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화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복잡한 원칙을 정립하는 데 전거가 되는 이가 바실리 페로프(1834~1882)다.
그는 풍속화 「마을의 예배」(1861)로 아카데미에서 금메달을 받고 외국 유학의 특전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해에 그린 「마을의 부활절 행진」은 작가 후원회 전시회에 출품하였다가 취소당했다.
부활절 행진이 시작되었는데도 술에 취한 성직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교회 문을 나서는 모습을
묘사하였기 때문이었다. - 이작품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효시로 평가 받는다.
페로프는 이탈리아로 떠났던선배들과 달리 프랑스로 간다.
"그림 그리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눈에 띄는 진척이 있었지만, 창조할 수는 없었다"며 유학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다. 부르주아들의 행복한 도시생활을 그리는 인상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러시아 민중의 삶을 그리는 것이었다.
페로프의 화면 구성은 단순하고 주제에 집중하는 힘이 있다.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에게 눈물을 강요하는 불의한 세상에 대한 비판은......
- 이진숙 《러시아 미술사》 p139~
바실리 페로프 / 마지막 여행, 1866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45.3 x57cm
2. (펌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가 있어 일본이라는 것이 염병을 떨고 있다. 그런 일본과 러시아 사이엔 쿠릴 열도란 것이 있는데 이것을 두고 일본이 또 염병을 떨고 있다. 일찌기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아먹은 러시아 황제는 알렉산드르 2세였다. 그는 또한 일본과는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맞바꾸었다. 그 쿠릴 열도를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해 2차 세계대전의 패전 배상금으로 러시아에게 다시 빼앗겼다. 그래서 두고두고 속이 쓰리던 일본은 쿠릴 열도의 수 많은 섬들 중 남쪽 4개의 섬이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기네 땅이라 우긴다.
그러나 러시아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민족이라 일본 어선이 쿠릴열도 영해에서 불법 조업을 하면 실탄을 쏘아댔다. 그래서 죽거나 부상한 일본인이 제법 된다. 러시아 땅을 이리저리 바꾸어 정리하기를 좋아한 알렉산드르2세를 해방 황제라 부르기도 한다.
귀족에게 예속된 수많은 러시아 농노를 해방시킨 황제라 하여 그런 별칭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말이 해방이었지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예속이었다. 손바닥 만 한 땅을 떼어주고 그 땅값을 수십 년에 걸쳐 분할 상환케 했는데 땅값 자체도 비쌌거니와 그에 따른 이자도 살인적인 고리였다. 쉽게 말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요즘 우리나라의 사채업자식 땅장사를 했던 것이다.
그런 개 같은 현실을 이겨낼 러시아인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귀족에게 백기투항을 하거나 도시로 단봇짐을 싸는 이농행렬이 이어졌다. 그런 피폐한 러시아 농촌을 그린 화가가 더러 있는데 바실리 페로프는 그 중 한사람이다.
위 그림의 제목은 마지막 여행이다.
러시아의 광활한 설원을 낭만적으로 눈썰매를 타고 여행한다는 말이 아니다. 집안의 대들보였던 가장이 죽었는데 그 장지로 가는 가장과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뜻이다.
유추하건대 이 가족은 손바닥 만 한 땅을 받고 귀족에게 해방된 농노 중 한 가족이었을 것이다. 빚으로 샀지만 평생의 소원 이었던 우리 땅을 가졌다는 기쁨도 잠깐, 그 땅으로는 먹고 살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어렵다는 사실 앞에 곧 절망한다. 돈 벌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가장은 건강을 해쳐 결국 죽게 된다.
썰매를 끄는 말은 자동차로 치면 연식이 20년은 족히 되어 봄직한 고물이다. 폐차 직전의 늙은 말이라는 것이다. 다리는 풀렸고 야윈 데다 등이 휘어졌다. 제 몸 하나도 끌기 힘겨운데 초상 치는데 끌려 나온 것이다. 주인네의 딱한 사정을 잘 알지만 말은 불만이 목구멍 끝까지 그득 차 있다.
마부석에 등을 돌리고 앉은 사람은 죽은 가장의 여자다. 여자는 남편의 죽음과 앞으로의 생계에 억장이 무너진다. 망연자실 넋을 놓고 힘없이 말이 끌고 가는대로 몸을 내 맡기고 있다. 이 춥고 가난한 러시아 땅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갈 일이 까마득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물음 앞에 여자의 등이 늙은 말 만큼 휘어졌다. 정말 어떻게 살 것인가?
건초에 반쯤 누워있는 소년은 아들이다. 눈이 퀭하고 입술은 파랗고 안색이 창백하다. 병에 걸려 있다는 말이다. 오들오들 떨면서 아버지의 장례에 따라 붙은 것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둘째 치고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다. 어쩌면 아버지를 곧 따라 갈 것 같다. 신의 가호가 없는 한 소년은 가망 없는 병을 앓고 있다.
아버지를 그래도 가장 생각해 주는 것이 딸자식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관을 열고 나와 “나딸리아”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 같다. 울어 부석부석한 얼굴, 엄청난 슬픔에 넋이 나갔지만 아버지가 추울 세라 모포로 관을 덮고 있다.
아버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무슨 일도 마다 않을 딸자식이다.
그 노력이 눈물겹다.
가난한 집의 가장은 죽음조차 초라하다. 관은 가장 값싼 기성품이다. 그래서 덩지에 비해 턱없이 작은 관이다. 큰 덩지를 작은 관에 우겨넣느라 사람들은 힘들었을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사체를 찌그려 넣고 끈으로 관을 묶었다. 그래도 망자의 옷자락이 비죽이 새어 나온다. 저 정도면 설령 아직 숨이 붙어 있다 해도 질식해 다시 죽을 판이다.
이 슬픈 초상 길을 동행하는 일행이 있다면 개 한 마리다. 충직한 개는 노을이 지는 서녘을 바라보며 구슬프게 짖고 있다.
짜르 알렉산드르 2세가 지배하던 러시아 농촌엔 이런 값싼 죽음이 흔했다.
그러나 해방황제 알렉산드르 2세 역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나로드니키의 한 사람인 그리네비츠키가 던진
폭탄에 의해 암살되었다.
빈자와 권력자에게 비로소 평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출처. cafe.daum.net/masango-25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