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르(1870~1867), 오달리스크

2007. 7. 13. 08:01미술/서양화



앵그르, 그랑 오달리스크


 


 

                                 Auguste Dominique Ingres / 1780~1867년. 프랑스의 화가. 신고전주의의 거장.




《 당시 주류 화파이던 낭만파와 대립해 정확한 관찰, 완벽한 데생, 우아한 곡선을 강조한 화풍으로 프랑스 화단의 중심화가가 되었다.

대표 작품으로 <나폴레옹 1세 예찬>, <목욕하는 여자> 등이 있다.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의 여주인공은 정상인보다 척추뼈가 세 개나 더 많다?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의 대가 앵그르는 여성의 누드화를 많이 그렸다.
그 중에서도 걸작이 <그랑드 오달리스크>이다.

이것은 나폴레옹 황제의 여동생으로 이탈리아 나폴리 왕국 의 왕비가 된 카롤린느의 주문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오달리스크'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후궁들이 거처하는 할렘에서 시중을 드는 노예를 말한다.

그런데 유럽인들은 할렘의 여자들을 총칭해 오달리스크라고 불렀다.

앵그르는 한 술 더 떠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할렘의 여자를 상상으로 그렸다.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명작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1819년 발표되었을 때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 중에는 "이 여성은 척추 뼈가 세 개나 더 많다"라는 엉뚱한 비평도 있었다. 
이렇게 <그랑드 오달리스크>가 비평에 시달린 원인은 벌거벗은 여인의 체형과 포즈에 있었다.

앵그르가 터키 풍의 소도구는 깃털의 촉감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여성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체형과 포즈로 그린 것이다. 
우선 이 여성은 허리가 이상하게 길고, 마치 뼈와 근육이 없는 것처럼 굽어 있다.

엉덩이는 지나치리 만큼 풍만하다.

 

등이 거의 정면을 향하도록 자세를 잡고 있고, 뒤돌아보고 있는 얼굴의 각도도 실제로는 무리인 자세다. 
왜 이런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을까?

데생이 이상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세로 일부러 바꿔서 그린 탓이다.

즉,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린 목적이 할렘 여성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앵그르의 그림은 추상화에 익숙해진 현대의 미술애호가들에게 독특한 화풍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19세기 초반의 사람들에게는 해부학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체형과 자세의 누드화는 흉측하게만 비쳤다.

그로 인해 '척추 뼈가 세 개나 더 많다'라는 비평까지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신고전파에게는 이상적인 미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

 *

 

 

『 오달리스크란 터키어로, 이슬람 세계에서 권력자 술탄의 궁정 하렘에 있는 여인을 뜻한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총애를 받느냐에 따라 신분에 차이가 있었다.
술탄에게 사랑을 받아 아이를 낳은 여인은 자신의 신분과 상관없이 왕비와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오달리스크는 자신을 소유할 그를 위해 모든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었다.
오달리스크는 매우 복종적인 여인이지만 아름다운 미모로만 승부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능미와 성적 기교였다.
술탄의 성적 취향에 맞추기 위해 오달리스크는 몸매 관리는 물론 성적 기교를 배우기 위해 많은 돈을 썼다. 』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태어나 매일 같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권력자는 싫증을 잘 낸다.
변덕스러운 취향 때문에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매일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천국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술탄이 옆에 없을 때에는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름대로의 방법을 썼다.
오달리스크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성충동을 달랬고
앵그르는 그 수단을 표현하기 위해 발을 선택했다.
앵그르는 사실적으로 발을 그려 넣었는데
이 작품에서 오달리스크가 들고 있는 공작털로 만든 부채는 성충동을 달래는 도구다.

그림 속 여성의 발은 성적 쾌감의 상징적인 암시다.

 

앵그르의 가장 대표적인 누드화인 <그랜드 오달리스크>는 1813년 카롤린 뮐러 여왕이 의뢰해서 제작하지만

여왕에게 전해지지 않고 프로이센 왕의 시종장인 폴타레스 고르제 백작이 구입한다.


앵그르는 이국적인 풍경에 매혹되었지만 하렘을 방문한 적이 없다.
하지만 누드화의 대가답게 하렘을 그리고 싶었다. 앵그르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된 작품이다.
그는 같은 포즈의 오달리스크를 네 작품이나 제작할 정도로 이 작품 제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의 누드는 전통적인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무시하고 여체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만 강조되었다. 


 

Slide Show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Click to enlarge]
 
 
 

 

   


'미술 > 서양화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rica Hopper  (0) 2008.06.02
Federico Andreotti  (0) 2008.04.07
앵그르, <나폴레옹 초상화>  (0) 2007.09.05
Egon Schiele (펌글)  (0) 2007.08.08
수채화 누드  (0) 2007.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