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유럽여행 (9) - 성 베드로 성당 & 바티칸 박물관

2010. 4. 2. 11:34중국/(아들) 유럽 · 미국 · 몰디브

 

 

이늠자식, 사진만 달랑 던져주고 나몰라라 해버리니,

도무지 어디가 어데고, 뭐이가 뭔지 알 수가 있나….

여기저기 이분 저분 글 뒤져서 짜깁기 해보겠습니다.

 

 

 

 

    

        

 

Musei Vaticani 

            Musei Vaticani

 

 

바티칸 박물관 : 성 베드로 대성당을 나와 광장 옆길로 돌아가면 위치해 있다. 14세기 아비뇽 유폐를 마치고 교황청이 바티칸으로 되돌아 온 이래 교황의 거주지가 된 이 곳의 대부분은 20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이다. 이 곳의 소장품은 역대 교황이 모은 것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과 미술사적으로 다양한 시대의 진귀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품 중 아주 중요한 대표작만 골라 보는 데도 2시간이 걸린다. 미술관 및 박물관 개장시간은 9:00-14:00(하절기 17:00)까지이고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후레쉬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피냐정원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박물관 내부에서는 직원의 지시에 따라 일방통행을 해야 한다.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1,400여개의 방들이 있으며, 역대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곳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들과 회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라파엘의 방도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곳이다.


피냐정원(Pigna Courtyard or Pine-Corn Courtyard)  : 이 정원은 1816년 Pirro Ligorio에 의해 만들어졌다. 거대한 청동 솔방울 분수가 있는데, 이것은 아그리파의 욕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천정화나 최후의 심판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쌤플 그림이 걸려져 있고, 내부에서는 가이드가 설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벨 베데레의 뜰(Cortile Ottagonale) : 관람객이 처음으로 통과하는 곳으로, 18세기에는 클레멘스 14세와 피우스 6세가 수집한 조각들이 놓여있었다. 바티칸 궁전의 전신인 이곳은 19세기 피우스 7세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뜰의 한 모퉁이에 라오콘상이 있는데 이는 16세기초 콜로세움 부근의 티투스 목욕장 유적에서 발견된 대리석상으로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이다. 큰 뱀에 묶여 고뇌하는 모습은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Laoconte)이 신에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레오카레스 작품으로 추정되는 청동상을 로마 시대에 복사한 대리석상인 아폴로상도 꼭 봐야할 작품이다.

회화관(Pinacoteca) : 바티칸 박물관의 입구를 들어서 안뜰 오른쪽에 있다. 비잔틴시대부터 현대까지 종교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들 중 제8실에 있는 라파엘로의 걸작 '마리아의 대관''폴리뇨의 마리아''그리스도의 변용'은 꼭 관람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변용'은 라파엘의 최후 작품으로 아랫부분은 제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제9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완성작 '산 지롤라모' 제12실에서는 마니엘리즘에 지대한 영향을 준 카라바죠와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리스도 강가'등 찬란한 예술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라파엘의 방(Stanza di Raffello) : 궁전 오른쪽 2층에 있는 4개의 방이다. 라파엘로가 이 곳의 그림들을 그릴 당시 성 시스틴 성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미켈란젤로가 교황과의 의견대립으로 피렌체로 귀향했을 때 라파엘로는 아무도 입실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스티나 예배당에 몰래 들어가 미켈란젤로의 예술 기법을 알아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이 방은 '화재의 방' '서명의 방' '엘리오도라의 방'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4개의 방 중 가장 아름다운 '서명의 방'에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라파엘에게 의뢰하여 그렸다는 천장화를 볼 수 있다. 이 벽화 는 라파엘이 1508-11간 심혈을 기우려 그린 것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지식과 도덕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그의 대표작 '성체에 대한 토론' (1509 - 10년 제작, 너비 7.7m)과 철학의 승리를 그린 '아테네 학파'(1510년 제작, 너비 7.7m)도 벽을 마주보고 전시되어 있다.'엘리오도라의 방'에 들어서면 오른쪽에서부터 '레오네 1세, 아티라를 체포하다' '볼세나의 기적' '신전에서 추방되는 엘리오도라' '성 베드로의 해방'이 차례로 걸려 있고 천장화로 '아담과 이브'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방'은 4개의 방 중 가장 크다. 여기에는 라파엘의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가 그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시(미네르바 다리의 성전)'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 & 피나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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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면 넓은 정원이 있고 그곳에 솔방울 신을 위한 제단이 있다.

바티칸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현지 가이드로 부터 바티칸의 내력과 소장된 작품들에 관해 브리핑을 받는 장소 이기도하다.

성당 내에서는 가이드의 육성 안내를 일체 금지. 사전에 이곳 정원에서 설명 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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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유일한 현대미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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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천장과 벽에 그린 <천지창조>와 <최후의심판>에대한 설명을 가이드들이 하기 좋게

솔방울 정원 벽쪽에 설치해 놓고, 복사판 그림 앞에서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서 박물관내로 입장한다.

 

 

 

 

 

 

 

 

 

 

 

 

벨베데레 정원

 

 

 

 

 

 

 

전망대의 아폴로 : 이 유명한 조각은 이미 1503년 전망대에 있었으며, 율리우스 2세의 고대 유물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었다. 파르테논 조각군이 발굴됨으로써 기원전 4세기에 아티카 출신의 한 작가가 만든 청동상을 모방한 복제 품으로 판명될 때까지 수세기 동안 수많은 조각가들의 모델이 되어 온 작품이다.

 


 

 

 

 

 

 

박물관 복도의 조각 전시장

 


 


 

 

 

 


 

 

카노바 페르세우스 : 나폴레옹이 1797년 약탈하여 파리로 가져가 버린 아폴로를 대신하기 위해 피우스7세가 1802년 구입한 것이다.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Preseus)

 

 

 

 

티그리스강을 지배하는 물의 신 포세이돈 : 최근에 8각형 정원에 배치된 것으로 하드리아 시대의 조각을 모방한것이다. 바오로 3세가 전망대에 가져다 놓았다.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머리와 오른쪽 팔, 왼쪽 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젤로의 감독 아래 모두 추가로 조각되었다.

 

 

 

 

 

라오쿤 군상

이 조각군은 트로이 사제에 관한 이야기 중 마지막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조각  작품은 1506년 1월 14일 발견되었다. 이곳 바티칸 박물관 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라고 평가 받는 작품. 대부분의 석상들은 원래 청동상으로 되어있지만, 로마시대에 카피 하면서 대리석으로 바꾸는데..이 라오콘의 군상은 원래부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것.

트로이의 사제 라오쿤과 그의 아들들이 두 뱀과 싸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후기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 인간의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 작품 또한 미켈란젤로에게 보수를 요청했지만, 자신의 기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던 뛰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최후의 심판의 재림하는 예수님의 몸통!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탕에서 다 깨진 상태로 발견! 당시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팔 과 다리를 붙이라고 시켰지만, 너무 완벽한 작품을 망칠 수 있다며 거절 했다고 한다.

 

 

 

 

 

폼페이우스 극장에서 발견된 청동 헤라클레스상. 오리지널 청동상중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동상.

로마시대에 전쟁을 하면서 작품들의 청동을 녹여 화살촉도 만들고 칼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 청동상은 벼락을 맞아 안좋은 징조라 여겨 땅에 묻었던 것. 그 후 1800년 대에 집지으며 땅을 파다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 가는 복도

 

 

 

 



 

 



 

 









 

 

 

 

 

 

 

 

시스티나 성당

 

 

 

 

 


 

 


 

 

 

 

 

 

 

 

 

 

 

 


 

 

 



 

 


 

 

 

 

 

 

 

 

 

박물관 후문

 

 

 

 

 

 

 

 

 

 

 

 

 

 

 

 

 

성 베드로 대성당

 

 

 


 

 

  

 

   

 

산피에트로광장 Piazza di San Pietro 

 

광장 중앙에 높이 25.5m, 무게 350t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가지고 있으며 40만명을 수용할 있는 광장. 

17세기 베르니니가 설계한 이 광장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서 284개의 원기둥이 있고,

상부에는 140개의 성인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제작한 것으로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피에트로대성당 [─大聖堂, San Pietro Basilica]

 


성베드로대성당이라고도 한다.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황청의 산피에트로대성당 관리 성성(聖省)의 관리하에 있다. 그 역사는 깊어서 기원으로 말하면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4세기의 바실리카식 성당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6세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시의 대표적 건축가들에 의해 전성기(全盛期)를 맞은 르네상스의 건축이념에 바탕을 두고 재건되었다.

15세기에 한 번 시도되었다가 중단되었던 구당(舊堂)의 개수계획을 재개하기 위해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D.브라만테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플랜의 중심에 대원개(大圓蓋)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 그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會堂部)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바르다살레 베르레의 손을 거쳐 A.P.da 상갈로에게로 넘어갔다. 그도 또한 궁륭(穹窿)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으나, 그동안 역대의 건축담당자들이 이 조영(造營)사업에 기울인 정열은 건물의 계획을 놀랍도록 변경시켰다.
 

1546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 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案)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基部)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木製)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볼타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건물 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이 훌륭한 원개는 그러나, 17세기 초기 신랑(身廊)의 전면(前面) 연장과 정면 가득히 펼친 칸막이와 같은 파치아타(서쪽 정면)의 증축으로 인해 그 효과가 크게 손상되었다.

헌당식(獻堂式)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 마침내 명장 G.L.베르니니가 나타나,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 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C.마데르나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산피에트로대성당 [─大聖堂, San Pietro Basilica ] | 네이버 백과사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 작업을 말한다. 미켈란젤로는 성모의 모성은 '마테르에클레시아(교회란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과 같다는 개념)'을 강조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주조를 이루던 테마였다. 드 톨네이는 '인간의 영혼은 삶의 이상을 숙고함으로서 죽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축복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성모가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성모는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데, 이러한 묘사는 구약시대부터 젖은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생명의 본질이었으며, 신약시대에 이르면 젖은 믿음과 신앙의 바탕을 상징한다. 젖을 먹이는 성모의 모습을 통해 신에 의한 인간의 구원의 가치는 현현되며, 신의 한없는 은총과 가련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이버 캐스트 - 미켈란제로 중에서>

 

 

 

 



 

 

 



 

 

 

 



 

 

 

 



 

  

중앙에 보이는 청동문은 베드로의 순교 모습을 부조한 <청동의 문(Portone di Bronzo)>으로

1445년 필라레테가 완성했으며 베드로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입체적으로 보는 바티칸 궁정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고 나타난 화면에 나타난 13개 번호를, 1번서 부터 차래로 클릭해 보십시요!

왼쪽 마우스를 누른채 좌,우,상,하,로 천천히 움직여 보십시요. 입체적으로 볼수가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 가까이를 클릭하고 조금씩만 움직이면 천천히 많이 볼 수 있습니다. 

http://www.vatican.va/various/basiliche/san_giovanni/vr_tour/index-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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