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여순감옥

2013. 1. 3. 19:57산행기 & 국내여행/펌) 여행사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4월 17일 청나라와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조약을 조인한후 요동반도를 점령하고...

일본의 요동반도 영유권을 반대하는 '삼국(러시아,프랑스,독일)간섭'에 의해 러시아는 일본의 세력을 축출하고,

1902년 항거하는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중국인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여순감옥을 건축하기 시작 하였다..

1904년 2월 4일 일본 함대가 러시아가 주둔하고 있는 여순군항을 기습적으로공격하여 러일전쟁이 발생되고, 

승리한 일본은 다시 여순(旅順)을 점령하였으며..

점령후 1907년 여순감옥을 현재 규모의 형무소로 크게 증축하였다고 하네요... 

1907년 일본이 확장 증축한 여순감옥은 275 여개의 여러 형태의 감방과 지하감방으로 구성되여 있으며, 

약 2,000여명을 동시에 수용 가능한 대규모의 형무소이고 1906년에서 1936년 사이 연간 수감자는 약 2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수감자는 주로 일제에 항거한 애국지사로 중국, 한국,러시인이고,

그외에 터키, 독일인등 반파시즘 투사들이 투옥되어 있었답니다.

 

 

 

 

 

 

 

 

 

 

 

 

 

 

 

 

 

 

 

 

 

 

 

 

 

 

 

 

 

 

 

 

 

요 아래 몇장이 안중근 의사가 계셨던 감방입니다..  딴 방과 틀리게..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 이라서.. 특별하고 책생과 모든것이 다 같추어전.. 방에서.. 계셨다고 하네요.. 물론 간수도 개별적으로 한사람이 있어서 모든것을 시중도 들어주고 했고.. 아마 내 생각으로는 지금 유명인사가 감옥에 가면.. 저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순감옥은 수감자 감방, 검신실(檢身室), 고문실, 사형집행실 등으로 구성되여 있으며.. 

여순감옥의 외국인 출입을 통제 하였던 중국정부는 2009년 10월 1일부터 전면 개방을하였답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역사학자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

엄청난 재산을 투입해 독립군 후진 인재양성에 투자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을 비롯하여

최흥식, 유상근, 손기업, 박민항, 류상근 지사등이 여순감옥에서 사형되거나 가혹한 고문으로 옥사 하였다.

  1,2층은 보통감방인데 정원 7~8명에 수감자를 10여명 넘게 수용하여 누워서 취침은 불가 했으며, 

3층은 독방으로 사형을 언도 받거나 형집행 대기 죄수들을 수감했던 곳이다.

1945년 8월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한후 여순에서 철수하고, 

다시 쏘련의 붉은군대가 주둔하면서 여순감옥 사용이 중지 되였으며

1971년 여순감옥을 전시관으로 복원하여 일반인에게 개관하였고, 

1988년 중국은 국가중점역사문화재로 지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 영토문제로 일본과 중국이 갈등을 빛고 있는 상황이라서 중국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많이 온다고 합니다..

 

 

 

 

 

 

 

 

 

 

 

 

 

 

 

 

 

 

 

 

 

 

 

 

  아래에 아카시아 나무가 감옥의 역사와 같이하고 있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