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29. 18:19ㆍ미술/일본화·중국화·기타
오대 산수화,,
위현[衛賢]
오대남당의 궁정화가.
五代南唐画家,京兆( 今陕西省西安市)人。南唐后主李煜时为内供奉。善画台阁、盘车、人物等。初师唐末画家尹继昭,后学吴道子画法,尤以界画见称于时。北宋 《宣和画谱》认为,他画高崖巨石,浑厚可取,而皴法不老,画林木虽挺劲而枝梢不称其本;自唐至五代,以画宫室得名者仅得卫贤一人。
--(公元10世纪)〔五代·南唐〕长安(今陕西西安)人,生卒年不详。仕南唐后主李煜朝(961-975),为内廷供奉。善画界画及人物,初师尹继昭,后刻苦不倦,执学吴道子。长于楼观殿字、盘车水磨,能按比例“折算无差”,透视正确,构图严谨,刻画精细,无俗匠气,见胜于时,被称为唐五代第一能手。兼工山水、高崖巨石,浑厚凝重而皴法不老。尝作《春江钓叟图》,李煜为其题《渔父词》二首:“阆苑有意千重雪,桃李无言一队春。一壶酒,一竿鳞,快活如侬有几人。”“一棹春风一叶舟,一纶茧缕一轻钩。花满渚,酒盈瓯,万顷波中得自由。”《宣和画谱》著录御府所藏其作品有《闸口盘车图》《雪宫图》《渡水罗汉像图》《蜀道图》《神仙事迹图》等25件。
传世作品有《高士图》轴,绢本,淡设色,纵135厘米,横52.5厘米,画东汉梁鸿、孟光夫妇“相敬如宾,举案齐眉”之故事,全图山石浑厚,树木茂密,干笔点苔,皴染精到,结构严谨,具有较高艺术价值。前隔水有赵佶书“卫贤高士图”五字,幅上有清乾隆帝题记,现藏故宫博物院;《闸口盘车图》卷(传),藏上海博物馆。
《高士图》立轴,绢本,设色,横52.5厘米,纵134.5厘米。北京故宫博物院藏。
《闸口盘车图》绢本,水墨设色,纵53.2厘米,横119.3厘米。上海博物馆藏。
조간 [赵幹]
五代 남당의 화가.주후(後主)이욱 재위때 화원학생이 되었다.산수와 임목(林木)을 잘 그렸고,강남 일대의 건물,나룻배,어촌,강촌 풍경을 많이 그렸고,화죽(畵竹)그렸다.대표작으로 강행초설도《江行初雪图》가 있다.
赵幹, 江宁人(今南京), 南唐后主李煜时为画院学生。善画山水林木, 长于布景, 多作江南景物。笔法苍劲流利,景物真实生动。全卷描绘长江沿岸渔村初雪情景。画面上天色清寒, 树木笼雾, 江岸小桥, 一片初白, 寒风萧瑟, 江水微泛, 一派天寒寂静之景。江上渔夫不顾天寒地冻捕鱼, 而岸上骑驴者却畏缩不前, 人物神情描绘逼真生动, 渔人和旅人恰成绝妙对比。另外, 画中树石笔法老硬, 水纹用笔尖劲流利, 天空用白粉弹作小雪, 表现出雪花的轻盈飞舞。此画一片天赖,意境高雅幽远。
《江行初雪图》五代 赵幹 绢本水墨设色 纵25.9厘米 横376.5厘米 台北故宫博物院藏 全圖
이성 [李成] - 평원산수(平遠山水),,
919~967?,중국 5대~북송 초기의 화가. 자는 함희(咸熙). 당 종실의 후예이며 원적은 장안(협서성 서안). 조부(祖父) 이정은 당말의 국자제주(國子祭酒)로 소주차사에 임명되었고 그후 전란을 피해 청주익도(산동성 임치현)로 옮겼다. 이 청주 땅을 영구(營丘)라고 했으므로 그후 이성을 이영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부, 부친 모두 유학자였으며 그도 유학에 뜻을 두었고 38~40세경 후주의 추밀사 왕박(王朴, 915~959)에게 초청되어 변경(하남성 개봉)에 갔으나 얼마 후 왕박이 죽어버려 사관(仕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와 술로 번뇌를 달래다가 희양에서 객사했다.
5대(五代)의 난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불우한 처지를 시주(詩酒)로 달래고 뜻을 산수(山水)에 의탁하였다. 5대의 관동(關同)을 스승으로 하고, 한림(寒林)의 경관을 그렸는데, 그의 수법(樹法)은 한림해조묘(寒林蟹爪描)라고 하여 그 이후로 북종화풍의 한엄(寒嚴)한 성격으로 오랫동안 전해졌다.
사대부의 고원한 이상을 광원한 산수 경치에 담아 담묵에 의한 연림평원(煙林平遠) 속에 「천리지척」의 풍경을 그렸다. 관동(關同), 범관(范寬) 등과 함께 화북계 산수화 양식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후기에 곽희(郭熙)에게 계승되어 이념화된 북종산수화의 중요한 일면을 전하고 있다. 이곽파라고 한다.
본래 과작(寡作)인데다 손자인 이유(李宥)가 변경윤(抃京尹) 일 때, 배액으로 이성 그림을 사서 모았으므로 북송말에는 벌써 많은 모조품이 나돌아 다녔다. 현존 작품으로는 『무림원수도』(번양, 요영성 박물관), 『교송평원도(喬松平遠圖)』(삼중, 등최당문고)가 있는데, 이성화풍을 잘 전해 주고 있다.
李成(919-967)宋初杰出画家。字咸熙。长安(今陕西西安)人。曾流寓青州(今山东益都)。因为信在“营丘”,故又称“李营丘”。幼好文学,气调不凡,性情旷磊有大志。画山水,北宋初推为第一。初师关同,后自成一家。惜墨如金,常用直擦的皴波,写平远寒林。画树木节处,不用墨圈,只点下大点。通过用淡墨涂抹,所作雪景,峰峦林层,凡烟支变灭,水石幽涧,树木萧森,山川险易,莫不曲尽其妙。民载中说他的画:“扫千里于咫尺,写万趣于指下”。江少虞的《皇朝事实类苑》里说:“成画平远寒林,前所未尝有。气韵潇洒,烟林清旷,笔势颖脱,墨情精绝,高妙入神,古今一人,真画家百世师也。……”《宣和画谱》说他擅长描写“山林薮泽,平远险易,萦带曲折,飞流危栈,。断桥绝涧,水石、风雨、晦明、烟云、云雾之状”。其作品有:《盘车图》、《渔乐图》、《寒鸦图》、《山水图》等。宣和御府所藏有一百九十五卷,真伪难辨。只有翟院深的摹本,非常近似,可以乱真,但缺少神气。现在保存的宋画中有他和王晓合作的《读碑窠石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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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至北宋画家
李成字咸熙,原籍长安(今陕西省西安市),先世为唐朝宗室,祖父李鼎唐末时为国子祭酒、苏州刺史,五代时避乱迁家于营丘(今山东省昌乐县东南)。李成出身于名门大族,博涉经史,磊落有大志。后周世宗推行改革措施,选拔贤能,李成受到枢密使王朴的器重,但未及举荐而王朴逝世。李成的抱负及才学不得施展,遂放意于诗酒绘画。北宋初,他应陈州太守卫融的邀请,举家迁赴陈州(今河南省淮阳县),每天以酣饮为事,后来醉死于客舍。
李成擅山水,师承荆浩、关仝,并加以发展,多画郊野平远旷阔之景。其作品成功地表现了烟霭霏雾和风雨明晦的气候变化中自然山水之灵秀,具有气象萧疏、烟林清旷、毫锋颖脱、墨法精微的特点。今有《读碑窠石图》、《寒林平野图》、《晴峦萧寺图》、《茂林远岫图》等传世。
《晴峦萧寺图》绢本,墨笔,淡设色。纵:111.4厘米,横:56厘米 ,美国堪萨斯城纳尔逊美术馆藏
《读碑窠石图》轴,绢本,墨色,纵:126.3cm,横:104.9cm。现存于日本大阪市立美术馆。
《茂林远岫图》绢本,水墨,纵:45.4厘米,横:141.8厘米, 辽宁省博物馆藏
《寒林骑驴图》 绢本,淡设色,纵:162厘米,横:100.4厘米。美国纽约大都市博物馆藏。
李成《寒林平野》
《乔松平远图》北宋 李成 绢本墨笔 纵205.5厘米 横126.1厘米 日本澄怀堂文库藏
《小寒林图》北宋 李成 绢本墨本 纵40厘米 横72厘米 辽宁省博物馆藏
《群峰雪霁图》北宋 李成 绢本淡设色 纵77.3厘米 横31.6厘米 台北故宫博物院藏
《雪山行旅图》,美国波士顿美术馆藏,南宋画
《采药图》轴,美国弗利尔美术馆藏,明人画
《柳荫渔父图》轴,美国弗利尔美术馆藏,明人画
《寒林高士图》轴,美国弗利尔美术馆藏,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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