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중국 기차여행

2014. 1. 17. 20:17산행기 & 국내여행/여행정보 & 여행기 펌.

 

 

 

대륙의 기차를 타고....

 

 

 

 

 

 

지금부터 10년 전 쯤이다. 통화에서 백하가는 기차에 올랐다. 간도의 대평원을 지나 백두산 산림지대를 관통하는 풍경을 난 잊지 못한다. 원초적 삼림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우국지사들도 마찬가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경의선 기차에 올라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단동까지 갔을 것이다 거기서 다시 봉천(심양)에서 이 철로를 이용해 북간도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바로 이 풍경을 80년전 우국지사들도 만났떤  풍경이리라. 한국은 이미 침대차가 없어졌지만 땅덩어리 넓은 중국은 침대차가 일상화되었다. 철도야 말로 대륙경제권의 핏줄이라고 할까? 땅이 넓은 중국은 도로보다는 철도가 발달되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철길은 이어졌다.북쪽도시 장춘에서 홍콩 옆 광주까지 가는 기차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 먼 곳을 기차로 달릴 수 있단 말인가?아마 3일은 꼬박 걸릴 것 같다. 김대건 신부가  도보로 6개월을 걸어서 간 길이란 말이다. 이번 구정 때는 36억명이 움직인다고 하니 만약 기차에 없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예전에는 차량도 낙후되고 또 중국인의 질서의식이 떨어져 차내 흡연 때문에 눈이 따가웠던 적이 있었다. 해바라기 씨앗은 물론 가래침마저 밷는 모습에 눈살을 지프렸는데 올림픽을 겪은 후 이곳이 중국이 맞나 할 정도로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모습이 그리을 때가 있다.갑갑한 일탈속에서 해방되어 괜히 나도 그 행렬에 동참해보고 싶은 충동이랄까. 은근이 이번 중국여행때 그 기차를 기대했던 것이다.

 

 

 

 

요령성 대련 북역을 보고 나는 눈이 뒤짚힐 뻔했다. 거의 웬만한 공항보다 더 컸고 해상 도시 답게 파도가 일렁이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시설도 깔끔한데다가 프렌차이즈 맛집까지 있어 여러모로 즐겁다. 툭하면 연착이었던 기차시간도 이젠 정확하다.이거이 만만디의 중국이란 말인가.

 

 

 

 

 

더욱 놀란 것은 이 고속열차다. 화해호(허세하오)~중국 과학의 집결체라고 할까? 시속 350km로 내달린다. 기차도 늘씬하고 매끄러운 것이 KTX보다 더 좋아 보인다.

 

 

 

 

 

 

대련역을 출발해  요령성 심양, 길림의 장춘을 지나 흑룡강성의 하얼빈까지 1,000km를 5시간에 주파한다. 그 전에는 20여시간이 걸렸는데 가히 교통의 혁명이라 하겠다. 가격도 5만원선으로 우리네 ktx의 절반가격이라고 할까.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죄석은 5열로 배열되어 있고 무궁화호처럼 앞뒤로 돌릴 수 있다. 조금은 갑갑하지만 앞뒤 간격이 넓어 견딜많다. 옆에 짐을 놓는 선반도 있다. 

 

 

 

 

 

 전기코드가 있어 노트북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어 좋다. 난 칭따오 맥주 한 병에 신강의 대추를 안주 삼아 차창밖 대평원을 감상한다. 위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나보다 심양부터는 온통 눈세계다. 설국열차가 따로 없네.

 

 

 

 

 

이번에는 연길역에서 침대기차를 타야 한다. 연길은 한글이 있어 얼마나 친근한지 모른다. 아마 세종대왕이 흐믓해 할 것 같다. 조선족 자차구인 연길은 모든 간판은 중국어와 한글로 병기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선족 자치구지만 이미 조선족 인구 50%가 무너진지 이미 오래다. 젊은이들이 돈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또는 중국의 대도시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가다간 30년 후면 한글간판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 동포여. 애 좀 많이 낳으셔요.

 

 

 

 

 

 

연길역 2층 대합실에 오른다.백두산 부조가 벽면 가득 차지하고 있다. 백두의 영봉과 파란 천지물이 가슴 벅차게 해준다. 동포를 하나로 묶는 상징물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아이들은 참 예쁘다. 진한 화장을 한 아이는 인형이었다. 역사에서 난 중국 동포를 만났다. 고향이 하얼빈에서도 북쪽으로 버스타고 4시간을 더 들어가야 고향인 하양산이 나온단다. 한때 조선족이 300 가구가 넘는 대규모 마을이었는데 20년 후 찾아갔더니 단 한 사람도 조선족이 없다고 한다. 이는 조선족 마을의 와해를 의미한다.. 조선족 학교에 다니면서 설움도 많았다고 한다. 한족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괴롭혀 수업을 마치면 20명이 뭉쳐서 다녔다고 한다.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도라고 하는데 자신의 땅을 찾아 이 추운 곳까지 찾아온 우리 혈육이었다. 그런 설움속에서 살았지만 지금 조선족은 큰소리를 치고 산다고 한다.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와 고향에 와서 땅도 사고 차도 굴리고 사니 한족들이 부러워한단다.  

한국인에게 대한 서운함도 잊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는 우리를 건사못할 때는 내쫒아 버리고 이제 다시 고향이라고 갔더니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난 그 말이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돌아가 식당에서 중국 교포를 만난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야겠다.

 

 

 

 

 

 

18시간이란 긴 시간을 보내기전에 단단히 준비하자. 빙천맥주~~상표가 한글이어서인지 내 입에 맞는다. 라면은 물론 간식거리까지 전부 준비.  

 

 

 

 

 

연길에서  낮 1시 차를 타면 발해만 끝자락 도시인 대련에는 아침 7시에 도착한다. 연길-안동-길림-장춘-사평-심양-대련까지 우국지사들이 다녔던 바로 그 길이다. 만주의 세찬 바람이 부는 창가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라잃은 설움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연길역. 분위기가 조치원 역을 닮았다. 할머니의 배웅을 받고 기차에 기차에 오른 적이 있었지.

 

 

 

 

 

18시간 중 15시간은 설원이 펼쳐진다. 만주땅이 눈이 많다는 것을 절로 실감하다. 무림의 고수들이나 마적떼들도 이런 풍경을 만났을 거야. 아이스크림 같은 눈을 접하니 내 마음도 정화되는 듯하다.

 

 

 

 

 

차창 밖 설경을 안주 삼아 빙천 맥주 한 잔 들이킨다. 설원 풍경덕에 맥주는 아이스맥주로 돌변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칭따오 맥주 공장에서 갓뽑은 생맥주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앞으로는 만주 벌판을 바라보며 삼키는 빙천맥주가 최고라고 난 말 할 것이다.

 

 

 

 

 

 

가뜩이나 예쁜 셜경에 일몰까지 더해진다. 큼직한 케익에 촛불이 하나 더해졌다고 할까. 기울어가는 태양에 살짝 내 지친 영혼을 얹히니 마음이 편해진다. 마지막 빛이 사그라질 때까지 난 저길 응시했다.

 

 

 

 

 

중국 침대 기차를 타면 특이한 것이 있다. 바로 차장이 기차표를 회수하고 카드로 바꿔준다는 것이다.물론 내릴 때 다시 돌려준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졌어도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제도 때문이 아닐까.

 

 

 

 

 

1층과 2층보다 3층은 불편하며 천장에 머리가 닿을 수 있어 갑갑하다. 그래서 가차삯도 조금 싼 편이다. 그러나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지난 여행을 정리하기에 그만이다.

 

 

 

 

 

기차내에서 잠옷바람으로 돌아다니는 중국인은 수시로 본다. 익숙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은 깜짝 놀라겠지만  3층이 편한 이유는 옷을 다 벗을 수 있다는데 있다.공공장소에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유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 친구 어찌나 코를 골던지 ~~난 이어폰 끼고 잠을 자야만 했다. 4시쯤인가 화장실에 가려고 눈을 떴는데 이 분과 눈이 마주쳤다.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 한마디. 크르응~~"

 

 

 

 

 

 

연길과 대련간 기차는 조선족이 반수 이상이다. 한국을 가려면 대련에서 인천가는 배를 타야 하며 또 저렴한 비행기가 대련에서 수시로 뜨기 때문이다. 25만 원 전후. 연길 인천간 비행기는 1주일에 3번. 항공료도 엄청나다. 그러니 모두 대련으로 가는 수밖에~

승무원도 조선족이다. 과음하는 우릴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한 말씀 하고 지나간다. "너무 술 많이 드시지 마셔요. 짐 조심하시구요."

투박한 여투지만 동포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고맙다. 

대련에 사는 언니를 만나러 가는 저 처녀는 예쁘기도 했지만 마음씨도 곱다. 중국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고 음미하는 모습이 천사 같았다. 중국에서 기독교 신자를 만나기 쉽지 않는데~~.. 사는 곳은 북한과 마주한 도문. 한국의 k-pop 가수도 나보다 더 잘 안다. 지드레곤을 좋아한다는데 ~~난 지드레곤이 빅뱅 멤버인 것을 중국 동포한테 들었다. 

"대련에는 돈벌러 갑네다."

"가면 직업을 구할 수 있어요?'

"어케 되겠지요"

"제 말이 투박하지비?"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어투가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얼큰밥을 선물로 줬네.

 

 

 

 

 

 

이 여인네는 한족 여인이다. 너무나 참하게 생긴 새댁이다. 남편이 조선족이란다. 말은 못히자만 대충 내가 하는 말은 알아듣는다. 자신이 먹을 빵까지 꺼내며 권한다.  대련까지 기차 타고 가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7시간 발해만을 횡단해 위해까지 간단다. 오로지 남편을 만기 위해~~.. 중국인, 교포, 조선족 아내, 한국인까지 구 한말 만주를 횡단하는 기차도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국으로 돈 벌러 가는 동포, 남편을 만나러 가는 아줌마, 아들만나러 가는 아저씨 등 그 사연 하나하나가 한국과 관련이 되어 있다. 어떤 아줌마는 한국TV를 즐겨보는데 왕가네 식구들 줄거리를 꿰뚫고 있었다. 어떤이는 한국서 왔다고 했더니 지나가다가 멈춰서 내게 악수를 청한다. 

"저 용정 삽네다."

핏줄은 어쩔 수 없나보다. 18시간 동안 난 한민족의 후예들과 함께 거친 대륙을 달렸다.

 

 

 

 

 

이렇게 행복한 사람들과 말이다. 이렇게 마시다보니 새벽이~~

 

 

 

 

 

 

예전보다 먹거리 많이 바뀌었다. 컵라면 이 많다.

 

 

 

 

출처.  모놀과 정수 http://cafe.daum.net/monol4/

 (카페지기가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