 가고, 조용히 책을 읽고, 산에 오르고, 물에 뛰어들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밥과 술을 나누고, 그렇게 보낼 수 있다면 절대로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자리는 어디인가. 폭탄이 아닌 자리다. 폭탄이 없는 자리다. 그게 저 불꽃놀이처럼 한여름 밤의 꿈일까. 야마시타 키요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울퉁불퉁한 불꽃놀이는 얼마나 깊은가. - 283쪽
카즈키 야스오는 각자 자기 몫의 오늘의 행동을 통해 기억에 저항하고, 현실에 맞서자고 이야기한다. 오늘은 오늘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싸울 수 있다. … 호사가 아닌, 오늘 몫의 삶을 사는 것, 일본 미술관 기행의 또 하나의 이유일 테다. - 411쪽
박물관과 미술관은 한 마을이, 도시가, 국가가, 혹은 기업이나 개인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전시하는 곳들이다. 가급적이면 최선과 최상을 가져다 놓고 자랑하는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그 사회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지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일본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일본이 미국을 추월할지 모른다는 호들갑이 넘치던 시절, 그 버블 시대에 일본의 지자체와 기업과 개인 부호들은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짓고, 거기에 콘텐츠를 채워 넣었다.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이끌어 오고, 한 작가가 다른 작가로 이어져 갔다. 연쇄는 한도 끝도 없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본 적 없던 세계가 펼쳐졌다.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많구나, 수긍이 갔다.
그러면서 일본의 어두운 역사, 감추거나 부정하고 싶은 부분을 정면으로 직시하려 한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일본 미술 안에 여성의 자리, 변경의 자리, 마이너리티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던 작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자랑의 리스트는 한도 끝도 없이 긴데, 자랑하지 않는 것들은
리스트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걸 찾아내는 것 자체가 일이었고, 공부였다.
이 공부는 기억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기억하지 않고 있는가. 잊힌 존재들을 화면 안으로 초대해 자리를 마련해준 이들이 있다.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어지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떤 시시한 존재도, 어떤 작은 패배의 역사도 다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 미술은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어지게 하려는 행위다. - 머리말에서
출판사서평
“좋아하는 장소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러 번, 여러 시간, 여러 계절에 와보는 것이다.”
_자신만의 사적인 미술사를 쌓은 한 여행가의 성실한 기록
고백컨대 아쉬운 사진이 하나 있다. 비슷한 사진들이 반복된다는 이유로 뺐는데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세계적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가 삿포로 지역에 1.89제곱킬로미터(여의도 면적의 2/3) 땅에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모에레누마 공원을 찍은 사진이다. 같은 장소를 다른 계절, 다른 시간에 찍은 사진들 밑에는 저자가 이런 설명을 달아 두었다.
“좋아하는 장소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러 번, 여러 시간, 여러 계절에 와보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맞장구치는 것은 부지런함이다.”
저자 진용주의 여행 방식을 가장 잘 설명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그는 지금까지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일본을 100회 이상 여행했다. 일정 기간 동안 대부분 기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JR패스만 해도 100장 이상 끊었고, 기차로 다닌 거리만 해도 50만 킬로미터 이상이다. 전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비행기로 일본 북쪽 끝 홋카이도로 들어가 기차로 아오모리를 거쳐 남서쪽 끝 야마구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비행기로 오키나와로 넘어가는 미니 일본 종단도 마다하지 않는다(52쪽). 카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천정에 사각형 구멍을 낸 제임스 터렐의 작품 <블루 플래닛 스카이>를 소개하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낮이 밤으로, 밤이 낮으로 바뀔 때 일어나는 본질이 뭘까. 모르겠다. 답은 정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순간을 제대로 경험해보는 것이다. 터렐 방은 요약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체험해야 한다. (...) 시간을 많이 들이면 더 좋다. 아침, 오후, 저녁, 밤의 풍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혼자라도 좋고, 좋은 사람과 함께여도 좋고, 친구들과 와도 좋다. 날이 맑아도,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어도 좋다. 어떤 방식이든, 이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순간’을 제대로 경험해보라. 꼭 낮이 밤으로, 밤이 낮으로 바뀌지 않아도 된다. 바람이 부는 것도, 멈추는 것도, 그림자가 지는 것도, 햇빛에 눈이 부시는 것도, 아니 당신이 들어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변한다. ‘변화의 순간’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어디 흔할까. 그러니 ‘일본 미술관 중 어디가 제일 좋나요’라는 질문에 ‘그때그때 다릅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마음속에 정해둔 답은 이곳, 이 방이다.(245~246쪽)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서 수백 킬로미터 길을 가고, 또 몇 번이고 다시 찾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 연관된 다른 작품을 찾아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키는 것, 그래서 자신만의 사적인 미술사의 영역을 성실히 쌓아가는 것, 이것이 진용주가 스스로 “10년 동안의 공부”라고 했던 그만의 여행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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