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1. 19:44ㆍ미술/ 러시아 회화 &
작년 5월 출장을 끝내고 모스크바에 갈 계획을 세웠는데 사정으로 그 꿈이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늘 가지 못했던 길은 아쉬움으로 남고 그 덩어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집니다. 자주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기웃거리면서 날아간 꿈을 다시 잡을 궁리를 하고 있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든 가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밑에 깔고 있는 러시아 작품들은 나중에 정형화 된 이념만 걷어내고 보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예고르비치 마코프스키 (Vladimir Yegorovich Makovsky / 1846 ~ 1920)의 작품에도
힘없고 핍박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아빠, 안녕히 계세요 Goodbye, Papa / 1894
눈물이 흐를까 봐 눈을 크게 뜨고 애써 아빠의 눈을 피해 보지만 입술까지 와 있는 슬픔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앙상하게 야윈 두 손으로 딸의 손을 감싸고 있는 아버지는 이제 떠나는 모습을 가슴에 담으려고
눈길을 딸의 얼굴에 고정시켰습니다. 또 다른 세상을 여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담긴
눈빛입니다. 시집가는 딸을 보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눈 빛 아닐까요?
몇 년 뒤면 딸이 시집을 가겠지요. 그 때 저도 저런 눈빛이 될까요, 제 딸도 저렇게 제 눈을 피할까요?
아빠, 나 남편하고 여행 갔다 올께, 애기 좀 봐줘
그 때는 어떤 눈빛이 될까요 ---.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마코프스키의 집안은 대단합니다. 아버지는 미술품 수집가였습니다. 자료에는 별도로
소개된 것이 없지만 금전적인 여유가 없으면 미술품 수집은 쉽지 않은 일이죠. 또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설립
멤버 중 한 명이었습니다. 마코프스키의 아버지는 3남 1녀를 두었는데 타고난 자질에 집안 환경이 더해진
탓인지 나중에 모두가 유명한 화가가 됩니다. 나름 성공한 부모님이셨지요.
박애주의자들 Philanthropists 69cm x 96cm / 1874
아주 잘 차려 입은 부유한 사람들이 남루한 집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를 맞이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맨 왼쪽 고개를 돌린 남자의 표정에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이 역력합니다. 손을 뺨에 대고 있는
문 앞의 소녀도 불편한 내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이만 손을 앞에 모으고 여인을 맞고 있지만
할머니도 마지 못한 얼굴입니다. 집 주인이 밀린 집세라도 받으러 온 걸까요? 작품의 제목을 보면 부유한
두 사람은 밖에서는 박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로 불리고 있겠지요. 장작도 별로 없어 차갑게 식은 난로가
여인에게 묻습니다.
박애주의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죠? 가장 낮은 자세로 힘없는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눈 높이에
맞춰 나란히 앉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럼 옷부터 벗고 목과 어깨 힘부터 줄이시죠.
15세가 되던 해, 마코프스키는 러시아 화가들을 소개할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 입학합니다. 6년간의 학교 성적도 좋았던지 졸업하기 바로 전 해와 졸업하던 해에는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그 뒤로 3년 정도 더 공부를 했는데 학교 이름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진학
경로를 참고하면 상트페테르부르그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추정까지 하는군요.
식사 (모스크바 농산물 직판장) Dinner (Farmer's Market in Moscow) / 1875
식사 때가 되자 농산물을 팔러 온 농부들이 모였습니다. 식사는 달랑 접시에 담긴 것 하나입니다.
나이든 남자들 사이에 여인들 모습도 보입니다. 모두 힘든 얼굴들입니다. 1861년 러시아는 농노해방을 단행
합니다. 근대화를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지만 극심한 경제공황과 계속되는 전쟁으로 농민들과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죠. 양광이 내리는 시장, 죽 한 그릇이란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화면 오른쪽 햇볕을 등지고 앉은 사내의 멍한 얼굴을 보니 그는 그나마 죽을 살 돈도 없는 모양입니다.
1870년 공부를 끝낸 마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시작된 방랑파 (The Wanderers)의 창립멤버로 참여
합니다. 이후 그는 방랑파 소속으로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나중에는 방랑파를 이끄는 위치에 이르게
됩니다. 방랑파는 그때까지 러시아 미술을 좌지우지하던 상트페테르부르그 예술 아카데미에 대항해서 만든
모임인데 그 멤버들 중 그 학교출신이 많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잼 만들기 Making Jam / 1876
제가 본 마코프스키 작품 중에서 가장 밝고 편안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잼을 만드시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작은 불에 냄비를 올려 놓고 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림 속 할머니도 열심히
젓고 계시는군요. 눈이 나빠진 할아버지는 과일의 꼭지를 따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평소에 자주 한
모습은 아니죠?
아, 빨리빨리 좀 해요.
이 사람은 ---- 둘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잼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가뜩이나 눈도 안 좋은데.
저는 나이 들어도 구박받지 않는, 쓸모 있는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입니다.
시골 아이들 The Village Children / 1880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습니다. 맨 오른 쪽에는 싸움이 난 모양입니다. 모자를 쓴 아이가 맞았는지 울고 있고
제법 큰 아이가 때린 아이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이군요. 아주머니 앞에 앉은
아이는 발을 잡고 우는데 가만히 보니까 범인은 닭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도망을 치는 중입니다. 두건을 쓰고
벽에 기댄 여자 아이의 얼굴이 붉습니다. 뜨개질을 하는 중인가요? 가을 어느 날, 시골 양지 바른 곳에 모인
아이들은 러시아 아이들의 모습보다는 우리의 예전 추억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그래, 그렇게 놀았었지 ----
마코프스크의 작품은 끝없는 유머와 냉소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풍자가 특징입니다. 초기 작품은 비교적
점잖은 냉소를 깔고 당시의 관습과 도덕 기준을 묘사했는데 작품 무대는 주로 작은 러시아의 도시들이었죠.
그는 작품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힘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동정을 비판했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
사회적인 문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죠.
길 거리에서 On the Boulevard / 53cm x 68cm
겨울 초입, 벤치에 앉은 부부의 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옆에 보따리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일을 찾아 올라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을 얻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좌절이 어렸고 눈은 생기를 잃었습니다. 남편은 풀리지 않는 삶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겠지요.
부부가 꿈꾸었던 세상은 벤치 뒤 철책 너머입니다. 손풍금을 꺼내 망향가를 불러 보지만 답답한 심사가
사라지겠습니까? 어떻게든 겨울을 넘겨야 합니다. 부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살면서 주문처럼 외웠던 말 --- 세상이 눈물겹다고 끝까지 눈물겨울까요?
1870년대, 그러니까 서른 즈음에 마코프스키는 두드러진 러시아 사회의 강자와 약자에 대해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이 것은 훗날까지 그의 작품 주제가 됩니다. 압제 받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세계에
대한 그의 연민이 솔직하게 그림에 담겼습니다. 서민들에 대한 황제 군대의 학대와 압박도 그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마코프스키의 가슴에는 세상을 향한 불덩어리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은행 파산 Bank crash / 46cm x 71cm / 1880
은행 파산 Bankruptcy / 1881
사전적인 의미로는 뭔가 차이가 있겠지만 두 장의 그림이 거의 같은 내용이어서 제목을 같게 했습니다.
화면 속 많은 사람들이 은행의 파산 소식을 듣고 달려와 자기가 예금한 돈을 돌려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기가 막힌 소식에 정신을 놓고 의자에 쓰러지다시피 한 노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퇴역 군인들은 받아야 할
연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는 말에 울분을 토하고 있는데 날아 간 것은 돈 뿐만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했던
시절도 날아 간 것이겠지요. 창구에 매달려 하소연을 해보지만 직원이라고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이런 아수라 판에서도 자기 것을 확실히 챙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속 호주머니에 뭔가를 넣고 화면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의 눈은 정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때고 힘있는 사람은 계속 살아 남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사람은 계속 좌절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있는 놈들이 더 한 세상’을 경멸합니다.
어찌 보면 ‘삐딱선’을 타고 있었던 마코프스키였지만 1878년,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
됩니다. 1880년대 러시아 회화가 다양하게 발전되는 ‘민주화’ 시대가 오면서 그의 걸작들이 탄생합니다.
그림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그에게는 신나는 시절이었겠지요. 서른 여섯이 되던 해 모스크바
예술학교의 교수로 임명됩니다. 바실리 페로프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자리를 이어 받게 된 것이죠.
부활절 찬송 Easter Te Deum / 1888
부활절 아침, 신부님이 부활절 계란을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아직 기도 중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제대
근처로 모이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는 분도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탄생을 말하기도 하지만
영원히 살아 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몸이든 정신이든 죽음을 거쳐 다시 태어났는데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활 찬송 소리가 마을로 울려 퍼지는데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 남은 알을 보고
있는 닭의 자세입니다. 혹시라도 아이가 어떻게 할까 봐 알을 감시하는 닭에게 부활은 통곡의 시간 아닐까요?
마코프스키의 유머답다는 생각을 하다가 요즘 부쩍 그림 속 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 마요! Don't Go! / 1892
러시아어를 모르니 여인이 가로 막고 서 있는 곳이 어느 곳인지 알 수가 없군요. 헝클어진 머리와 열린 옷을
보면, 요즘 말로 ‘폐인’에 가까운 사내 앞을 여인이 막아 섰습니다. 간절하고도 절박한 몸짓입니다. 사태가
심각한 것을 안 아이는 엄마 품에 몸을 기댔지만 얼굴은 아버지를 보고 있습니다. 여인은 남편이 이 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지는 순간 자신과 아이의 앞 날이 어떨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자가 손에 든 것이
무엇일까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그림을 보다가 문득 여인에게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주머니, 그렇게 하는 아주머니의 인생에 저 남자는 무슨 의미로 남게 됩니까?
가끔 그림이지만 뛰어 들어가서 그림 속 인물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쌓인 눈 만큼이나 차가운 그림입니다.
1880년대 말부터 마코프스키의 작품은 조금 더 ‘우울’해졌습니다. 좀 더 그의 이야기 톤이 높아졌다고
봐야겠지요. 1894년 마흔 여덟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그 예술 학교의 교수로 임명되는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일흔까지 학생들을 지도합니다. 또 예술아카데미 예비학교의 교장을 맡게 됩니다. 그는 화가이자
선생님이었습니다.
1905년 1월 9일 바실리에프스키 섬의 스케치 Sketch of January 9, 1905 Vasilyevsky Island
바실리에프스키 섬은 상트페테르브르그 근처에 있는 섬입니다. 이 날 섬에서는 무장한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사람들을 향해 발포한 일이 있었습니다. 마코프스키가 현장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이 장면을
그림으로 제작했습니다. 뒤에 있는 남자는 겁에 질린 모습이지만 가슴을 열어 젖힌 남자의 표정은 비장합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금방 울 것 같습니다. 배경만큼이나 흰 가슴이 안타깝습니다.
내 가슴은 눈처럼 희고 착하다. 너희처럼 시꺼멓고 힘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가? 내가 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최소 권리에 대한 주장이 총을 맞아야 할 일인가?
정말 그렇단 말인가? 좋다, 그렇다면 내 이 흰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목이 터질 것 같은 사내의 외침이 저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역사의 일정 부분은 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피를 먹고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1905년 1월 9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등을 요구
하며 왕궁을 향하여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죠. 그러나 시위대를 진압하고자 하는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
했습니다.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한 이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러시아 제1혁명이 시작됩니다.
혁명을 지켜 본 마코프스키는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과 같은 약자 편에 섭니다.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Two Mothers (Birth and Adoptive) / 1906
우리나라 연속극에서 자주 보는 주제를 러시아 그림에서도 만나게 되는군요.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보따리를 든 여인이 나타나서는 자신의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말하는 모양입니다. 손에는 서류를 들었습니다.
놀란 아이는 식사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 품에 안겼습니다. 일을 하는 아주머니는 좀 진정하라고 하고
있지만 보따리를 든 여인의 목소리나 자세로 봐서는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습니다. 혹시 그 동안 길렀던
아이를 빼앗길까 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표정이 아주 당혹스러워 보입니다. 아이가 자신을 낳아 준
엄마를 피하는 것을 보면 어려서 입양되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할까요?
저라면 기른 엄마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생물학적인 끈이
만들어 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기르는 동안 생물학적인 끈을 제외한 모든 끈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비정한가요?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시작됩니다. 마코프스키는 늘 마음에 두었던 힘없고 핍박 받는 사람들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겠지요.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완성되고 난 후 2년 뒤, 일흔 넷의 나이로 마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가슴에 담고 그 때 떠났기 때문에 행복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뒤로 흘렀던 역사를 보면 혁명은 혁명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사실주의를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연결
시킨 마코프스키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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