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맛』

2018. 12. 12. 21:33책 · 펌글 · 자료/생활·환경·음식





강원도의 맛

2018. 5. 28

 




책소개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칼럼 연재작

[강원도의 맛]의 저자 전순예 작가는 1945년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산골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작가를 꿈꿨으나, 먹고사느라 바빠 꿈을 접어두었다가, 환갑에 글을 쓰기 시작해 칠순에 방언이 터졌다. 작가는 글이 너무 쓰고 싶어 환갑 넘어 글쓰기 교실 몇 군데를 다녔는데, 어려운 문학 용어도 모르고, 젊은이들과 어울리기엔 물정도 모르는 할머니라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에라, 그냥 내 식대로 쓰겠다고 쓰기 시작한 것이 결국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겪고 느낀 것을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가다보니, 우연한 기회에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2년간 ‘강원도의 맛’ 칼럽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1950~60년대 강원도 산골의 풍경이 담겼다. 그 시절 해먹던 음식, 사람들, 사투리, 풍습, 집징슴 산짐승 물고기, 산의 나무와 나물, 논과 밭의 작물들을 비롯한 자연 환경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작은 재료도 아껴 풍성히 차리고 골고루 나누던 음식, 굶는 사람 딱한 사람 챙기던 밥, 이웃집 고양이도 잊지 않고 챙기며 ‘같이 살자’는 살뜰한 마음, 그것이 강원도의 맛이다. 큰 사건이 없어 역사에도 기록될 일 없는 작은 동네에서 어우러져 먹고살아간 이야기, 조그만 동물과 식물 이야기 들을 작가는 집요하게 기억하고 써냈다. “평생 마음으로 생각으로 써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목차

들어가며
산 좋고 물 좋은 자그마한 동네, 어두니골 8



내 나이 일흔네 살인데도 항상 머머니가 그립습니다. 어린날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달고 맛있었습니다. (.........) 이른 봄, 밤나무 밑에는 상아부터 많은 나물들이 나고, 뒷동산엔 고사리, 취나물, 더덕 같은 먹을거리가 많아서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금세 한 다래끼씩 뜯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 몇 천 평 되는 옥수수밭 가장자리에 배추씨도 뿌리고 오이도 여기저기 심어,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채소를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 오늘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고향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1부 꽃이 피던 그때 그 시절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싸우게 된 원인 ‥ 풋고추 석박김치 17


늦은 봄에 먹는 김치는 젓국도 넣지 않고 설탕이나 찹쌀풀도 넣지 않습니다. 파 마늘 생강에 새우젓만 약간 넣고 소금 간을 잘 맞추는 것이 비결입니다.

1) 양념을 많이 하지 않은 배추김치 한 겨를 장독 맨 밑에 넣고,

2) 그 위에 풋고추 한 바가지를 훌훌 뿌립니다.

3) 두 손으로 잡아도 모자랄 정도의 큰 무우를 한 토막 툭 치고 반으로 쪼개서 고추 위에 듬성듬성 올려놓습니다.

4) 무우 쪽마다 간이 될만큼 소금을 정성스레 올리고

5) 그 위에다 고추가루를 훌훌 뿌립니다.

# 무우 쪽 간을 잘 맞추는 일이 김치의 맛을 좌우합니다.

6) 큰 독이 가득 차도록 계속 담습니다.

7) 한 밤 자고나면 항아리에 7부쯤 내려가 있습니다.

8)절여놓았던 무청과 배추 겉잎에 소금간을 잘하여 독에 우거지를 닾습니다.

9) 무게가 좀 나가는 강돌을 얹어 눌러줍니다.

10) 김칫독을 쌀포대 종이로 동여매고, 항아리 뚜껑을 덮고, 거적대기로 덮고 흙을 수북히 덮습니다.




미역을 메고 오빠가 돌아왔다 ‥미역국 22
이로 박박 긁어 먹다 ‥우유 가루떡 27
공기 천 판 내기 결전의 날들 ‥주먹밥 31
보솔산 수리취 누가 다 뜯어갈까? ‥수리취떡 36
할머니의 누에 사랑 ‥꽁치구이 41
멀리까지 나물 뜯으러 가는 날 ‥곤드레밥 46


1) 역한 나물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여러번 헹굽니다.
2) 깨끗이 헹군 나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들기름과 들깨소금을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무쳐놓습니다.
3) 쌀을 씻어 밥물을 맞춥니다, 밥물은 평소보다 적게, 고두밥을이 될만큼만 붓고, 위에 나물을 올려 밥을 합니다.
# 밥이 고슬고슬해야지 밥이 질면 안됩니다.
4) '양념간장'보다 '양념막장'에 비벼먹는 게 더 맛 있습니다.
(막장에 박아둔 고추장아찌를 다져넣고, 파와 마늘잎과 멸치를 넣고 빠듯하게 끓인 막장)


전나무 잎으로 살아난 팔불출 할아버지 ‥전나무 물 52
나물 한 다래끼와 바꿔 먹는다 ‥요술양념장 57
아이가 계란을 깨뜨려도 좋다 ‥계란찜 62
고기 맛이 나는 맛있는 가루 ‥미원국 66
산에서 나는 으뜸가는 자연 간식 ‥송기 70
신랑이 제대하기 전에 한글을 배우자 ‥삶은 감자 75

2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다


옥선이네 집에서 퉁소 소리를 듣다 ‥강냉이냉죽 85
탄탄하고 씩씩하게 자란 찐돌이네 아이들 ‥개구리구이 90
쌀보다 옥수수가 맛나네 ‥풋강냉이 기정 95
삼복더위에 여자들끼리 가는 피서 ‥생떡 미역국 100
낮에도 맘 놓고 수영할 수 있는 옷 ‥고얏국 105
아침에 따서 바로 요리해 먹다 ‥첫물 고추무침 110
옥자는 많이 컸습니다 ‥삶은 강냉이 114
영철이 아부지, 왜 호박잎을 안 먹어유? ‥호박잎쌈 122
삼치라우 여울물을 타고 온 아이들 ‥골뱅이죽 126
빠지직 빠지직 가재 씹는 소리 ‥가재죽 131
동네에서 큰 솥단지째 끓여 먹던 죽 ‥어죽 135
천렵꾼들이 모였습니다 ‥쏘가리 회 140
어렵게 수확한 보리를 타작할 때 ‥보리밥 147
꼬투리를 하나하나 까야 한다 ‥파란콩 순두부 153
마낙쟁이가 된 큰오빠와 작은오빠 ‥장어죽 161

3부 온 가족이 일을 하다
무슨 일을 하든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단풍들이 깻잎 169
집안에 큰소리가 나는 원인 ‥꽃계란 174
하늘이 세상을 만들 때 그렇게 만들었단다 ‥도토리밥 180
돌아서면 먹고 돌아서면 배 꺼지는 타작날 ‥타작밥 185
바느질보다 미꾸리를 잡고 싶습니다 ‥미꾸리찜 190
세 번째 큰 무로 뽑아오거라 ‥고등어머리찌개 198
오늘 자네만 믿네 ‥동동주 202
온 가족이 호박을 줍는 동안 ‥연두색 호박국 210
모두 묵 쳐 먹고 가시길 바랍니다 ‥도토리묵 214
노래자랑에 노란 원피스를 입고 나간 수희 ‥전병 219
옥순이가 찾던 중앙청 꼭대기 같은 밥 ‥밤밥 226
이밥에 채김치 넣고 양푼째 올리는 제사상 ‥이밥 230
뱀이 밤한테 얻어맞고 나한테 달려들었어 ‥삶은 밤 235
시누이와 ...올케가 열심히 만든 떡 ‥추석 송편 240
도야지 내장국 먹는 보름 미리 잔치 ‥돼지국밥 246

4부 한가한 날, 술 한잔 같이하다


둘은 구덩이 파고 여덟은 등 두드리는 거 ‥꽁맨두 253
한바가지 할머니의 마지막 감자떡 ‥나이떡 258
메밀로 만들어 콧등 치던 어머니 음식 ‥꼴두국수 264
김장 날, 속을 데우기 위해 먹는 죽 ‥배추 밑동죽 268
평생에 한번은 실컷 먹어보자 ‥굴비구이 273
혼자 있을 새가 없는 일교 어머니 ‥메밀 적 277
억부 어머니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양식 ‥미꾸리탕 286
고기는 눈 닦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밀만두 295
내 언제 한번 먹게 해주꾸마 ‥총각무 동치미 302
그해 겨울은 고소했네 ‥잣죽 307
촌스런 나물을 먹고 가는 대화 할머니 ‥콩비지밥 311
어메는 어디 가고 언나들끼리 쌀을 빻나 ‥절편 316
고추는 머리 쪽을 들고 먹어야 한다 ‥콩죽과 고추 장아찌 321
대보름에 처녀들은 밤새 노래합니다 ‥찰밥 326
백사를 잡았다고 소문냅시다 ‥감기약 331
6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다 ‥팥죽 336

작가의 말 346




책 속으로

수희는 장날에 친구들과 전병을 사러 갔습니다. 난전에서 부치기 굽는 할머니한테 “할머니 옘병 좀 주세요.” 말이 헛나갔습니다. “이런 옘병할 놈의 간나들이 먹는 음식 가지고 옘병이라니. 예라 이 옘병할 년들.” 소금을 냅다 뿌립니다.
수희는 그 길로 돌아와 아무 가루나 있는 대로 풀어 전병을 만들어 먹게 되었습니다. 융통성이 얼마나 좋은지 어느 날은 나물도 무쳐 넣고 두르르 말아 온 식구가 출출할 때 오며 가며 하나씩 먹을 수 있게 잘도 만듭니다. 메밀가루는 없지만 밀가루에 도토리 가루를 섞었더니 까무스름한 것이 메밀전병 같습니다. 전병 속은 무츨 채칼에 쓱쓱 밀어 얼큰하게 무쳐 넣었습니다. 생채가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괜찮습니다.
-[노래자랑에 노란 원피스를 입고 나간 수희_전병] 중에서

누에 수매 날은 꽁치를 두어 드럼(두름) 사다가 꽁치 잔치를 합니다. 한 드럼은 스무 마리인데, 비료 포대로 싸고 새끼줄로 묶어서 사 가지고 옵니다. 보리가 날 때쯤 나오는 꽁치는 ‘보리꽁치’라 하여 특별히 더 맛이 있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부터 저녁 준비를 합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화롯불을 준비하고 싸릿가지도 준비합니다. (……) 상추와 배추 속고갱이 쌈도 준비해서 상을 차려놓고, 화롯불에 굼벙쇠를 올려 그 위에 싸릿가지를 총총히 놓고, 미리 씻어서 소금을 뿌려놓은 꽁치를 올려 굽습니다. 싸릿가지가 노랗게 익으면서 꽁치도 함께 익습니다. 한참 지나 싸릿가지가 타면서 구수한 향이 꽁치에 배어들어 맛있는 꽁치구이가 됩니다. 싸릿가지가 타면 새 가지로 바꿔서 올립니다. 참깨를 볶는 냄새보다 더 고소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멀리까지 퍼져 나갑니다. 이웃집 고양이도 ‘양옹’ 하며 ???려오고 개도 쫓아옵니다.
“이놈들아, 우리도 아직 밥 안 먹었다. 기다려라.”
-[할머니의 누에 사랑_보리꽁치] 중에서

종만이 아버지는 노끈을 꼬면서 총각무 동치미를 세 개씩 드셨습니다. 살얼음이 동동 뜨는 큰 대접에 풋고추와 총각무가 든 동치미 그릇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게 맛있어 보입니ㅏ. 종만이 아버지는 얼음이 조금 녹은 다음에 국물을 벌컥벌컥 세 번 마시면서 “아, 시원타.” 하십니다. 한참 노끈을 비벼 꼬다가 총각무를 손에 들고 베어 드십니다. 종만이 아버지가 국물을 마실 때마다 우리는 침을 꿀꺽 삼킵니다.
“아저씨, 맛있어요?”
“아니다, 씨굽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아니다, 속이 안 좋아서 약으로 먹는다.”
총각무 동치미를 얻어먹으려고 점심때가 되어도 집에 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심때 나온 동치미는 총각무 동치미가 아니고 큰 무로 만든 동치미를 썰어 물을 탄 것이었습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일어서 왔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한테 “우리 집은 왜 총각무 동치미가 없느냐”고 하니 그거 별로 맛이 없어서 하지 않는다고, 언젠가 했는데 잘 먹지 않아서 소를 줬다고 합니다.
-[내 언제 한번 먹게 해주꾸마_총...각무 동치미] 중에서

 

 


출판사서평

[책속으로 추가]
병인네 진풀(음력 7월에 썰어 발효시켜 다음해 거름으로 쓰기 위해 베는 풀) 하는 날입니다.
병인이 어머니는 병인이의 친구를 가만히 뒤란으로 불러 술독에서 구디기(쌀알이 구더기 같이 생겼다고 하는 말)가 동동 뜨는 동동주를 한 대접 퍼주면서 “오늘 자네만 믿네.” 하십니다. 여간해서 먹어볼 수 없는 귀한 동동주입니다. 노리끼리하면서도 맑고 투명한 색깔에 쌀알이 동동 뜹니다. 이렇게 많은 동동주를 먹어보기는 난생처음입니다.
동동주 한 대접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돼지고기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줍니다. 달착지근한 것이 아주 입에 짝 붙는 맛입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 그 귀한 동동주를 “자네만 믿는다”며 큰 대접으로 하나 아낌없이 퍼주시다니. 병인이 어머니가 고마워서 열심히 진풀을 베어 나릅니다. 잘 자라서 거름이 될 만한 풀을 골라 힘에 버거울 만큼씩 져 나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산더미같이 많이 지고 다닙니다. (……) 모두 고된 하루였지만 기분 좋게 병인이네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삼거리에서 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왠지 모두 쭈뼛거리며 가지 않고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친구가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찍 병인이네 집에 갔는데 병인이 어머니가 나를 뒤란으로 불러 술독에서 구디기가 동동 뜨는 동동주를 한 대접 퍼주시면서 오늘 자네만 믿는다는 거여. 안주도 돼지고기를 새우젓에 찍어주지 않나. 그러니 내가 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어 열심히 했지.”
옆에 있던 친구도 병인이 어머니가 눈을 끔적하기에 따라갔더니 동동주를 주면서 “자네만 믿네.” 해서 열심히 했답니ㅏ. 한 친구는 여럿이 있을 적에 옆구리를 꾹 찌르면서 오라 하기에 갔더니 동동주를 주면서 “자네만 믿네.” 했답니다. 한 명도 동동주를 얻어먹지 못한 친구가 없습니다.
-[오늘 자네만 믿네_동동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