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때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안녕!"
여우가 인사했습니다.
"넌 누구니? 정말 예쁘게 생겼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난 여우야."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이리 와서 나랑 놀자. 난 지금 너무 슬프거든……."
"나는 너랑 놀 수가 없어. 나는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아, 미안."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여우에게 물었습니다."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말이니?"
"마음이 서로 통하게 된다는 뜻이야."
'마음이 통한다고?"
"그래. 지금 너는 나에게 수많은 다른 사내아이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아이일 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없더라도 내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물론 너도 내가 없더라도 괜찮을 거고. 네 눈에는 내가 수많은 여우들과 똑같이 보일테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사이가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되는 거고,
나는 또 너에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거고……."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내게 꽃이 하나 있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었나봐…."
여우가 한숨을 내쉬며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내 생활은 말이야, 좀 단조로워. 날마다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내가 닭을 쫒아가면 사람들이 나를 쫒아와.
닭들도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하거든. 그래서 생활이 지루하고 따분해.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생기가 돌거야.
네 발자국 소리가 어떻다는 것도 금방 알아차리게 될 거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굴 속으로 숨어 버리겠지만,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마치 음악을 듣는 기분이 되어 굴 밖으로 나올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까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서 밀밭을 보더라도 난 아무 감흥이 없었지.
그런데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네 머리가 금발이니까 네 머리 닮은 저 밀밭이 아주 멋지게 보일 거야.
황금빛으로 빛나는 저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어쩌면 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까지도 좋아하게 될지 모르지."
여우는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어린 왕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괜찮다면… 나를 길들여 봐,"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린 왕자가 물었습니다.
"참을성이 있어야 돼.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 이렇게 풀밭에 앉아 있는 거야.
난 너를 곁눈질로 흘끔흘끔 보기만 할 거고.
아무 말도 하지마. 말이란 때로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는 거야."
다음 날 어린 왕자는 다시 여우를 찾아갔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오는 게 좋아.
네가 날마다 오후 4시에 찾아온다고 하면 , 난 3시만 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질 거야.
4시가 가까워올수록 가슴은 두근거리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겠지.
이렇게 온 몸으로 행복을 느끼게 될거야.
그렇지만 네가 멋대로 아무때나 찾아온다면 언제쯤 네가 올 것을 기다려야 좋을지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질서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거야."
"질서? 그게 뭔데?"
"질서라는 게 있어서 비로소 어떤 날이 다른 날과 다르게 되고 시간이 구별되는 거야.
예를 들어 목요일은 사냥꾼들이 마을 아가씨들과 춤추는 날이야.
내게는 아주 기분 좋은 날이지. 포도밭까지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즐길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사냥꾼들이 날을 정해 놓지 않고 제멋대로 춤추고 싶을 때 춘다면
내가 마음놓고 휴가를 즐길 날이 없어지고 마는 거야."
이러는 동안에 어린 왕자는 여우와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린 왕자가 떠나려고 하자, 여우가 말했습니다.
"아, 눈물이 나오려고 해."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조금도 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네가 길들여달라고 했어."
"그건 그래."
"하지만 울고 싶다면서? 그러면 좋아진 게 아무 것도 없잖아."
어린 왕자의 말에 여우가 말했습니다.
"있어. 출렁이는 밀밭의 빛깔.
다시 가서 장미를 만나 봐. 그러면 수많은 꽃들 중에 네 꽃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러 내게 다시 들려 줘."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대로 다시 장미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꽃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고는 전혀 달라.
그냥 피어 있을 뿐, 있으나 없으나 내게 별 상관이 없어.
내가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 또한 나를 길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말을 들은 장미꽃들은 멋쩍어졌습니다.
말을 마치고 어린 왕자는 여우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잘 있어……"
"잘 가……. 선물하기로 한 비밀얘기를 지금 해줄 게.
아주 간단한 것인데…, 무엇이든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야.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네 장미가 너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은
네가 그 꽃을 위해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어. 하지만 넌 잊으면 안 돼.
자기가 길들인 것, 좋은 관계를 맺은 상대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해."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속으로 읊조렸습니다.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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