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의 눈물

2010. 6. 16. 07:02책 · 펌글 · 자료/정치·경제·사회·인류·

 

 

 

 

 

 

 

 

 

 

 

 

                  

                              ㅋㅋㅋ!  

 

 

 

 

 

 

 

 

 

 

 

 

"국제사회에서 내 나라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잘 알지요.

 하지만 내겐 부모같은 존재입니다.

 싫다고 해서 부모하고의 연을 끊어 버릴 수 있나요?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야죠."

                              -정대세, <포포투> 4월호와의 인터뷰에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남북더비.

한 장의 사진이 화제다.

우리에게 '인민루니'로 친숙한 정대세(24, 가와사키)가 킥오프를 앞두고 국가를 따라 부르며 뜨겁게 우는 사진이다.

정대세가 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물론 생각보다 그 뒷 얘기는 길고 또 복잡하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뜨겁게 울던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었다.

모든 축구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어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일을 꿈꾸지만

정대세에게는 그 꿈을 꾸는 일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일본사회에서 그는 외부자다. 재일동포이기 때문이다.

북한사회에서 그는 외부자다. 재일동포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그는 외부자다. 재일동포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어디에도 쉽게 속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

실제로 정대세는 국적과 관련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축구전문지 <포포투> 4월호에 자세하게 털어 놓은 바 있다.

"그 누구보다 조선의 대표가 되고 싶었지만, 만약 주변에서 여러 가지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가 국가대표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꿈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고, 드디어 내가 나라를 대표해 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스러웠다."

 

북측이 '우리학교'라는 민족교육기관을 12년이나 다니고 조선대학교까지 졸업한 정대세의 실질적인 상황을

양해해 북한대표로 뛸 수 있게 해 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을 FIFA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그가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설명이 따라 붙기는 하지만 정대세는 알려진 것처럼 북한사람은 아니다.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국적으로 가지고 자란 재일동포.

더욱이 북한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가 행정상의 분류를 위해 외국인등록증에 표시해 놓은 그의 국적은

한국이었다.

'재일(在日)'이라는 단어의 일본식 발음 '자이니치'로 일본사회에서 구별되는 동포들은 분단 반세기 동안

한국사람 혹은 북한사람도 잘 모르는 굴곡의 역사를 살아왔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 납치문제로 악화된 일본과 북한의 정치적 대립,

극우파의 등장과 함께 거세진 북한에 대한 비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

정대세는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내 나라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나도 잘 알지요. 뉴스를 보고, 신문을 보고, 늘 접하니까요.

가끔은 '뭐야, 또 그랬구나'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 나라가 싫으냐고요? 싫어도 할 수 없죠.

부모같은 존재이니까. 싫다고 해서 부모하고의 연을 끊어 버릴 수 있나요?

제게는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인 걸요."

한때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핍박의 대상이 됐다. 물론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정대세는 "조선인이라고 해서 차별당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고, 그렇지도 않다"고 달라진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고 해서 동포들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격은 아픔들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지켜온 외로운 싸움이 서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대세의 부모님은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 셋을 모두 '우리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학교에 다니면 학비부담도 훨씬 적다.

하지만 '우리학교'는 매월 학비만 2만엔(한화 약 20만원) 정도가 든다.

더욱이 정대세의 형제 셋은 우리학교 12년 과정을 마치고, 조선대학교까지 나왔다.

가정형편이 크게 유복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은

그것이 '민족'을 지키기 위한, 그리고 한 사회의 외부자로 살아가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간다는 것은 언제나 희생을 동반한다.

정대세는 자신을 '우리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가 큰 고생을 했다고 얘기했었다.

정대세가 뜨겁게 운 것은 아마도 이념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거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준 가족들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게 민족이라는 테두리를 지켜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데다 중요한 결전을 앞두고 있는 상대가 한국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유일무이한 또 다른 나라. 머리속에서 수 만가지 상념이 지나간다.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라고 원망하기 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꿈이 이뤄지는 순간은 항상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2002년, 우리 모두 그래서 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글=이은혜(스포탈코리아 기자, <포포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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