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 16:55ㆍ미술/서양화
The Morning After (Gueule de bois), Indian ink and blue chalk, 1889, 47.1 x 55.5 cm
The Morning After(Gueule de bois) : la buveuse, vers 1889, Toile, 47.1 x 55.5 cm
(하바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화가의 모습 ((1864 - 1901)
화가의 초상화
(섬세한 얼굴, 정숙한 상체에 비해 하체는 부실하게 그려져 있다)
뚤루즈 로트렉의 드로잉과 페인팅을 둘러보면 그만의 작품기법과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재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해 내 다른 장면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와 모양새를 표현해 내는 능력이 있다. 그가 그린 객체는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으며 초상화의 얼굴은 한결같이 조용히 숨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판 위로 옮겨진 화가의 가슴 속 깊은 영혼의 울림이 관객들의 가슴으로 미어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 술잔을 앞에 놓고 둥근 탁자에 앉아있는 여인의 얼굴은 강렬한 펜 자국이 없는데도 눈가와 입가를 통해 모델의 슬픔과 화가의 외로움이 뒤섞여 있다.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어놓고 시선을 끌어낸다. 눈,코 입부분은 펜 터치가 불분명하게 느껴지면서 전체적으로 살아있는 분위기를 주는가하면 머리와 술잔, 옷 끝자락은 강한 펜터치로 인위적 생동감을 더해주면서 전체적인 조합을 이루어냈다. 먼거리에 있는 물건은 흐리게 처리하고 앞에 놓인 것은 굵고 강한 터치로 눈길을 끌고 있어 3차원적 공간감각을 살려냈다. 뚤루즈는 특히 빛과 어두움의 대조를 통해 입체적인 느낌을 부각시켰다.
Woman with a Black Feather Boa, 53 x 41 cm, 1892
화려하고 검은 의상을 입은 여인을 들여다보면 눈, 코, 입술 아래로 그려져 있는 강한 그림자로 인해 그녀가 입체적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된다. 머리카락의 굵기와 색상에 변화를 주고 흘러내린 앞머리 옆으로도 흐릿한 그림자를 묘사하기 부드러운 펜터치를 사용했다.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강렬한 그림자가 그녀의 강렬한 인생을 묘사해 내는 것만 같다. 검은색상을 이용했으면서도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얼굴에서 사용한 섬세한 펜터치와는 달리 굵고 힘찬 터치로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극명하게 살려냈기 때문인 것 같다.
Woman at her Toilet, cardboard, 67 x 54 cm, 1896 (Paris, Musee D'orsay)
목욕탕에 돌아않아있는 여성작품은 그의 펜터치가 얼마나 부드러운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가는 선을 중복되게 그려넣으면서 모델을 형상화했다. 선은 굵고 가는 차이가 없음에도 선을 중복해서 그려넣어 어두운 부분을 입체화시켰다. 특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면 일정한 굵기의 선들을 계속 그려주면서 뒤끝으로 묵어낸 모습이 얼마나 입체감있게 묘사됐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목욕탕에 앉아 상체를 벗고 다소 얼룩이 묻은 것만 같은 하얀 침대시트로 하체를 두른 채 등을 돌리고 넋없이 앉아있는 이 여인은 검은 부츠를 신고 있다. 알몸인 그녀는 왜 신발을 신고 있을까. 그것도 신고 벗기 힘든 갑갑한 부츠를.. 그녀는 몸을 씻기 위해 목욕탕에 온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주체할 수 없는 회한을 안고 아무 말도 없는 회색빛 벽을 그냥 보며 무언의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고통스럽게 살아온 지난 날의 흔적 너머로 아름다웠던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Suzanne Valadon, 54 x 45 cm, 1886 (코펜하겐)
갈색바탕에 그려진 모자를 쓴 여인의 경우 역시 눈코입의 묘사는 선을 구별해낼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나 모자와 의상은 굵은 선을 그려녛어 구성에 변화를 주면서 생동감 넘치게 했다. 마치 몸은 가만히 있는데 옷과 장신구가 움직임을 종용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Portrait de Gabriel Tapié de Celeyran adolescent, Fusain, 1882.
La blanchisseuse, 1889, Toile, 93 x 75 cm
그의 그림을 보면 슬픔이 묻어난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모습인데도 모델의 가슴 저면에서 울리는 고통의 소리가 귓전을 여지없이 때려온다. 아마 화가의 비탄이 모델의 영혼을 가득채우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캔버스 위로 한 사람이그려져있던 두,세사람이 그려져있던 뚤루즈의 손길이 닿은 캔버스 위엔 외로움과 고독, 방황, 기다림, 후회를 연상케 하는 영혼들이 숨어있다. 아마 화가의 인생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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