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17. 13:05ㆍ음악/우덜- ♀
가수 정훈희와 만났을 때도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잡음이 섞이곤 하는 오래된 트랜지스터 라디오지만
그것을 통해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얼마나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던가.
몇 집 건너서 흑백TV가 보급됐던 시절 화면에서 보았던 그의 자태는 또한 얼마나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가.
정훈희의 노래 인생에서 운명과도 같은 존재는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자였던 고(故) 이봉조일 것이다.
고교생이었던 정훈희에게 ‘안개’를 선사해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이봉조는
작고하기 직전 최후의 유작이 된 ‘꽃밭에서’를 건네주면서 “이것은 정훈희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교 1학년이었던 1967년 방학을 맞은 정훈희는 서울 그랜드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이트 클럽 밴드 마스터였던 삼촌을 따라와 연습삼아 몇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이봉조가 들어왔다.
나이트 클럽 옆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그는 정훈희의 목소리를 듣고 ‘필이 꽂혀’
단숨에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다. “쪼맨한(조그마한) 가시나가 건방지게 노래 잘 하네.”
당시 이봉조는 ‘안개’를 만들어놓고 자신의 색소폰 연주로 취입한 상태였는데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정훈희-이봉조 콤비는 이렇게 이뤄졌다.
‘나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로 시작되는 ‘안개’의 운치있는 노랫말과 곡조는
정훈희의 비음섞인 고운 음색과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17세 소녀는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안개’는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소재로 한 영화 ‘안개’의 삽입곡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거장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성일, 윤정희 두 남녀 스타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안개’는
정훈희의 노래와 재즈풍의 편곡으로 흐른다.
현대인의 물신주의와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과 같은 관념적인 주제를 아름다운 흑백영상에 담은 이 영화를 통해
신성일은 단순한 미남스타에서 배우로 거듭났고, 윤정희 또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됐다.
영화 ‘안개’의 성공으로 “소설도 걸작” “영화도 걸작” “노래도 걸작”이라는 ‘3걸작’의 신화를 남겼다.
정훈희-이봉조 콤비는 수많은 국제가요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70년 도쿄 국제가요제에서 정훈희는 ‘안개’로 가수상을 받았는데 당시 ‘댄싱 퀸’으로 유명했던
스웨덴 최고의 그룹 아바도 상을 받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갔던 터였다.
1972년 그리스 아테네 국제가요제, 1975과 1979년의 칠레 국제가요제 등에서도 정-이 콤비는 빠짐없이 상을 탔다.
국제가요제에서 무려 6번이나 입상한 정훈희에게는 자연스레 ‘국가대표 가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경향신문 주말섹션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