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24. 11:35ㆍ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제국의 미래 / 에이미 추아 | 비아북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 동양의 당(唐)과 몽골, 서양의 네덜란드와 대영제국, 그리고 현대의 미국까지.
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군사·경제적으로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른 극소수 국가들이라는 것.
‘제국의 미래’(원제 Day of Empire)는 바로 이들 초강대국(제국)을 다룬 책이다.
미국식 세계화의 위험성을 고발한 전작 ‘불타는 세계’(2002년)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자(예일대 법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제국의 흥망성쇠를 추적하면서 한 사회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초강대국이 되고 또 쇠퇴하는지를 탐구했다.
책의 논지는 간단명료하다.
성공한 제국들은 하나같이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다.
역으로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인종·종교·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됐다.
저자는 “한 사회가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선
인종·종교·배경을 따지지 않고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관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을이란 마을은 죄다 쑥대밭을 만든 몽골이나 적들을 말뚝에 꿰어 죽인 페르시아가 관용적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관용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인 의미가 아니다.
인종·종교·민족 등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공존·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뜻한다.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상대적’ 관용이다.
제국의 지배자들은 인종·종교·민족을 뛰어넘어 정치·문화적으로 피지배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최초의 패권국가 페르시아는 새로운 왕국을 정복하면 해당 지역의 법률과 전통을 포용하고 언어·종교·예식을 용인했다.
또 인종이나 종교에 개의치 않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장인·사상가·노동자·전사들을 동원했다.
이 같은 전략은 이후 등장한 제국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민권’을 통해 피정복민을 공동체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바꾼 로마는
“피지배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가장 성공했던 제국”으로 평가된다.
물론 저자는 관용이 초강대국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리·인구·천연자원·지도력 등의 요소들이 합쳐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용은 초강대국의 ‘필수 조건’이다.
역사상 인종주의와 종교적 광신을 토대로 한 사회가 세계적인 패권국가가 된 사례는 없다.
20세기 독일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또 ‘이단 심문소’로 대표되는 16세기 스페인의 불관용 정책은 비기독교도 주민들을 억압하고 추방해
인적 자본과 금융·사회자본을 잃고 세계 재패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반면 유럽 전역이 종교적 광신에 휩싸여 있던 1579년 종교의 자유를 건국헌장에 포함시킨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부터 종교적 난민을 유인하는 ‘자석’이 되면서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저자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미국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는 처음으로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다.
재능있고 진취적인 개인들을 배경에 관계없이 흡수해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를 제공한 게 성공 요인이었다.
1990년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IT혁명도 이민자들의 능력과 진취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2001년 9월11일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단언한다.
“미국 군사력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선제 행동”을 할 권리를 표명하는 등 강력한 개입주의·일방주의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이민정책이 불관용으로 돌아선 데 우려를 나타낸다.
역사상 초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혹은 ‘순수한’ 정체성을 거듭 단언하면서
동화가 불가능한 집단들에 대해 배타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순간 무너졌다.
저자는 “이민자들을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몰거나 미국의 성공을 앵글로색슨과 개신교의 가치관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은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수십억 사람들과 미국을 단단히 묶어줄 정치적인 ‘접착체’가 없다는 것도
제국으로서 미국이 직면한 문제다.
오히려 최근 미국은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포함한 서구적인 관용정책을 수출하려고 하면서 거센 ‘반미주의’의 저항에 직면해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정권을 변화시키고 미국식 제도를 강제하는 일에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쓰”거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계의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도를 떠벌리고 다니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나아가 미국이 전 세계를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개조하려는 무의미한 일을 자청하기보다는
‘세계를 위한 본보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뿐”이라고도 꼬집는다.
책은 초강대국 후보라 할 만한 중국, 유럽연합, 인도의 가능성도 탐색한다.
그런데 중국은 뿌리깊은 외국인 혐오와 자민족중심주의에,
유럽연합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두려움과 큰 장벽이 존재하는 이민 정책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전망한다.
오히려 수십개의 언어와 수천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에서 더 큰 가능성을 두는 느낌이다.
이 책은 중국계 미국인 2세인 저자가 자신의 부모와 가족을 이끌어온 “미국의 관용에 바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미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은 언제나 예외 없이 관용이었다는 것과 지금 그 비결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경고하는 경고문”이라고 밝혔다.
이순희 옮김.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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