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6. 17:14ㆍ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월둔에서 아침가리까지 20km를 걷다.
10년 전 쯤이다. 오지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아침가리는 군인들의 신병훈련소마냥 꼭 거쳐야 할 코스이며 이곳을 다녀오지 않고 '오지여행 했다'라고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성지 같은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오지라는 말을 꺼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종착지인 갈터휴게소 쯤에는 버스가 50여대가 주차할 정도로 정도로 북적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계곡길로는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8년 전 우연히 아침가리를 접했다. 원래 방동약수터를 가려 했는데 그만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넘어 버린 것이다. 그때만 해도 방동약수가 고개너머에 있는 줄 알았다. 개인약수도 고개 너머에 있었거든. 비포장길이 만만치 않았다. 차 한대만 간신히 갈 수 밖에 없는 좁은 길의 연속이다. 흙길이라기 보다도 바위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울퉁불퉁하다. 4륜구동형 SUV가 아니면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길이다. 바위에 바퀴가 걸릴 때마다 차가 출렁거린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건만 한술 더 떠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핸들을 꽉 쥐며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차를 돌릴 곳이 마땅치 않으니 미칠 지경이다. 왜 이곳까지 넘어 왔는지 후회가 막심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오기가 발동했다. '에잇~ 끝까지 가볼꺼야.' "턱턱..." 나무 좌우로 부딛치는 소리가 들리고 바닥에 닿을까 조심스럽다. 약수터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고 길은 더 험해진다. 마치 외진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이라도 만나면 물어보건만 조경교를 건너고 텃밭을 지나니 까만 건물에 나오는데 '조경분교(폐교)'러눈 간판을 보게 되었다. '朝耕' 그럼 이곳이 그 유명한 '아침가리' 였다말인가. 난 이렇게 우연찮게 아침가리와 첫인연을 맺게 된다. 지명까지 확인했으니 그냥 되돌아가기는 억울했다. 왠지 도로의 끝을 확인하고 싶은 오기가 가슴에 샘솟는다. 그리고는 차를 몰고 계곡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차를 멈춰야만했다.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경고판이 차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수해로 인해 다리가 뚝 부러진 것이다. 이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명지가리가 나오고 구룡덕고개를 넘어 월둔까지 갈 수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에 차를 세우고 트레킹에 나서고 싶었건만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 건널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혼자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는지 모른다. 다시 차를 돌려 폐교인 조경분교 앞에 섰다. 이 오지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여러번 외쳤더니 ...큼직한 개가 나타나 꼬리를 흔들고 나온다. 이놈이 물면 어떻하지. 조금 있다가 그 유명한 털보아저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속세가 싫고 산이 좋아 이곳에 터를 잡고 산다고 한다. "걸어 왔어요?" "차를 타고 넘어 왔어요." "이곳은 차를 타고 넘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걸어오는 분들에게는 차를 한잔 대접하는데~~" 그리고는 들어가 버린다. 다시 지옥같은 고개를 넘으며 조만간 찾아 털모아저씨 차를 얻어 마시겠다고 결심했는데 무려 8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우연히 모 트레킹 여행사에서 무박2일 코스를 보게 되었다. 방동약수에서 아침가리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가 꿈꾸어왔던 홍천 내면의 월둔을 시작으로 구룡덕재-명지가리-육노루골-더렁골-버드나무지골-조경동분교-조경교-아침가리 계곡-진동 갈천까지 무려 20km, 대한민국 최고의 허파길을 거닌다고 한다. 이런 종주코스를 소개하는 여행사는 처음 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2014년 3월까지 월둔에서 조경교 구간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출입금지인데 여행사가 그걸 몰랐던 것이다. 조경교에 도착했을 때 산림감시원에게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어쨌든 이런 무지 덕에 까마득한 숲을 7시간이나 걸었으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월둔부터 조경교까지는 임도를 따라가게 되어 물에 젖을 염려는 없다. 조경교부터 아침가리까지는 계곡을 따라 가게 되는데 계곡을 12번을 건너야 할 정도로 힘들다. 현재 일반인에게 개방된 코스는 방동약수(버스가능)나 방동고개 헬기장에 주차한 후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조경교까지 와서 아침가리 계곡을 따라 가다가 진동에 도착하면 된다.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다. 버스는 진동에 대기하고 있지만 승용차로 왔다면 택시를 부르면 된다. 택시 011-379-5497 현리개인콜택시
밤 11시 30분. 양재역을 출발해 3시쯤 홍천군 남면 광원리(월둔)에 도착했다. 이때가 전국민의 관심사인 축구 한일전이 벌어진 시간이다. 인솔자에게 TV를 틀어달라고해더니 한사코 거부한다. "지금 2시간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20km를 걸을 수 없습니다."
정감록에는 삼둔사가리가 등장한다.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 水,風,火 의 재난이 들지 않는 곳으로 전쟁의 참화까지 피할 수 있는 곳이란다. '둔'은 산속에 평평한 땅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을 의미하며 '가리'는 계곡안에 자리잡은 땅을 말하는데 소 한마리 하루에 갈 수 있는 단위인 '갈이'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니 난 가리 2개를 걸었으니 소 이틀치를 걸은 셈이다. 3둔은 홍천군 내면에 월둔삼거리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살둔, 오른쪽 달둔이 자리한다. 달둔은 계방산으로 이어진다. 4가리는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적가리를 말한다. 달둔고개를 넘으면 명지가리가 시작되고 조경동교를 지나면 아침가리가 진동 갈터까지 이어진다. 방태산 자연휴양림 가는 계곡길은 적가리, 아침가리 오른쪽에 연가리가 자리하고 있다. 첩첩산중에 달덩이 하나만 볼 수 있는 월둔.
하얀 물봉선이 지천에 깔렸다. 구룡덕재까지는 야생화 천국으로 으시시한 숲길도 지난다. 고개 너머는 어떤 꽃이 나를 기쁘게 해줄까. 1시간쯤 걸었을까 울창한 숲그늘에서 가끔 하늘이 열린다 왼쪽으로 방태산(1436m), 구룡덕봉(1388m)이 오른쪽으로 응복산(1156m), 가칠봉(1240m)이 보인다. 산줄기가 스크럼을 짠 것처럼 어깨를 맞닿고 있는 것이 말 그대로 산병풍이 둘러져 있다. 체력이 바닥 난 것일까, 한 두명씩 나를 추월하더니 결국 제일 뒤편에서 걷는다. 꼴찌라도 좋다. 이 좋은 길을 서둘러 가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굽은 고갯길을 넘어본다. 첩첩 산중아래 월둔마을이 아른 거린다.
드디어 고개 정상~단축 마라톤 테이프 처럼 보인다. 꼬박 1시간 30분이 걸렸다. 이곳을 넘으면 명지가리 된다. 고개 하나 넘었을 뿐인데 이곳은 신세계였다. 아침햇살을 받은 나무는 신록처럼 연둣빛을 띄고 있다. 박하사탕 10 개는 입에 넣은 것 처럼 가슴이 화해온다. 낙엽송 숲을 거닐면서 내가 이 여행사 버스에 올라 탄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자축을 거듭한다. '난 운이 좋은 놈이야.' 고개 너머에 편편한 곳에서 아침을 먹는다. 이제부터 종착지인 진동계곡까지는 비포장 임도까지는 줄곳 내리막길이다. 몸은 길에 의지해 걸으면 된다. 이렇게 4시간을 꼬박 숲길을 거닐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너무나 행복한 길이다.
구룡덕봉, 가칠봉에서 흘러온 계곡을 따라 간다. 조경분교까지 첩첩산중을 지나 무려 10km나 이어진다. 설악산처럼 경사도 있는 것도 아니고 깊은 소를 일궈내는 것도 아니고 완만하게 흘러간다. 우직한 돌쇠처럼 말이다. 가끔 하늘이 열린다. 보글보글 퍼머를 한 아줌마처럼 엄청난 나무를 품고 있었다. 어른 두사람이 지날 정도로 좁은 길이 이어지다가 간혹 트럭이 다닐만큼 너른 길도 나와 길의 변화무쌍함에 취해본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는 첩첩산중 원시림은 바로 이곳.
수해로 다리가 분지러진 곳에 휴식을 취했다. 아침햇살에 따뜻하게 데워진 다리위에서 바라본 계곡 풍경이 참 아늑하다..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매일 먹어도 싫증나지 않는 밥 같은 곳이 바로 명지가리다.
거대한 밭이 나온다. 이제 사람이 살 만한 곳이겠지. 바로 이곳이 아침가리 조경동이다. 아침가리는 사가리 가운데서 가장 길고도 깊다. 아침나절에만 밭을 갈수 있다고 해서 아침가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산이 높아 점심시간이 지나면 금방 해가 저물기 때문이란다. '아침가리'라는 예쁜 이름을 놔두고 하필 '朝耕洞'이라 했는지 모르겠다. 공무원이 행정편의상 한자로 만들어 등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조경동 분교에 도착했다. 털보아저씨는 폐교옆에 피라밋 집을 짓고 산다고 한다. 이 곳에서 낮잠을 잘 시간을 줬다. 신문지를 펴고 잠깐 눈을 붙였는데~~피로가 싹 가신다.
학교를 벗어나니 산자락 아래 너른 밭이 등장한다. 4시간동안 두 번째 만난 농부는 우산 모양의 모자를 머리에 이고 열심히 물을 뿌리고 있다. 잡초같은 풀은 조 라고 하는데 앞으로 한달내에 어른 키보다 더 크게 자란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시간이 오전 10시. 정말 아침가리사람들은 아침에만 밭을 갈까?
드디어 아참가리 계곡 입구인 조경동교가 나타났다. 산림초소가 있어 근무하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축구 어떻게 되었어요." "한국이 2:0으로 이겼어요." 월둔에서 넘어왔다고 하니 산림초소 아저씨한테 혼이 났다. 다음에 오면 벌금을 메기겠다고 엄중 경고한다. 조경동교는 지금까지 만난 다리중에 가장 컸다. 여기서 직진하면 방동고개를 넘어 방동약수가 나오고 진동에서 이어지는 418번 지방도와 만나게 될 것이다. 일반 관광객은 고개를 넘어와 이곳 조경동교 아래를 걷게 된다. 바로 아침가리의 시작지점.
바로 방동약수-방동리고개-조경동교-아침가리골-진동산채. 방동약수에서 3km 산을 오르면 방동리고개에 닿고 이곳에서 비포장으로 3km 내려가면 조경동교에 닿는다. 조경동교에서 다시 아침가리를 따라 6km를 걸으면 진동2교에 닿는다. 그러니까 임도 5km, 계곡 6km 총 11km. 식사와 휴시까지 하면 5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계곡길이다. 계곡옆으로 숲길이 이어지는데 계곡을 따라 걸어도 좋다. 물은 완만하게 흐르기 때문에 걷는데 지장은 없다. 단 비닐봉투를 여려 개 준비해서 미끄러져 물에 빠지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 핸드폰 빠뜨린 사람을 여럿 보았다.
진동산채가 있는 갈터까지 직선거리는 3km 밖에 되지 않지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기에 7km나 되며 시간은 더디어진다. 트레킹 시간은 대략 3시간 정도, 계곡은 무려 13번의 몸을 틀고 있어 어느쪽으로 가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다시 또 트레킹 . 물을 튀겨가면서 희열을 만끽한다. 하류 4km 구간이 물이 말고 계곡과 소가 많아 사람이 가장 많다. 수심이 깊지 않고 경사가 완만하며 모래톱이 형성되어 머물다 가기에 그만이다. 내려갈 수록 사람들이 많다. 되도록 상류에서 노는 것이 상책.
드디어 20km 대장정을 마치니 큰 길과 만난다. 바로 이곳이 갈터. 버스정류장에서 산나물과 버섯을 파는 아줌마가 피곤한지 쓰러져 잔다.
출처. 카페 '모놀과 정수' 글쓴이. 카페지기.
- 발췌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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