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 09:24ㆍ미술/일본화·중국화·기타
1. 晋. 고개지 《洛神賦圖》 낙신부도
2. 唐. 염립본 《步輦圖》 보련도
3. 唐. 장훤, 주방 《唐宮仕女圖》 당궁사녀도
4. 唐. 한황 《五牛圖》 오우도
5. 五代. 고굉중《韓熙載夜宴圖》 한희재야연도
6. 宋. 왕희맹《千里江山圖》 천리강산도
7. 宋. 장택단《淸明上河圖》 청명상하도
8. 元. 황공망《富春山居圖》 부춘산거도
9. 明. 구영《漢宮春曉圖》 한궁춘효도
10. 낭세령《百駿圖》백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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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東晉 고개지의 <낙신부도>
27.1cm x 572.8cm , 北京故宮博物院
사랑의 슬픔을 그린 낙신부도(洛神??)
동진때 유명화가 고개지(344-405)가 그린 산수 인물화로 현재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소장돼있다.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인 조식이 지은 <낙신부>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조식이 낙수(洛水)를 지날 때의 감회를 지은 것인데,
내용은 낙수의 선녀 복비(宓妃)를 만나 사랑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결국 헤어지는 슬픔을 묘사한 내용이다.
전하는데 의하면 조식은 견일녀라는 여인을 흠모하였는데 조조는 번연히 이를 알면서도 그녀를 조식의 형인 조비에게 시집 보낸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그만 참언을 당해 죽음을 맞게 된다.
그제야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한 조조는 조식을 궁중으로 불러 그녀가 시집올 때 가져왔던 옥과 보석으로 장식된 베개를 건네준다.
슬픔에 잠겨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낙수를 지나게 되었는데
조식은 그곳에서 견일녀의 영혼을 만나 사랑고백을 듣게 된다.
조식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과 슬픔에 못이겨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낙신부>라고 한다.
2. (唐) 염입본의 <보련도>
38.5 x 129.6, 北京故宮博物院
토번사절단을 맞는 당태종- 보련도(步??)
당나라 초기 염입본(?~ 673년)이 그린 보련도는 문성공주와 송찬감보의 정략결혼 내용을 담고 있다.
641년 당태종은 토번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문성공주를 토번의 국왕인 송찬감보에게 시집 보내게 되는데,
보련도는 당태종이 토번의 사신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오른쪽에 시녀들에 둘러싸여 앉아있는 이가 당태종이고 그를 마주한 붉은 도포의 관리는 전례관(典?官),
그 뒤는 토번의 사신 녹동찬, 그 다음 인물은 역관이다.
염입본은 당나라의 궁정화가로 그의 작품 대부분은 당태종과 연관되어 있다.
3. (唐) 장훤, 주방의 <당궁사녀도>
51.8 x 148,요령성博物館
51.8 x 140.8,1860年“火??明?”后被掠??流失海外,미국博物。
46 x 180 요령성博物?藏。
33.7cm x 204.8cm,故?博物院藏。
48.7 x 69.5 台北故?博物院藏。
당나라 미인도- 당궁사녀도(唐?仕女?)
‘당궁’은 당나라 때 궁중, ‘사녀’는 궁녀를 뜻한다.
당궁사녀도는 당나라 장훤(張萱 현종때), 주방(周昉779-805)이 그린 것으로 이들은 당나라때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장훤과 주방은 귀족의 유락생활을 표현했고 사녀화와 초상화에 뛰어났다.
장훤은 당나라 귀족 부녀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잘 표현할뿐 아니라 궁녀들의 처량한 생활을 교묘하게 화폭에 담아냈으며
주방은 장훤에게서 배운뒤, 독특한 화법으로 부녀자들의 풍만한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일대의 화풍을 이루었다.
4. (唐) 한황의 <오우도>
28.8 x 139.8 , 北京故?博物院?藏珍品。
중국정부가 구매한 오우도(五牛?)
두루마리 종이에 채색한 것이다.
당나라 한황(723-787)이 그린 것으로 굵은 선을 사용하여 소의 완만함과 무게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섯마리의 소는 좌측에서 우측으로 일렬로 배열됐는데 그 외형적 특징이나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풀을 뜯고 있는가 하면 머리를 쳐들고 있으며 천천히 걷고 있는 등 소들의 모습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오우도’는 1950년대초 중국정부가 홍콩 경매시장에서 구매해 중국으로 돌아오게 된 명화이다.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편지가 왔는데,
‘오우도’가 홍콩경매시장에 나타났으니 중국정부가 구매해 국보가 해외로 유실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중국정부는 문화부 인사를 홍콩에 파견해 ‘오우도’의 진위를 감별 후 6만 홍콩달러에 사들였던 것이다.
5. (五代) 고굉중의 <한희재야연도>
27.9cm ?69cm, 北京故?博物院?藏珍品。
연회장면을 그린 한희재야연도
오대(五代)때 남당(南唐)의 화가 고굉중이 중서시랑 한희재 집에서 열리는 연회의 정경을 담아 군주에게 바친 그림이다.
그림은 음악을 듣는 장면, 춤 구경하는 장면, 휴식하는 장면, 손님과 작별하는 장면 등
서로 관련되면서도 독립된 5개의 장면을 담고 있다.
국사보다는 유흥에 빠져있는 남당의 군주는 한희재에게 재상을 위임하려 하지만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한희재는 매일같이 집에서 연회를 열고 즐긴다.
군주는 화가 고굉중에게 몰래 진실을 알아오라 명하고 손님을 가장하고 한희재의 집을 찾은 고굉중은
연회가 열리는 장면을 머리에 새겨두었다가 그대로 그려서 군주에게 바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한희재야연도’이다.
‘한희재야연도’는 줄곧 중국 황실에 보존돼 있다가 마지막 부의황제 때 민간에 유출된다.
중국 근대 유명한 화가인 장대천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털어 ‘한희재야연도’를 구매 후 소장하고 있다가
해외 이주를 앞두고 중국정부에 헌납하였다고 한다.
이 그림을 연결하면 총 길이가 3m에 달한다.
6. (北宋) 왕희맹의 천리강산도
51.5 x 1191.5, 北京故?博物院?藏珍品。
천리강산도(千里江山?)
북송(北宋) 시대 요절한 화가 왕희맹(王希孟1096~1119))이 18세에 그린 그림으로 현존하는 그의 작품으로는 유일하다.
높고 낮은 산세가 기복을 이룬 산과 산 사이로 이어지는 강이 신비한 청색, 녹색을 띠며 장관을 이룬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강의 모습, 힘차게 흘러내리는 폭포, 화려한 누각,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음새가 없는 비단에 그려진 그림으로 길이가 12m에 달한다.
2008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무용수들이 온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완성된 그림 밑으로 LED화면을 통해 청록색의 중국 옛 산수화 영상이 펼쳐졌는데
그것이 바로 왕희맹의 ‘천리강산도’이다.
7. (北宋) 장택단의 청명상하도
24.8 x 528.7, 北京故?博物院?藏珍品。
청명상하도
‘청명상하도’는 북송의 풍속회화 대가 장택단(1085-1145)이 청명절 시가지의 시끌벅적한 전경을 그린 그림이다.
5m 길이의 그림에는 도합 1,659명의 사람과 209마리의 동물, 수백여채의 집과 점포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시장을 보거나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가마를 타고 가는 장면 등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행동이 생기있게 그려져 있다.
‘청명상하도’는 크게 3개 부분으로 나누어 볼수 있다.
첫부분은 시가지 외곽의 정경, 가운데는 강 옆의 번화한 모습, 뒷부분은 시가지 풍경을 그린 것이다.
현존하는 장택단의 작품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2005년에는 중국언론에서 ‘청명상하도’가 표구작업 중 일부가 잘려나갔다고 보도해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잘린 부분은 그림 첫부분 약 80cm 지점에 있는 암당나귀로, 길가 반대편의 숫당나귀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며
그 옆에 쉬고 있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라 한다.
‘청명상하도’는 표구 전 정려판본(情?版本),
표구 후 당나귀의 머리부분만 남고 나머지가 지워진 실려판본(失?版本),
당나귀를 초가지붕으로 해석하고 그려 넣은 초붕판본(草棚版本),
무표정한 당나귀를 임모한 판본 등 4가지가 있으며
잘려나간 부분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8. (元) 황공망의 부춘산거도
33 x 636.9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
원(元)대 황공망( 1279~1368)이 종이에 그린 수묵화이다.
황공망이 82세 때에 3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산수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부춘산은 항저우 근처의 산으로 황공망이 만년에 살던 곳이다.
그는 자신이 익숙한 산과 강의 풍경을 6m가 넘는 긴 두루마리에 꾸밈없는 기법으로 담아냈다.
이 그림은 순탄치 않은 소장내력을 갖고 있다.
청대때 이를 소장하고 있던 오문경이 죽으면서 평소에 자신이 아끼던 이 그림을 함께 태워 순장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림은 불더미 속에 던져졌는데 그의 조카가 구해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림은 두개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다.
앞부분은 ‘잉산도(剩山圖)’라는 이름으로 현재 저쟝성박물관에 보존돼있고
뒷부분은 ‘부춘산거도’라는 이름으로 대만 고궁박물관에 보관돼있다.
9. (明) 구영의 한궁춘효도
37.2cm × 2038.5cm,?藏台北故?博物院。
한궁춘효도
명(明)나라 때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인 구영(仇英)의 대표작품이다.
원래 가구에 기름칠을 하여 옻칠로 그림을 그리던 구영의 작품은 여타 다른 문인화가의 작품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소설, 희극에 판화 형식의 그림을 많이 그려 유명세를 탔다.
‘한궁춘효도’는 이른 봄 궁 안의 궁녀, 태자, 후궁, 환관 등 1백여 인물들의 사소한 정경을 담고 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차림새가 화려하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섬세한 표현과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색깔로 후궁들의 일상생활상을 생동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구영의 필 끝에서 그려진 인물은 형상이 아름답고 선이 유창하게 흐르며 그 시대 풍조에 맞춘 판박이식 습성과는 구별된다.
그의 그림은 훗날 궁녀도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0. (淸) 낭세령의 백준도
102 x ?813, 目前保留在台北故?博物院
백준도(百駿圖)
청(?)나라 궁중화가였던 낭세녕(카스틸리오네16
낭세녕은 이탈리아인으로 강희제 때 선교사로 중국으로 들어왔다.
서양회화에 능통했던 그는 서양화가 최초로 중국의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동서양의 두가지 회화를 하나로 융합시켜 새로운 화풍을 만들었다.
청대는 중국 궁정회화의 전성기였으며 낭세녕의 이러한 화법의 영향으로 독특한 풍격의 청대궁정화풍이 형성되게 되었다.
‘백준도’는 낭세녕이 일생동안 그린 백여폭의 준마 작품가운데서 가장 성공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은 다양한 형태의 준마 1백필의 방목 서식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짙고 아름다운 색채와 복잡한 구도, 독특한 풍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료 상하이 저널
출처 :無爲自然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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