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2. 18:26ㆍ미술/서양화
Vincent von Gogh (1853-1890)
고흐 19세
1 화가 입문 이전부터 보리나주까지(1872.8월 ㅡ1881.3월)
2 에텐, 헤이그에서(1881.4월 ㅡ 1882. 5월)
3 헤이그. 드렌테.누에넨에서(1882.6월 ㅡ1885.11월)
4 앤트워프. 파리에서 (1885.11월 ㅡ1888. 2월)
5 아를에서(1888.2월 ㅡ1889.5월)
6 프로방스 생레미에서(1889.5월 ㅡ1890.5월)
7 오베르 쉬르 오아즈에서 (1890.5월 21일 ㅡ 7월 29일)
회색 모자를 쓴 자화상 1887년
1 화가 입문 이전부터 벨기에의 보리나주까지(1872.8월 ㅡ1881.3월)
고흐의 숙부 세 사람이 모두 畵商인 덕분에
1869년 7월 유명한 미술품 매매점 구필 화랑의 수습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1872년 8월 같은 일을 하게 된 테오에게 편지를 보냄으로써
평생에 걸친 두 사람의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다
모두668통을 보냈다
1877년 5월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갔지만
신에 대한 이론적 학습과 실제로 복음을 전파하려는 갈망 사이에서 방황했다
1878년 7월 신학공부를 그만둔 그는 전도사가 되어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벨기에의 탄광지역인 보리나주로 갔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와 광적인 신앙심. 가난한 사람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인해
다른 종교인들과 마찰을 빚게 되고 여러모로 힘든 생활을 했다
1879년 여름 고흐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어
동생 테오에게 데생기법에 대한 책과 물감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마침내 전업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테오는 경제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5년 가량의 세월 동안 나는 안정된 직장 없이 늘 궁지에 몰린 채 방황해왔다...
나도 그 무엇인가에 적합한 인물이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쓸모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수 있을까?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
그것이 도대체 무얼까?
그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경우다...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1880년 7월 고흐 27세
2 에텐 . 헤이그에서(1881.4월 ㅡ 1882.5월)
그림 몇 점을 보낸다
네가 그걸 보면 하이케(브라반트 북부에 있는 에텐 근방의 마을)의
풍경을 떠올릴 거다
그런데 이제는 제발 솔직하게 말해다오
왜 내그림은 팔리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그림을 팔 수 있을까?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1881년11월 10-11일
글쎄. 예절과 교양을 숭배하는 너희 신사들에게 물어보고 싶구나
한 여자를 저버리는 일과
버림받은 여자를 돌보는 일 중 어떤 쪽이 더 교양 있고 더 자상하고
더 남자다운 자세냐?
지난 겨울 임신한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한테서 버림받은 여자지(시엔)
겨울에 길을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얻었는지는 상상할 수 있겠지
하루치 모델료를 다 지불하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때에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녀를 계속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과거의 길 그녀를 구렁텅이로 내몰 것이 분명한
그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녀는 돈이 없지만 내가 그림을 그려 돈을 벌수 있도록 돕고 있다
1882년 5월
앉아 있는 시엔 1882년
3 헤이그.드렌테.누에넨에서(1882.6월ㅡ1885.11월)
오늘 , 혼자 다짐했다
가벼운 두통이나 그것을 떠오르게 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로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니 이제는 다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좋든 싫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야외에 나가 규칙적으로 데생을 할 것이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어, 저건 과거에 본 그림이잖아"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 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주으이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 것 ?는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겠다
1882년 7월 21일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나 창가에 앉는다
그리고 목초지와 목수의 작업장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 들판에서
커피를 끓이기 위해 불을 피우는농부들을 스케치하지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니?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어떻게 작업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계속 작업할 수만 있다면 조용히 싸움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작은 창문 너머로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을 바라보고
신념과 사랑으로 그것을 그리는 싸움 말이다
그리고 될수 있으면 그림 그리는 데 방해가 되는 여러 자기 문제를 피해나갈 생각이다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림 이외의 어떤 것에도 주위를 빼앗기고 싶지않다
1882년 7월 23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 먹거나 마시는 시간까지도 아낄 정도로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1882년 8월 20일
바다 풍경을 담은 스케치에는 황금색조의 부드러운 느낌이 있고
숲 그림은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를 띤다
인생에 이 둘 모두 존재한다는 게 다행스럽다
1882년 9월 3일
복권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음식을 사는 데 썼어야 할 돈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샀을지도 모르는 복권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고통과 쓸쓸한 노력을 생각해보렴
1882년 10월 1일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스(1824-1911 네덜란드 화가 가난한 사람과 노인을 주로 그렸다 헤이그 화파의 일원)
가 그들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그려냈다
그런데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게 이상하다
여기 헤이그에는 매일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세계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지
인물화가들과 거리를 산책하다가 한 사람에게 시선을 주고 있는데
그들은 " 아 저 지저분한 사람들 좀 봐"
"저런 류의 인간들이란" 하고 말하더구나
그런 표현을 화가한테서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1883년 3월 21일 -28일
황혼 속에서 양떼가 귀가하는 장면은 어제 들었던 심포니의 피날레 같았다
하루가 꿈처럼 지나갔고 하루종일 심금을 울리는 음악에 심취해서
먹고 마시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물레를 그렸던 작은 여인숙에서 흑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마신게 전부였다
하루가 지났고
황혼에서 새벽까지 아니 이튿날 밤까지 나는 그 심포니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불옆에 앉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이제 여기가 어떤 곳인지 너도 알겠지
여기에 있으면
수백의 걸작품이 있는 전시회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날 무얼 가지고 집으로 돌와왔겠니?
그저 대충 틀만 잡은 스케치 몇 점이지
그러나 그것말고도 또 있다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조용한 기쁨이다
1883년 11월 16일
내 그림이 아직 더 많이 좋아져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너에게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너도 그림을 팔아보려는 노력을 더 확실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넌 내 그림을 아직 단 한 점도 팔지 못했잖아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다
사실 너는 팔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게 아니냐?
글쎄 내가 그런 문제에 대해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이제 솔직한 심정을 말할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이 편지를 읽고 너도 네 입장을 솔직히 말해다오
사실 더 나은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
단지 네가 내 그림을 팔기 위해 신경 쓸 마음이 있는지 ㅡ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지 ㅡ
아니면 네 위신이 그걸 허용하지 않는지
그저 한 번이라도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네가 내 그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 없이
나는 반드시 그림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1884년 3월 1일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으로,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
웬 쓰레기 같은 그림이냐! 는 말을 들을 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듯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농촌생활을 그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1885년 4월 30일
나는 지금 남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될 처지다
무슨 말이냐 하면 , 돈 부탁을 해야 할 입장이다
당분간 그림이 팔릴 것 같지도 않기 때문에 좀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럴 때 가만히 앉아서 사색이나 하고 있느니
작업에 몰두하는게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더 낫겠지
1885년 7월
4 엔트워프. 파리에서 (1885.11월 ㅡ1888.2월)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내가 돈을 받을 때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비록 그동안 밥을 못 먹고 있었지만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그림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손에 들어온 즉시 모델을 구하러 나가서는
돈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한다
계속 그림을 그리려면
이곳 사람들과 함께 하는 아침 식사와
저녁에 찻집에서 약간의 빵과 함께마시는 커피 한 잔은 꼭 필요하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야식으로 찻집에서 두 잔재의 커피를 마시고
약간의 빵을 먹거나 가방에 넣어둔 호밀 흑빵을 먹어도 좋겠지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그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델이 떠나버리고
혼자 남게 되면 갑자기 나약한 감정이 나를 덮치곤 한다
1885년 12월 28일
라 기늬에트 카페의 테라스 1886년 10월
나는 성경을 요즘 사람들보다 더 세심하게 읽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토록 고상한 이상이 늘 존재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펼쳐진 성경책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은 탓에 빨리 늙어버린 것 같다
주름살 거친 턱수염 몇 개의 의치 등을 가진 노인이 되어 버렸지
그러나 이런게 무슨 문제가 되겠니?
내 직업이란 게 더럽고 힘든, 그림 그리는 일 아니냐
내가 나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즐겁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비록 내 젊음은 놓쳐버렸지만
언젠가는 젊음과 신선함을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잇을 것이라고
불확실하나마 미래를 상상하며 지낸다
1887년 여름 ㅡ 가을
아니에르의 세느강변길 1887년
고흐의 방에서 바라본 파리의 레픽 거리 1887년
파리 몽마르뜨 1886년 가을
몽마르뜨에서 바라본 파리 1886년
5 아를에서(1888.2월 ㅡ1889.5월)
1888년 10월 23일 도착한 고갱과 공동 생활
1888년 12월 23일 고갱과 다투고 고흐 자신의 귀를 잘랐다
고갱은 파리로 고흐는 병원으로 ..
1889년 1월 고흐는 퇴원했으나 환각 증상을 보였고 이를 불안하게 여긴 주민들의 고발로
3월말까지 병원에 감금당한다
아를에서 2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사실 네가 브르타뉴에 있는 고갱에게 생활비를 보내면서
프로방스에 있는 나에게도 생활비를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 두사람이 한 달에 250프랑을 나눠 쓴다면
누구보다 테오 네가 편해질 테고
게다가 내 그림뿐 아니라 고갱의 그림도 얻게 되겠지
따라서 예산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테오야 이건 화가 공동체의 출발점이 될것이다
베르나르도 남부로 와서 우리와 합류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를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 공동체의 선두에 있는 인물로
생각한다는 걸 잊지마라
내가 그들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들을 만나보겠다
내가 찾아낸 방법이 바로 고갱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너도 잘 생각해야겠지
좋은 동반자가 있어서 함게 생활한다면 더 적은 돈으로도 생활할 수 있지 않겠니
1888년 5월 ㅡ 6월
감자가 있는 정물 1888년
인생은 너무 짧고 너무 빨리 지나간다
화가라면 그래도 그림을 그려야겠지
이제 나는 내년이 오기 전에 50점의 그림을 그릴 계획이라는 말만 덧붙이고 싶다
결심을 꼭 지킬 것이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해서 돌아온 날이면
이런 식으로 매일 계속하면 잘 될거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반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먹고 자고 돈을 쓰는 날이면
내 자신이 못마땅하고 미친놈이나 형편없는 망나니,
혹은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1888년 6월
클로드 모네가 2월에서 5월까지 열 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니 정말 훌륭하다
작업을 빨리진행한다고 진지하지 않게 일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 순간의 상태와 경험에 달린 문제이다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너무 급하게 그림을 그린다고 할 것이다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라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은
우리의 감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진지한 느낌 아니냐
그런데 이런 감정이 너무 강할 때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한 채 붓을 휘두르게 된다
1888년 6월
별이 빛나는 밤 1888년 9월
펜과 종이를 대할 때처럼 물감을 사용할 때도 부담이 없었으면 좋겠다
색을 망칠까 싶어 두려워하다 보면 꼭 그림을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부자 였다면 지금보다 물감을 덜 썼을 것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들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주어라
1888년 7월
수확, 몽마주르를 배경으로 1888년 6월
그림은 나에게 건강을 잃은 앙상한 몸뚱아리만 남겨주었고
내 머리는 박애주의자로 살아가기 위해 아주 돌아버렸지
넌 어떠냐
넌 내 생활을 위해 벌써 15만 프랑 가량의 돈을 썼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쥘 뒤프레는 그를 후원해주는 예술애호가를 만났다지
나도 그럴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너에게 지우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이곳에 오면서 겪었던 발작 후에
나는 더 이상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건강은 확실히 좋아졌지만
희망이나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망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이제는 오직 필요에 의해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그림을 그릴 뿐이다
1888년 7월
그림 그리러 가는 화가 1888년 7월
오늘부터 내가 방을 얻어 살고 있는 카페 내부를 그리기 시작할 생각이다
저녁에 가스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이곳을 <밤의 카페>라고 부르는데
밤새도록 열려 있는 카페다
돈이 없거나 너무 취해서 여관에서 받아주지 않는
<밤의 부랑자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1888년 8월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서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부드러운 분홍색을 핏빛 혹은 완인빛 도는 붉은 색과 대비함으로써
부드러운 녹색과 베로네즈 녹색을
노란빛 도는 녹색과 거친 청록색과 대비함으로써
평범한 선술집이 갖는 창백한 유황빛의 음울한 힘과
용광로 지옥 같은 분위기를 부각하려고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본 회화 특유의 경쾌함을 담고 있다
1888년 9월 8일
인상파 화가 중 가장 겸손하고 예민한 시슬리의 작품을 보고
"화가가 술에 취해서 그린 것 같다"고 했던 테르스테크 씨가 이그림(밤의 카페)을 본다면
정신 착란 중에 그렸다고 할 것이다
아를의 라마르틴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1888년 9월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888년 9월 3일
아를의 고흐 ㅡ 노란 집 1888년 9월
노란집의 실제 모습
3층 고흐의 방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
내 얼굴색을 칠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면
다른 사람도 쉽게 그릴 수 있겠지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이번 주는 그림 그리고, 잠자고, 먹는 일 외에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 번에 6시간씩 총 12시간의 작업을 했고
단번에 12시간 동안 잠을 잤다
1888년 9월
너도 알고 있겠지만 과거에 이런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이곳의 자연은 정말 아름답다
모든 것이 , 모든 곳이 그렇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 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도저히 그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광경에 어찌나 열중했던지
규칙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1888년 9월 17일
아를에 있는 고흐의 침실 (나의 방) 1888년 10월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내일도 하루 종일 이 그림에 매달릴 생각이다
1888년 10월 16일
고갱의 의자 1888년 12월
편지와 50프랑 고맙게 받았다
네가 그림을 팔아주어서 아주 즐거워하고 있다
사랑하는 동생아
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그걸 모두 갚으려면 (꼭 갚게 되리라고 믿고 있다)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돼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림 그리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리고 늘 이렇게 많이 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히는 까닭은
네가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돈 문제와 관련해서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50년을 살면서 1년에 2천 프랑을 쓴 사람이라면 평생 100만 프랑을 쓴 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는 당연히 100만 프랑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로서 평생 100프랑짜리 그림을 천 점 그려야 한다는 말인데
그건 너무너무 힘든 일이고
실제로 그림이 100프랑에 팔리고 있으니 ....
그렇다면 우리의 과업을 이루기는 너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힘들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겠지
언젠가
내 그림이 팔릴 날이 오리라는 건 확신하지만
그때까지는 너에게 기대서
아무런 수입도 없이 돈을 쓰기만 하겠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해진다
1888년 10월 24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바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다오
내가 잘못했다면 나를 가둔다 해도 반대하지 않겠다
그냥 그림을 그리게 내버려둔다면 약속한 주의사항을 모두 지키도록 하마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1889년 1월
감시를 받는 조건으로 그것도 요양원 안에서만 그림 그리는 걸 허락받게 된다면
맙소사, 돈을 써가면서 그곳에 들어갈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런 상황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병원에서도 잘 그릴 수 잇을 것이다
어쩌면 더 잘 그릴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여하튼 생각중이다
너도 잘 생각해보렴
이 모든 것이 세상의 최고 중에서도 최상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1889년 4월 30일
같은 날짜에 고흐는 여동생 윌에게도 편지를 썼다
ㅡ적어도 석 달 동안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지내게 될 것 같다
그동안 네 번의 심각한 발작을 겪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그리고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다
아무래도 군에 입대할까 싶다
이곳에 있는 게 싫은 까닭은
나에 관한 소문이 마을에 이미 다 퍼져서 사람들이 나를 거부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기계적으로 살게 된 후로 나는 아주 소심한 성격이 되었다
반면에 건강은 아주 좋으며 그림도 그리고 있다
요즘은 분홍색 꽃이 핀 마로니에 나무가 늘어선 산책로를 그리고 있다
1889년 5월 2일
6 프로방스 생레미에서(1889.5월 ㅡ 1890.5월)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5월 아를 근처에 있는 생 레미에 있는
생폴 드 무솔 정신병원에 입원,
그곳에서 1년을 지내면서 <별이 빛나는 밤>등 많은 그림을 그렸다
9월에 <별이 빛나는 밤>과 <붓꽃> 두 점이
파리 앵데팡당 살롱전에 전시되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즈음 고흐의 작품은
동료 화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1890년 1월 18일 브뤼셀의 20인전에 그의 유화 여섯 점이 전시되었고
<붉은 포도밭>이 안나 보흐에게 팔렸다
아를르의 론강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년
생트마리드라메르
생트 마리드라메르 해변
아니메르의 세느강변
폭풍이 몰아치는 슈브닝겐 해변
갈라트의 풍차
샤퐁발의 집
아를르 전경
7 오베르 쉬르 오아즈에서(1890.5월 21일 ㅡ 7월 29일)
오베르의 시골길
고흐 ㅡ 오베르집
오베르 쉬르 오아즈역
비 오는 오베르 들판 1890
룩셈부르크 정원에서
아스니에르의 리스팔 레스토랑
봄낚시 클리쉬다리 1887년
파리 교외에서
그랑자트 다리와 세느강 1887년 여름
집과 노동자의 풍경
밤의 카페 테라스
레스토랑의 내부
붉은 포도밭 ㅡ 생전에 400프랑에 팔린 유일한 작품
고흐의 붉은 포도밭을 사간 화가 안나 보쉬
안나 보쉬 ㅡ < 6월>
88년 2월부터 15개월 아를에 머물면서 2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팔리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며
가난으로 환청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같이 지내던 고갱과 다투어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광기도 나타난다
두사람이 있는 농장 1890년
오베르의 거리
두사람이 있는 오베르의 거리와 계단
생떼마리 거리
밤의 하얀집
농촌 풍경
석양의 씨뿌리는 사람
산에 있는 밀밭길
종달새 나는 밀밭
붓꽃이 있는 아를의 풍경
해뜰무렵의 봄 밀밭
생폴 요양원이 보이는 밀밭과 추수꾼
아를르 지방의 시골집
밀레 ㅡ 씨 뿌리는 사람
26
고흐 ㅡ 낮잠 (밀레 모작)
밀레 ㅡ 낮잠
첫 발자국 (밀레 모작)
낡은 방앗간
꼬드빌의 초가집
어느 봄날의 공원
인물화
눈길 위로 나무를 지고 오는 사람들
삽질하는 여인
토탄을 줍는 두 명의 농촌 여인
일터로 가는 아침 1890년
석탄 운반선
직조공 옆으로 열린 창
프랑스 경보병
아를르의 무도회장
비탄에 잠긴 노인
로트렉이 그린 고흐
고흐가 그린 고갱
닥터 가세의 초상 1890년
닥터 레이
서적 가판상 요젭 블록
이튼 정원의 추억
흔들의자에 앉은 룰랭 부인
밀짚모자를 쓴 시골 부인
트라뷔 부인의 초상
책을 읽고 있는 지누 부인
올랭의 아기
까미유 울랭 1888년
두 소녀
고흐의 병원생활. 교회
1888년 10월 23일 고갱하고 공동생활
12월 23일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잘랐다
고갱은 파리로, 고흐는 병원으로 ...
1889년 1월 고흐는 퇴원했으나
환각 증상을 보였고
이를 불안히 여긴 주민들의 고발로 3월말 까지 병원에 감금.
1889년 5월 아를 근처에 있는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그곳에서 1년을 지냈다
평온한 시기였으나 예술적으로는 광기의 시기였다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등 200점을 그렸다
생 레미 정신병원
생 레미 정신병원의 정원
생 레미 정신병원의 정원
생 레미 병원의 정원
병원 정원의 오솔길 1889년
생 레미 생폴 병원 앞에서
아를 요양원의 정원
아를 요양원에 있는 고흐 동상
생폴 요양원 정원에 있는 소나무와 민들레
아를의 병원의 병실
아를르 트리크타이유 다리
아를 공원 입구
아를의 도개교
아를의 다리와 빨래하는 여인들
1877년 5월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갔지만
신에 대한 이론적 학습과 실제로 복음을 전파하려는 갈망 사이에서 방황.
1878년 7월 신학 공부를 그만 두고 전도사가 되어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벨기에의 탄광지역인 보리나주로 갔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와 광적인 신앙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인해 다른 종교인들과 마찰을 빚게 되고
여러모로 힘든 생활을 했다
오베르 교회
오베르 교회
오베르는 오아즈 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누에넨의 교회
누에넨의 오래된 공동묘지탑
누에넨의 오래된 공동묘지탑
선한 사마리아인
피에타 1889년 5월 들라크루아 모작
꽃. 나무
1882년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흐는 나무에게서 영혼같은 것을 보았다고 한다
꽃
꽃 핀 아몬드 가지
붓꽃
활짝 핀 복숭아꽃
라일락
복숭아꽃
배꽃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사이프러스가 보이는 밀밭
사이프러스와 푸른 밀밭
올리브나무(감람나무)
올리브 과수원
올리브 과수원
올리브 과수원
2
3
4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숲
5
오렌지색 하늘의 올리브숲
나무
꽃이 핀 밤나무 1890년
석양의 버드나무
거리 수선공들
꽃이 핀 복숭아 나무가 있는 과수원
꽃이 핀 살구나무가 있는 과수원
떡갈나무가 있는 바위
복숭아 꽃이 활짝 핀 라 크로
생레미의 포플러
양귀비가 있는 들판
한 커플과 푸른 전나무
오디 나무
정원 안의 가쉐 아가씨 1890년 6월
고흐의 펜화. 판화
고흐 작업실의 창문
마담 지누
아를의 여인 마담 지누
동생 테오에게
나를 먹여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팔겠다
1889년 1월 아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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