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5. 12:55ㆍ산행기 & 국내여행/펌) 여행사진
사진 / 임현담 ('시킴 히말라야' 작가)
'임현담'을 검색하면 히말라야에 관한 많은 사진과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임 선생님, 타인의 게시를 원치 않으시면 말씀하십시요. 바로 지우겠습니다.
사진배열은 진행방향을 고려하여 제가 좀 바꿨습니다.
열자(列子) <중니편(仲尼篇)>에는 재미있는 그러나 묵직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는 돌아다니는 일을 유(遊)라고 표기했으니 유람이라 보아도 좋고 요샛말로 여행이라
쳐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다.
호구자(壺丘子)가 유(遊)를 즐기는 것에 관해 열자에게 묻는다.
"[너는] 유람을 즐기는 데 유람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禦寇好遊 遊何所好]?"
사실 이런 질문은 역마살이 단단히 붙은 사람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다.
"왜 그렇게 돌아다녀?"
"산에는 왜 올라가?"
일 년에 열 번 이상 안 들으면 이상할 지경인 사람도 부지기수리라.
대답은 천차만별이겠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단골 대답 한두 개쯤은 있게 마련이니, 열자 역시 쉬이 답했으리라.
"유람이 즐거운 것은 감상의 대상이 옛것이 아니라 [늘 새 것이기 때문][遊之樂 所玩無故]이지요."
여기까지는 좋다.
풍경이 늘 바뀌며 시시각각 만변하는 우주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된다.
허 참,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열자는 그만 다음 말에서 크게 그르친다.
"[보통] 사람들은 유람으로 현재의 풍경을 감상하지만, 나는 변화하는 상태를 봅니다[人之遊也 觀其所見 我之遊也 觀之所變]."
남은 소견(所見)이고 자신은 소변(所變)을 한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에서 덜컥 멈추었다.
어떤 주제를 긍정하기 위해 남을 끌어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정하기 위해 남을 끌어오는 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대상 하나를 가지고,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나도 그렇게 본다. 이런 하나가 있다.
또 다른 경우는 그 반대로,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틀렸고, 누구는 이렇다는데 말도 안 되며, 자신의 생각으로는 그 반대로 이렇다, 이런 식으로 글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경우다. 부정할 바에는 차라리 자신 생각만 이야기하면 되지 이상하게 다른 의견을 가진 남을 끌어들여 자신의 의지를 말하려는 부류다. 이 경우는 배배꼬인 마음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솔직하지 못하거나, 열등감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야기하는 자신 만이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人之遊也 觀其所見 我之遊也 觀之所變]에서 [人之遊也 觀其所見]을 뚝 떼어내고 [我之遊也 觀之所變] 만 답 했으면 2% 부족하기는 하지만 98점을 받았을 터, 부질없이 답을 달아 나를 실망시켰다.
그런데 여기에 이야기를 하나 더 덧붙임으로서 건방을 떤다.
"[누구나 유람을 말하지만] 아직까지 능히 유람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未有能辨其遊者]."
정말 성격 제대로다.
감점 100점, 총 점수는 마이너스다.
호구자가 보통인가.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보기에는 꼼꼼한 한자(漢字)지만 칼날이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너의 유람은 다른 사람하고 같은데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고 이야기하는구나. 무릇 눈에 비치는 현재의 상태는 본다 해도 그것 역시 항상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네[禦寇之遊固與人同歟 而曰固與人異歟 凡所見 亦恆見其變]."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못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형제간의 말씀이시다!
우리가 보는 세상.
제행이 무상한 이 세상.
깜빡임 사이에 형편없이 변해버리는 세상.
너만 보냐!
피어난 꽃, 봄바람, 떨어진 꽃, 낙엽, 구름, 바람, 시냇물,.
제대로 눈뜬 사람 모두 보고 있다.
중요한 이야기는 지속된다.
"자네는 외부사물의 새로운 면을 본다고 하지만 자신에게도 낡지 않은 새로운 점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네. 그래서 겉으로만 여행을 할뿐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데 힘써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지[玩彼物之無故 不知我亦無故 務外遊 不知務內觀]."
아이구야 스승님. 구루지. 선사의 진면목ㅇ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스승들이 정의하는 유(遊)가 나온다.
유(遊), 유람, 여행, 등등의 진정한 목표는 몸[身]이 떠도는 일이 아니라 마음[心]을 살피는 데 있다[內觀]는 것. 그곳을 모르면 겉으로만 여행한다.
그런데 열자는 애초부터 엉뚱한 바깥에 초점을 맞추어 다른 대답을 했고 건방까지 대충 떨었겠다.
이쯤 되면 다음 대목이 기다려진다.
또 얼마나 좋은 말씀을 하실까.
클라이맥스는 서두르는 마음 달래며 천천히 가야한다.
"바깥으로 유람하는 사람의 식견은 완성을 외부사물에서 구하고, 자기 내면을 관찰하는 사람은 욕구의 만족을 자신에게서 얻네[外遊者 求備於物 內觀者 取足於身].
만화 용어로 '흑흑' 흐느낀다. 글을 보며 개인적으로 오른손 주먹까지 쥐었다.
외유자(外遊者) 내관자(內觀者)라는 단어도 절묘하지만 구비어물(求備於物) 취족어신(取足於身)에서는 아예 생각이 끊어진다.
이제 호구자 구루지의 총정리.
"욕구의 만족을 자신에게서 얻는 것은 지극한 경지의 유람[여행]이며, 식견의 완성을 바깥 사물에서 구하는 것은 유람[여행]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 할 일 이제 다했다.
계획은 모조리 취소다. 이제 내관을 통해 그동안의 여행을 살피고 앞날의 여행까지 스스로 다듬을 순서만 남았다.
나름대로 저녁 시간에 [열자] 한 대목을 풀어보았다.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부정적인 개념을 위해 남을 끌어들이지 않아야하며, 더욱 중요한 배움은 진정한 여행은 어떤 것인가, 하는 점. 평소 여행을 해왔던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 아닌가.
이 후 열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열자는 기본됨됨이가 있어 깊이 알아들었기에 이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더불어 이후로는 '유(遊)를 모른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따르자면 [열자 굴욕]이지만 굴욕을 지나 열자가 후세 지극히 평가받는 정말 열자가 되었으니 이런 굴욕이라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도 좋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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