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0. 06:31ㆍ미술/한국화 현대그림
이미경 화가
이미경 화가의 작품은 제가 전에 한 번 포스팅한 적이 있었네요. 어쩐지 눈에 익더라니... ^^;;
이 그림, 참 맘에 듭니다.
방금 검색을 해봤는데, 글도 잘 쓰는 분이시네요. 외려 그림보다도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시는 분 같아 보입니다.
제가 엊그제 서울엘 갔었잖습니까? 이분도 바로 그날 전시회를 열었었네요.
'서울아트팩토리'라는 데가 아마도 북촌한옥마을이나 인사동 어디께쯤 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직빵으로 찾아가는 거였는데)
저는 이분이 저런 가게집 딸이라서 그 추억으로 그리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래의 글을 읽어보니까 꼭 그건 아니군요.
그렇다하더라도 아마 유년시절에 뭔가는 끈적한 사연이 닿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남희,「국토종단 여행기」에 쓴 걸 보면 이런 가게집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저도「필례약수」 고개를 넘어봤더니, 때 맞춰서 식당을 만난다는 게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나 아무 데를 가도 저런 가게는 늘 있고, 컵라면은 다 있으니까......
김남희가 동네 혼자 사시는 할머니 집에서 많이 자고 가던데, 저런 가게집에서 정보를 얻어들었던 거겠죠.
김남희씨가 이분 그림을 본다면 느낌이 남다를 겁니다.
두 사람이 나이도 엇비슷할 것 같고, 취향도 서로가 통할 듯한데, 함께 작업을 해보면..., ㅎㅎ
?
'직업인'으로서의 화가는 기법이나 대상에서 틈새시장을 노려야 할테지요.
따지고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와 변칙적인 현대미술'만 그런 게 아니라 실은 동서고금의 화가가 다 그랬던 것이죠 뭐.
혈연·학연·지연 같은 든든한 빽이 없다면 더욱 더 그래야 할테구요.
전에 책에서 봤는데, '길'을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분이 있었어요.
이 분처럼 글도 잘 쓰시고... 이영희 화가였던가(?), 그분도 대상을 잘 특화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런 빽도 없는 시골 화가가 추상화를 그려서 성공할 수는 없겠죠. 알아주기는 커녕, 누가 물어래도 봐주겠습니까?
전시회 포스터에 이런 귀절이 있더군요.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며, 안목은 주어진 환경에서 키워지는 것이다.
감각은 안목을 필요로 하지는 않으나 때때로 필요하며,
감각이 없어도 안목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그것밖에 알 수 없다.'
저는 가만히 생각하니 감각은 좀 있는데 안목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ㅋㅎ
그럼요, 키울 환경이 아니었죠.
|
강진에서_38x19cm_종이에 아크릴잉크 펜_2013 |
|
|
그리움의 상징 (Symbol of Yearning)
1. 되돌아보는 ‘가게’
지난 15년 동안 내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가게’라는 상징적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움과 추억의 대상이었고, 세대를 교감하는 소통의 장(場)이었다. 가게마다의 지역적 특성과 조형적 구조의 특징을 찾아 날카로운 펜으로 표현하고, 일관되게 리얼리티를 추구하며 많은 작업을 해왔다. 시대를 거슬러 현실을 외면한 채 은둔과 관념의 형식미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요즈음은 가게의 의미가 주는 사전적 해석을 해보기도 하고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작품을 들여다보곤 한다. 다시보니 가운데 꽉 들어찬 가게 이미지에 자연스럽게 놓여있는 소품 (빈 플라스틱 의자, 나무벤치, 노란 장판이 깔려있는 평상, 자전거, 빨간 우체통 등 등)들이 상호 어울림의 매개체였음을 알 수 있었다. 햇살아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정(情)과 풍경을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내 작품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정서 하나는 특별하고 거창한 간판이 내걸려 있지 않은 가게가 대부분이었다. 번쩍이는 이름으로 자신을 규정하기가 애매해서인지 원래 필요 없거나 아니면 낡아 희미해져서인지 체인편의점의 규격화된 조명과 너무 다르게 쓸쓸하였다. 지리적 환경과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섭리가 느껴진다. 얼마 전 열우물마을(十井洞) 초입에 있는 석이수퍼가 달동네 배경의 주무대인 영화를 보았다. 그곳을 찾아가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촬영이 끝나자마자 철거됐다는 글을 읽었다. 불현듯 조안리가게, 진안슈퍼, 가평로터리가게, 북한산아래 진관상회나 송천리의 장자상회가 떠올랐다. 이미 사라졌거나 탈피 과정을 마친 곤충의 껍질처럼 버려져있기에 기억으로만 간직하는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물론 군산상고 옆 석치상회나 곡성정유소가게처럼 기품 있는 가게도 있고 역전 평리의 옥기상회나 해남의 해성슈퍼처럼 친절한 곳도 있다. 사라짐과 건재함의 시계추가 기억 속에서 계속 교차되며 움직이고 있다. 그 선상에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도심과 건물의 절망적 균형미를 엿볼 수 있고 앤드류 와이어스(Endrew Wyeth)의 은둔과 섬세한 고독의 빛이 눈에 들어온다. 무언가를 그리고자하는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치열하게 작업하는 몇몇 작가들도 떠오른다. 세상이 제아무리 권력과 재력과 이데올로기로 급변하여도 이분법적 변화의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 것은 그리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해남에서 한양까지
지난 3월에 그린 ‘해남에서’라는 작품은 이 시대의 상징적 표상으로서 구멍가게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고요함조차 사라지게 할 정도로 숨죽이며 보는 풍경이다. 짙은 청자색 어둠이 내려앉은 초저녁의 하늘과 가게 등뒤를 빼곡하게 둘러싼 나무들이 병풍처럼 당당하게 서서 현실을 직시하는듯하다. 다소 신비롭기도 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하다. 가로등과 가게 유리문에 비치는 주광색 조명이 따뜻함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성인(聖人)의 밝은 눈빛 같기도 하다. 간판도 없다. 어둠이 내리면 다음날 해가 뜨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듯하여 한동안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내 작품과 삶의 많은 부분을 함축해서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좋아 밤풍경을 몇점 더 그렸다.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 전시를 하고 있는 이 곳 가회동60 자리는 얼마 전까지 ‘한양수퍼’라는 조그만 가게였다. 그 곳을 다듬고 손질하여 지금의 갤러리가 되었다. 북촌 한옥마을로 이어져 있어 목이 좋은 가게였을 것이다. 옛 구멍가게 터에서 전시를 하니 조금은 색다르게 느껴진다. 소품 위주의 작품을 선보여 이번 전시의 의미를 부여 해본다. 전시의 특별한 퍼포먼스나 유희적 혹은 즉흥적인 제스쳐는 없고 모든 작품은 절제된 선으로 그려지는 가게 풍경이다. 울산의 간절곶, 강진의 고즈넉함, 해남의 땅끝, 목포의 유달산, 한양수퍼까지 여행하듯이 그려낸 내 마음속 그리움의 풍경이 전시된다. 나도 내 작품 속 구멍가게에 들러 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쉬어 가고 싶다.
2013.6. 이미경 |
그런데 글이 묘합니다.
꼭 평론가가 이미경 화가의 작품에 대해서 안내글을 써준 것 같네요.
뒤에를 보니까 본인 글이 맞긴 맞는 것 같은데..... ㅋㅎ
아닌게 아니라 몇 작품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참, 이번에 최순우 옛집도 가보려고 했었는데,
동절기에는 방문객을 받지 않더군요. 12월~3월까지.
추가
'미술 > 한국화 현대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종하(1918 ~ 2012 (0) | 2014.10.24 |
---|---|
남천 송수남 (0) | 2014.01.13 |
흠. 아주 창의적인 작품이군 (0) | 2013.12.11 |
김세견 화백 (0) | 2013.08.25 |
정봉길 (0) | 2013.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