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발 0시 50분 (펌)

2009. 6. 8. 07:28음악/우덜- ♂

 

  

 

 

1959년 어느날 밤 12시40분경...

산책 나온듯한 한 사내의 시선이 가스등아래 머문다.

청춘남녀가 두손을 꼭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북쪽에선 남자를 태워보낼 목포행 0시50분 완행열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플랫폼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사내는 곧바로 여관으로 돌아가 시를 썼다. 이 시가 "대전부르스" 가사였다.

사내는 당시 신세기 레코드사 사업부 직원이었던 최치수씨로 지방출장을 위해 대전역 인근에서 유숙하고 있었다.

최씨의 가사를 받은 작곡가 강부해씨는 이곡을 부르스로 리듬을 정한뒤 3시간여의 작업끝에

"대전 부르스"를 완성했다.

가수는 부르스를 잘 부르는 안정애로 정해 녹음에 착수했던 것이다.

이곡은 출발 3일만에 서울 지방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했다.

대전 부르스는 야간작업까지 강행, 레코드사 창사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작사.작곡가.가수.에게 특별보너스와 월급인상 해택이 돌아갔다.

 

십수년이 흐른뒤 이 노래는 조용필의 리바이벌로 세상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임이 있을때 술이 몇순배 돌아가면 누군가 좌중을 헤치고 비척비척 일어나 소주병이나 막걸리병을 입에 대고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대전부르스다.

 

피서철이 되면 대전역 광장에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한잔의 술과 함께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즐겨 부르기도 했던 대전부르스..

술이 뒤 따라야만 제 목청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노래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관동별곡.진달래 처럼 만남과 이별. 귀향과 가출. 생성과 소멸의 상반된 이미지를 내포한 역(驛)을 내세워

60년대 어려웠던 소시민의 애환을 잘 나타내고 있다.

 

기다렸던 혹은 오지 말아야 할 막차가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역의 실루엣은 작가들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80년대에 나온 곽재구의 시"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중편소설"사평역"은

해방과 6.25. 조국근대화에 물든 민중들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같은 입술,

          담배 연기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곽재구ㅡ"사평역"에서

 

 

 

 

 

 

 

 

1959년 2월 제33열차로 탄생한 이 기차는 밤8시45분에 서울을 출발 대전역에 0시40분에 도착.

다시 목포를 향해 0시50분에 출발했다.

지금은 서대전역을 통해 호남선이 다니지만 당시에는 대전역을 거쳐갔다.

이 열차를 이용한 사람들은 대전역.인근 시장에서 광주리 물건을 팔던 농사꾼이거나

술에 얼큰히 취해 막차를 기다리던 지방 사람들이었다

방학철에는 캠핑이나 귀향하는 학생들로 새벽열차는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으니...

 

 

0시50분 열차는 지금은 없다.

1년만인 1960년 2월 대전발 03시05분발 차로 시간이 변경되면서 짧은 수명을 다했다.

레코드사 사장에까지 올랐던 최치수씨와 김부해씨는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

 

대전역부근 허름한 선술집에선 지금도 쉰목소리의 "대전부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전부루스

작사:최치수 작곡:김부해 노래:안정애

 

잘있거라 나는간다 이별의 말도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플랫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노래 - 장사익)

 

 

 

 

(펌).

 

글쓴이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멋진 글입니다.

(다시 편집하면서 제가 약간 손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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