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8. 17:31ㆍ미술/한국화 현대그림
1988년 미국 브룩클린대학 대학원 졸업, 작가 오치균은 1956년 충남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 미국 브룩클린 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어요. 서울과 뉴욕 등에서 수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진바 있으며, 전업작가로서 그의 삶 자체가 작업의 작품에 관한한 열의와 진실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성이란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서의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또는 교육적인 선약의 개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의 삶과 작업에서의 진지함, 그리고 그것이 배어 나오는 작품에서의 느낌이 서로 유리되지 않는다는 뜻에서의 진실성을 의미해요. 또한 그는 원천적으로 인간과 삶의 그늘같은 부정적인 측면에 서려있는 기운을 끄집어 낼줄 아는 심미적인 패시미스트이자 모든 것에서의 얽매임을 가볍게 끊을 수 있는 자유주의자랍니다.
풍경이라는 형태감을 형성하는 오치균의 화면은 실상 가까이서 보면 무수한 반복에 의하여 구축적으로 메꾸어진, 형태를 가늠하기 힘든 추상적인 색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복"이라는 행위이랍니다.
작가는 이러한 반복의 행위에 지루함 자체를 잊어버릴 정도의 거의 무의식적인 "집중력"을 요하면서 이 집중의 순간순간에 "어떠한 무의식적인 전이의 힘"을 조형에 담아내고 있어요.
이것이 형태와 색감에 의한 조형적으로 순순한 상징성과 심리적인 효과를 발산하는 주요인이에요.
오치균의 풍경이 풍경 이상의 효과를 획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컴컴한 암흑 속에서 희미하게 떠오르며 주변의 빛을 반사하는 물체를 그린 오치균의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솔직히 이 작품이 추상화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면서도 마치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진, 혹은 나뒹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를 화면 중앙의 물체가 어렴풋하게나마 검은 대지를 배경으로 스멀거리고 있는 것 같은 환영을 보고는, 이 작품이 홈리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사실에 섬뜩해 했던 기억이 있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반응했던 이유는 아마도 연극 무대처럼 꾸며진 컴컴한 화면에 어둠 속으로부터 물체가 떠오르도록 투사되고 있는 한줄기 빛으로 인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이 빛은 비록 미약하고 희미하지만 대상이 갖는 끈질긴 생명력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둠 속에 묻어 버리고 싶은 현실의 비루함과 고독함 더 나아가 소외까지도 여지없이 들추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홈리스의 절망, 비루한 현실과 생명력을 그린 작품
희미한 빛과 끝 모를 어둠, 소외와 고독으로 대변되는 오치균의 <홈리스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되었어요.
한편 [소외된 사람들]로 대변되는 <홈리스 연작>에서 오치균의 관심은 인체 그 자체보다는 인체가 놓인 배경인 공간에 주목해요. 작품 제목이 예시하듯 내용적으로 화면을 주도하는 것이 홈리스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인체는 화면의 주인공 자리를 주장하지 못한답니다.
그 결과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 작품을 지배하는 것은 버려진 공간 혹은 도시 한 귀퉁이에 드리워진 컴컴한 어둠인지도 몰라요. 작가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뒷골목과 그늘진 공간을 작가 특유의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하여 드러냄으로써 공간적으로는 비록 개방되었으되 내용적으로는 좀 더 내밀함을 갖는 심상의 공간으로 표현해내고 있답니다.
작가의 공간을 대하는 태도 변화는 이후 공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 되요.
이제 그의 화면을 주도하는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이 커다란 주둥이를 떡 벌린 채 어둠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위압적인 도시의 골목과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빌딩의 한 자락, 혹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텅 빈 대합실의 모서리가 된답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쉽게 간과해 버리기 쉬운 공간을 작품화한 시리즈 중 89년의 [지하철]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어요.
어둠이 두껍게 깔린 지하철 통로는 희미한 조명을 통해 그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 어둡고 암울한 터널의 엷은 빛을 받아 조야할 정도로 번쩍이는 철로가 뒤쪽에서부터 뻗어 나오고 있답니다.
어두운 지하 터널 속 선로와 그 위에 번쩍이는 반사광은 불야성을 이루는 뉴욕의 일상이 이 터널에 드리운 어두움과 고립을 내포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요. 문명의 이기인 지하철은 현대 도시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공간을 주도하는 어둠과 고독, 암울함이라는 혈액을 뉴욕이라는 신체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핏줄처럼 표현되고 있는 것이에요.
결국, 이 시기 오치균 작품이 보여주는 도시 공간의 의미는 가히 작가 개인의 심리적 경지를 넘어 상징적인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답니다.
현대 도시인의 심리를 반영하는 도시와 골목의 풍경
한편 공간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간에 걸친 귀국 생활 후 뉴욕으로 다시 돌아간 후 부터에요. 이 시기 뉴욕은 3년 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작가는 이 도시를 이전과는 다르게 그리게 된답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서울 시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변화된 시점을 통해 조감도적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도시를 작품화하고 있어요. 즉, 이 시기의 작품은 도시의 한 부분을 클로즈업 하기보다는 넓게 확보된 시야에 들어온 뉴욕을 커다란 화면에 그려내고 있답니다.
설령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 중 시야의 폭이 좁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이전 시기처럼 후미진 골목이나 버려진 공간을 다루기보다는 줄지어 선 자동차나, 건물 사이의 도로, 혹은 쓸쓸한 겨울을 혼자 견뎌내고 있는 깡마른 겨울나무 등으로 작가의 관심이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대상에 대한 관심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의 화면을 주도하였던 빛의 성격에도 변화를 초래해요. 이전 시기의 빛이 덮어버리고 싶은 어두운 일면을 들춰내는 빛이었다면, 이제 빛은 사물의 형체를 드러내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용됨으로써 그 중요도가 상실됨을 알 수 있답니다.
제2의 뉴욕시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시기의 작품은 오치균의 이름을 한국미술계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뚜렷하게 각인시킨 시기라 할 수 있어요. 특히 뉴욕이라는 대도시가 갖는 냉정함과 차가움을 그곳을 뒤덮은 음습한 겨울 기운과 눈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겨울 풍경에서는 <오치균 화법>으로까지 명명할 수 있을 특유의 기법이 빛을 발하고 있답니다.
붓 대신 자신의 손을 사용하여 화면 위에 물감을 집적해나가는 오치균의 작품제작 방식은 눈 위를 지나간 자동차 바퀴 자국과 도시의 먼지가 뒤엉켜 시커먼 진흙처럼 변해버린 눈더미, 회색빛 배경의 건물이 어우러져 일궈내는 쓸쓸하면서도 고즈넉한 겨울 풍광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의 기법이었어요. 동시에 그러한 뉴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박한 삶을 거친 화면의 질감을 통해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답니다.
회색 탄광촌에 타오르는 생명의 빛
오치균의 사북은 무엇이었는가요? 그의 대답은 참으로 싱거워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답니다. 사북의 매력은 작가 자신의 눈에 포착된 하나의 소재 이상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 같았답니다. 애초부터 사북이라는 사이트(site)에 관심을 가졌는데. 사이트? 단순한 장소(환경이나 땅)의 개념이 아니라 그 장소의 정치.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이 첨예하게 살아 있는 리얼리티의 장소랍니다.
사북의 역사를 생생하게 밝혀주는 곳은 역시 탄광 근로자들이 살았던 집단 거주지. 1980년대까지 노동자들이 북적거렸던 집단촌이 아직도 산 중턱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어요. 이젠 사름은 빠져 나가고 주인 없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답니다. 한바탕 전투를 치러낸 뒤의 폐허처럼. 버림받은 유령의 도시처럼 변해 있어요. 기관 없는 신체랄까요?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에요. 21세기에 내 눈앞에 닥쳐 있는 이 풍경과 이내 빛 바랜 앨범 속의 사진 이미지로, 흑백 텔레비전의 영상 이미지로 빨려 들어갔어요.
6.25 이후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았던 판자촌 같은.
아니면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 강점기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집단 수용소 같은 탄(炭)색 이미지….
어디에선가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집 작부들의 요염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답니다. 더 지킬 것이 무엇인가요?
주인은 언제 이 문을 닫았으며. 문은 언제 다시 열리는 걸까요?
길거리 여기저기에는 가전 제품들이 아예 갈 곳을 잃고 나뒹굴고 있어요. 탄광 노동자들에게 꿈의 보금자리였던 사택(5층 아파트)도 아직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모두 가건물같이 지어져 있답니다.
슬레이트 지붕에 건물 높이가 사람 키 남짓한 곳. 골목길과 접해 있는 대문이
곧 방문인 집 구조. 근로자들의 숙소로 쓰던 작은 <하꼬방> 들.
출처 ; 네이버 캐스트 & 정인선
East Village, Acrylic on Canvas, 72x108cm 1994
4 p.m. Winter, Acrylic on Canvas, 92x122cm 1993
Empire State, Acrylic on Canvas, 198x132cm 1994
East village, Acrylic on canvas, 41x51cm 1994
Delancy, Acrylic on Canvas, 121x81cm 1994
오치균의 눈에 비친 뉴욕은 몹시 황량한 장소,스모그와 침침한 하늘에 덮혀 진저리나게 휑덩그레한 거대도시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심한 관찰의 표면 위로, 훨씬 강렬한 상상력이 펼쳐지는데, 도시풍경이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는 일종의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신화로 접근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관객이 일단 광경의 저 적막한 아름다움 속에 빠져들게 되면, 오치균은 이제 끊임없이 얼굴을 바꿔대며 여러 층위의 의미를 내보여 준다. 그래서 이것은 곧이 곧대로의 뉴욕의 모양이 아니다. 이 도시의 상습적인 방랑자 오치균은 각별한 공명이 튕기는 듯한 느낌이 들게 모든 것을 욕심스럽고도 열렬히 사진을 찍어댄다. 이것은 그에게 야외 스케치와 맞먹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그는 직접 이 사진을 가지고 작업하지는 않고 오히려 이 이미지들을 상상적인 광경들로 해석해 낸다. 회화와 드로잉에 임할 때에 그는 여러 요소들의 결합을 마음껏 창조하면서 자유자재로 재배치하고 개발해 낸다. 여기서 이 도시의 구조, 심지어는 규모까지도 마치 드러마 작품들인 양, 작가 고유의 서술을 드러내주려는 시도에 부응한다.
매리 죤스 :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뉴욕거주. Arts Tema Celesto에 작품이 발표된 바 있다.
진달래길 I / Acrylic on Canvas, 108x162cm 2006
창경궁2 / Acrylic on Canvas, 120 x 120cm 2006
봄 / Acrlyic on Canvas, 91 x 91cm 2007
봄 I / Acrylic on Canvas, 100x100cm 2006
오치균은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한다. 그래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영상들을 그린다. 시내풍경, 북한산에서 내려다 본 건물들이 밀집된 골짜기, 현저동 재개발 철거지역, 한강다리 혹은 남대문, 독립문, 절두산 성지 같은 역사적인 기념물들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것들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은 매력적이다. 매력적이라는 표현은 조금 가볍다. 오히려 그의 그림은 무겁게 우리를 누르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비형상적이며 평면적인 화면을 지향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주된 경향이지만 형상적이며 삼차원의 환영를 그려내는 그의 그림은 이상하게도 비현대적이라든가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그의 거칠고 무거운 화면을 계속 주시하게 한다. 두가지 요인이 그의 그림의 신비를 벗겨준다.
무엇을 그릴까? 어떻게 표현할까? 이 의문들은 분명 모든 예술가들이 항시 직면하는 고민거리인데, 오치균은 눈에 띄는대로 혹은 닥치는 대로 쉽게 그려내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소재선택이나 그 표현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 혹은 자유스러움은 정말 그에게는 그렇게도 쉬운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런가?
그의 작품의 소재는 어디에서나 발견되며,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아무것이나 그려내어 작품화하는 그의 능력을보면 믿음직한 말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그는 분명 특별한 소재들을 찾아다녔다. 그의 감각에 맞는 소재를 선택해왔다. 뉴욕에서 그는 그의 활동반경 내에 있는 것들을 작품화했다. 지하철 -철로와 어두운 통로, 계산, 보안등, 후미진 구석에 가끔 발견되는 거지들 등등- 그가 살던 아타프의 실내, 어두운 뒷골목 등을 그렸다. 이들 소재들 사이에는 일종의 유대와 공통점이 있다. 즉 그는 결코 아무 것이나 쉽게 그리는 화가는 아니다. 그는 일상에서 특별한 순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쉽게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유는 그가 일상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큰 이유는 그의 예술이 그의 삶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상을 예술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예술화한다. 그는 삶을 관찰해서 표현하기보다는 삶을 예술로서 사는 것이다. 이 독특한 그의 예술적 태도가 그의 작품의 독창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그의 예술적 태도는 증명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을 예술화하는 그에게 환경이 바뀐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변화는 그에게 분명히 극심한 혼란 혹은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무감각을 야기한다. 귀국으로 삶의 환경이 바뀌자 그는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던 뉴욕의 삶을 상실했다. 그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던 듯하다. 그의 작품이 주는 어두운 느낌,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무겁게 떨리는 광휘는 뉴욕의 분위기가 그의 체질에 여과된 것이었다. 뉴욕과 서울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귀국 직후에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남산을 그리고, 한강대교를 그리고, 새벽안개를, 석양을 그려내려 했다. 그 당시의 작품들은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
뉴욕의 삶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서울의 삶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게다가 인공적이고 밀폐된 뉴욕의 공간과 어느 정도 자연적이고 개방적인 서울의 공간은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그의 작업이 잠시 머뭇거렸던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 이 공간적, 시간적 차이를 극복해냈다. 그는 부지런히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며 취재하였고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서울의 삶을 정착시키기 시작했다. 뉴욕의 삶에서 독특한 그의 예술을 창안해내었다면, 이번에 그는 예술로서 삶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즉 그의 뉴욕시절에 형성된 시각으로 새로운 환경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미명에 겨우 형체를 드러내는 한강다리의 육중한 모습, 등불이 겨우 몇개 밝혀져 있는 캄캄한 주택가 풍경, 오가는 차량의 전조등이 어둠을 깨는 무악재 풍경 등이 뉴욕의 시각과 서울의 삶이 결합된 작품들이다.
오치균은 이처럼 그의 주변을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작품의 매력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우리도 공유하는 그의 일상이 표현되었기 때문에 우리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착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우리의 시선이 붙들리는 것이다. 그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돌연한 이미지를 끌어낸다. 그는 망원렌즈처럼 혹은 접사렌즈처럼 작동하는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매력적인 장면들을 포착한다. 도심 깊이 가라앉은 남대문을 순식간에 매력적인 이미지로 만드는가 하면, 독립문이나 절두산 교회에서 황폐한 도시나 성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차량들로 꽉 찬 거리풍경을 답답하게, 그러나 매력있게 그려내는가 하면 산 위에서 본 광경 - 두꺼운 공해 층으로 뿌옇게 보이는 - 을 그려낸다.
그의 독특한 구도감각과 함께 그의 작품을 이끄는 것은 특별한 분위기를 포착하는 그의 능력이다. 그는 아무 특징도 없는 일상적인 대상들로부터 특별한 것을 포착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는 어떤 장면을 특별한 순간에 포착한다. 그러나 그 특별한 순간은 한순간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조금씩 축적되고 여과되고 순화된 순간들의 집합이다. 정원의 한 때? 햇빛이 하얗게 내려비치는 때, 혹은 저녁의 어스름 등 가장 매력적인 순간들로 정화된다. 그는 무관심하게 지나치던 일상적 경험을 영구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그 느김에 꼭 알맞은 장면으로 재생해낸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던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독특한 구도와 대상의 특별한 분위기를 화폭 위에 실현시키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그는 많은 소묘를 한다. 그의 소묘는 대상을 충실히 묘사한다기보다는 그가 힘주어 까맣게 그어대는 굵은 선들이 대상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희색 화지는 검은 선들에 거의 완전히 뒤덮이게 되며, 그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빛이 비추이는 밝은 반점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한편 대상들은 명암과 원근에 의해 구축되어 나간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모방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화면의 내부에서 스스로, 또 작가의 내부에서. 이러한 그의 소묘는 곧바로 본격적인 제작으로 이어진다. 그는 아크릴릭 물감을 성형제소와 반죽하여 사용한다. 흰 종이 위에 무수한 검은 선을 긋듯, 적절한 명도와 안료가 반복되는 필치 (그는 손가락으로 그린다)로 시간이 갈수록 두터운 물감 층을 형성한다. 이 물감층들은 서서히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만들어가게 되는데, 그의 소묘처럼 대상들은 모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눈으로 보지만, 촉각으로도 느낄 수 있다. 마당, 시멘트 벽과 건물 등 그의 소재들은 매끈한 질감의 용매에 반죽된 안료로 재현된 것이 아니라, 석고가루라는 실제로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에 반죽된 안료로 만들어져 있다.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인 화면, 바로 이 특별한 점이 오치균의 작품이 비록 3차원 세계의 모방이면서도 화면의 실체를 부정하지 않는 실제성인 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근작들이며, 이미 언급한 그의 작품의 장점과 독특함이 더욱 고양되어 있다. 삶을 예술화하는 그의 독특한 제작태도가 그전보다 더욱 잘 실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대한 서울시내를 취재하고 돌아다니던 그의 관심은 이제 축소되어 그가 지난 5월부터 살고있는 부암동으로 좁혀졌다. 그 사이의 야외용 탁자와 의자들, 작은 창고건물, 진과 복순이라는 두 마리의 개와 개집, 개밥그릇이 그의 소재가 되고 있다. 그는 이 소재들 속에서 자유롭다. 산허리에 있는 지은 집의 공간, 건너편 인왕산의 모습, 집에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가의 집들은 분명 그가 사진기를 들고 취재다니던 서울시내보다는 그의 삶의 중심인 것이다. 그가 자유롭게 느끼는 만큼 그의 그림도 자유스럽고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이 그의 화면을 더욱더 생기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치균은 자기 능력의 극한을 표현해 내는 화가이다. 곁눈질하거나 엉뚱한 가능성을 탐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그 한계, 마치 결승점에 도달하려는 마라톤 선수의 고통과 같은 한계가 보인다. 그는 그의 한계를 알고 있기 대문에 더욱더 그것을 높이 설정하고 새로운 한계에 도전한다. 그의 그림을 감상하며 느낄 수 있는 치열함은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부암동의 삶은 혹은 그가 가깝게 알고 있는 세계가 아쉬운 점이 없이 표현된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그가 이제는 어떤 극한의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진다. 그는 어설프게 접근했었던 서울이라는 공간에 보다 나아진 시각과 경험으로 다시 도전할 수도 있고, 혹은 주변세계에 대한 통찰을 더욱 심화시켜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병욱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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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갤러리 번 원문보기▶ 글쓴이 : 피카소
“나는 붓이 싫다. 붓은 정교하게 구획하기 때문이다. 내 그림은 몸으로 비벼낸 자취다.”
화가 오치균은 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그림은 도구로서의 몸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도 바로 그의 몸이다.
그의 몸부림이 너무 처절하여 보는이들을 압도하고 가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낀다.
이번에 전시되는 그의 작품들은 최초로 공개되는 그의 일정시기에 국한된 것들이다.
1986년 부터 시작된 미국 유학시절 그의몸을 대상으로한 일련의 거칠고 야수적인 표현의 일련의 작업들과
1992년부터 95년까지 자신의 가족을 모티브로한 훨씬 밝아지고 따스해진 하지만 더욱 성숙하고 현재 그의 작업과
직접 연결되어질 정도로 원숙해진 세련된 작업들을 볼수 있다.
완벽에 가까운 무광. 그의 그림에서 윤택한 광택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그의 그림에서 반짝이는 광택은 지나친 사치로 느껴지며 사족일 뿐이다.
처절하게 캔버스 위에서 녹아내리고 흘러내리는 그의 육신은 무광택의 색의 향연속에서도
미이라같은 메마름으로 우리에게 호소한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리없는 작가들은 자신을 모델로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힘들던 유학시기 자신을 모티브로한 일련의 이러한 작업들은
아마 자신을 찿는 험난한 시기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위해.
아니면 좁은 침대위에 널부러진 자신의 몸뚱이를 그리며 외부와의 연결을 애타게 그리워 했을것이다.
위 작품의 일부
이시기의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특유의 페인팅 기법인 핑거 페인팅도 보이지만 나이프 페인팅과 브러쉬를
사용한 흔적들도 보인다.
그의 그림을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파스텔화로 느낄수도 있다.
그만큼 작가는 무광의 표면처리를 완벽하게 이루어내고 감상자로 하여금 더욱 작품에 몰입할수 있는 기회를 준다.
흐려진 눈동자. 다물어지지 않은 입, 움추린 어깨로 동그란 거울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약간 올려진 거울을 아래에서 바라보며 외로운 자아와 불투명한 미래와 자꾸만 문드러지는 현실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아직 전시 준비중이라 작품의 제목과 재료등을 알길이 없었지만 용제(물감을 녹이는 용액)를 많이 사용한 드리핑기법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빛과 인체의 만남은 항상 아름다운 조합을 이루어 냈었다.
드가와 같은 많은 인상주의 작가들이 성공했던것 처럼.
하지만 오치균 작가와 광선의 만남은 얼마나 마음이 아파 오는지.
거친 마띠에르와 다크 그레이,,짙은 엄버계열의 조합은 슬프다.
마치 거친 시멘트 담벼락에 그려진듯한 그의 나신
근육들은 긴장하여 가늘게 나누어지지만 생기는 없다.
돌출된 갈비뼈사이에 그의 고통이 새겨지고 외로움에 지쳐 발기하지도 못한다.
나름대로 서투르게 제목을 붙여보고 싶다면
오후에 흘러내리는 나.
제목은 몽환적이지만 그의 그림은 현실적이다.
풍요로운듯 보이는 세상을 살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스스로 외롭고 힘들게 살고있는지.
스스로를 가두고 소통을 거부하고 홀로 틀어박히며 자위에 몰두하는지.
작가가 다른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치부를 캔버스에 올릴수 있는 용기와 재주가 있었다는것이 아닐지.
이제부터 그는 소외된 인간이 아니다.
그에게 가족이 생겼다. 칠개월만에 태어나 인큐베이터 안에서 링거를 꼽고 누워있는 자신이 만든
최고의 창조물 새생명을 화폭에 담은 그의 그림(제목도 멋지다) 앞에서는 쉽게 발길을 넘기지 못한다.
그아이가 얼마나 고마웠을까,,그렇게 이쁘게 자라준 그의 첫딸을 위해 많은 작품을 남긴다.
지하층에 마련된 그의 가족관련작품은 계단을 다 내려오기도전에 이미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정도다.
그의 그림들을 보기도 전에 이미 그의 그림에 배어있는 사랑과 기쁨과 감사함이 감상자들에게 전염되는것이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너무 절박하게 외로웠기에 그 기쁨도 다른이들의 몇곱절이 되어 공명하는것이 아닐까.
이작품이 그려지던 시기부터 본격적인 그의 몸으로 그리는 그림들을 볼수 있다.
붓의 사용은 거의 볼수 없고 가까이에서 보면 물감의 덩어리들만 보인다.
엄청난 양의 물감사용. 마치 황토를 반죽하여 뭉텅이진것같은 거친 마티에르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 하나 하나의 반죽들은 행복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작가가 가장 아끼는 작품중의 하나라는 이작품.
약간 구부려진 눈썹과 무언가 이야기하려는듯한 눈망울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베어 나온다.
지금까지 작가 자신의 몸을 그리며 자신만을 이야기하던 작가에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릴일이 생긴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가 이 그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는 액자만 보아도 알수있다.
밝아진 색채 정성스러운 이목구비의 표현. 외로움에 처절히 녹아내리던 작가에게
참으로 소중한 이들이 자꾸 생겨나고 있는것이다.
어느덧 그의 작업에서 회청색이나 짙은 밤색계열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없어지고있다.
비록 사용되더라도 그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름을 느낀다.
오치균의 작업은 그의 가족이 만들어낸듯한 생각도 든다.
결국 그의 그림은 강한 인간애에 대한 열망의 과정이었고 지금도 그 구도의 길을 행복하게 걷고있는 작가가
아닐까.
오 치 균
작가 오치균은 1956년 충남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
미국 브룩클린 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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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그림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 프레지에(김희영)
2010.04.06.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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