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 (1)

2008. 7. 24. 00:01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나를 큰댁에다 떨어뜨리고
더한 오지로 발령받아 떠나시게 되어
마음에 걸렸던 아버지는,
과년한 처녀였던 내사촌언니에게
나를 잘 보살펴 줄것을 당부하시며
시골에선 구경하기 힘들었을 상당한 금액을
다달이 보낼것을 묵시하셨고,
반색하는 언니에게 그약속은 정확히 지켜졌다는 것을
오랜시간이 지난후에야 알게되어
조금 억울하고 사촌언니가 야속했던 기억이있다.



내가 쓸 학용품과 옷가지는 물론이고
언니의 수고비로 상당한 금액을
매달 보내주신다는걸 몰랐던 나는,
<전과>며 <수련장>같은 참고서마져도 사지못하여
친구것을 항상 부러워 했었고
속옷을 빨고나면 갈아 입을것이 없어
마를때까지 홋치마를 바람에 폴폴날리며 다녔어야 했다.
겨울엔 장갑이 없어 손등이 갈라져 피가 터졌고
코트도없이 쉐타하나로 한겨울을 나기도했다.



그때 사촌언니는 목하 열애중이었다.
장터에서 양복점을 하던 어떤 남자랑
그렇고 그런사이라는 말을, 같은 동네였던 외가의
외할머니와 막내이모의 수군거림에서 들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연락을 해야겠다.>란 말도 얼핏
들었던것 같다.
외할머니는 내어머니에게 연락을 했고
막내동생을 업고 내려오신 어머니는
내행색을 보고는 아버지를 원망하시며
물을 가득 덥혀 머리를 감기고 빡빡소리나게
목욕시키며 눈물지으셨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 약속을 남겨두시고는 돌아가신다음
이어 아버지가 오시어 나를 외가로 거처를 옮겨주셨다.
그때부터 내게는 불행끝, 행복시작이란 말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엄마와 가장 비슷한 내음을 가진 외할머니와 이모랑 함께
살게되었으니.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큰어머니가 장에다니며 내가 계란을 훔쳐먹는단 소문을 내었단다.
편식이 심했던 나는 날계란은 못먹는 음식이었다.
또한 언니는 연애중이었으니 오죽 멋을 내고싶었을까
내겐 홋치마를 입힐정도로 무관심한 언니는
아롱아롱 수놓은 횃보아래 자신의 잠자리날개 같은
옷들은 가득 걸어놓았고
내가 훔쳤다는 계란은 저녁마다 언니 얼굴을 노랗게 물들였다.
그뿐아니라,
나중에 내게 사촌형부가 된 장터 양복쟁이는
내계란으로 포식을 했다고 하니...
그후 양복쟁이 형부는 멋진코트 한벌의 뇌물로
홋치마의 한이 사무친 내홀대를 벗어났고
누구보다 나와 친해졌으니 그얽힌 사연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아침마다 숟갈위에 생선가시 발라 얹어주며
한술이라도 더먹이려 애쓰시던 외할머니의 정성과
깨끗이 씻기고 감긴 머리를 빗어
빨간 리본으로 장식해주던 막내이모의 손길로
나는 나날이 뽀얗게 피어났고
해기울때마다 알수없는 허기로 울며잠들곤 하던 나는
아랫목에 잠자리 펴주며 스치는 이모의
향긋하고 뭉클한 젖무덤의 감촉을 즐기며 점차안정하기 시작한다.

 

 

 

 

 

 

 

 

 

 

 

 

그때 막내이모 또한 스물살정도의 과년한 처녀였는데,
겨우 마련해놓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재산이었던,
천여평 됨직한 자갈투성이 과수원땅에서의 소출이
생활을 해결하는 근거였기에
곤궁을 이겨보려 한여름 뙤약볕에 외할머니와 이모는
날마다 밭에앉아 자갈로 산더미를 만들어
얼굴은 항상 붉게 익어있었다.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후 몇년째 무위도식하던 외삼촌은,
온동네 처녀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백수날건달 이었는데
나를 낮은초가의 처마밑에 세워두고 택견연습이라며
발을 내키만큼 뻗어차곤 해서 그발길에 얼굴이 채일까 공포에
오들오들 떨어야했다.
그러나 <예로부터 말을타고 가다가도 외삼촌을 보면 말에서 내려
큰절로 곡진히 대접해야 할만큼 귀한 어른이시다...>라며
세뇌하는데 고무되어 항의한번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기만했다.

큰집과 외가가 한동네였고 막강한 사촌오빠들과 언니들,
곱디고운 이모와 짖궂은 외삼촌을 배경으로둔 나는
이미 그동네를 장악하여 위상을 구축했고
학교역시 내영역으로 편입하기에 이른다.
시골읍내에서 행세꽤나 하는집 아이들이
오롯이 모여있던 우리반은
성적도 항상 전교에서 일등이었고 아이들도 말끔했다.
교장아들,교감딸,목사아들,서장아들,양조장집 막내딸,
고등학교교장아들,국회의원조카,무슨벼슬한집 종손...
이런 아이들 틈에 섞인나는 사회적지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차
모르던 평교사의 딸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자연스레 교감딸,양조장집막내딸,
그리고 내가 반을 삼등분하여 세력을 이루어
팽팽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게 눈길한번 주지않아
애면글면 혼자속을 태우던 상대가 있었는데,
공부도 잘하고 과묵하며
고무줄끊기, 치마들추기, 괜히때리기등등
또래들의 짖궂은 장난에 초연한 애늙은이 같았던
무슨 벼슬한집 종손이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유행가를 수십곡 두루꿸만치 감각적 취향을 가진
서장아들이 드러내어 내게 관심을 나타내었고
오락시간엔 어김없이 나를 지목하여 노래를 시키며
곤혹스럽게 만들어 수차례 싸움도 하며 지냈는데,



어느날 아침 등교하니 칠판에 ㅇㅇㅇ(서장아들)과 ㅇㅇㅇ(나)은
<신랑각시>라는 낙서가 있었고
책상밑에는 결혼식장면의 그림이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재밌다는듯 킬킬거리고...
참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밥맛도 잃고 풀죽어,
신발장앞에서 우리동네 친구를 때려 내가나섰던
어느 남자아이에게 혐의를 두고 절치부심하며 지내던중
어딘가 달라진 내모습에 외할머니께서 간절한 눈빛으로
걱정하시니
그동안의 설움에다 다소 과장도 섞어 내괴로움을 호소하며
마당에서 두발을 뻗어 흙투성이 되도록 뒹굴며
엉엉 소리내어 울고불고 난리난리 한바탕 생굿을 벌였다.



입이짧아 튼튼치 못하고 성깔이 예민하여
어릴때부터 가끔 눈자위를 하얗게 뒤집으며
뒤로 넘어가버려, 그걸 아는 집안식구들은
평소에도 내비위를 안건드려 오던터라
온식구들이 겁을내어 물을가져다 먹이고 업고 안고 달랬고
외할머니께서는 <야야 안되겠다, 니가 학교좀 찾아가라,
그넘을 니가 혼좀내주고 온나, 삼촌이 되가지고
아가 이지경이 될때까지 대체 모하고 있었노> 라며
외삼촌을 탓하셨고
<이너머 자슥을 삼촌이 다시는 몬하거로 반쥑여놀거다,
걱정말고 고만해라 그러다 더위먹는다>
그후 나는 안심하고 혼곤한 잠속으로 빠져들수있었다.



짖궂은 그아이의 집요한 괴롭힘을 즐기는,
평소에 나를 시기하던 양조장집 막내딸과
교감딸 패거리의 조소야 견딜만 했지만
내가 애태우는 상대인 종손에게 비춰질
내부정적 이미지에 안절부절하고 지내야 했던
그 지루하던 여름은 참담한 유년의 기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내의 범람을 막기위해 쌓은 둑방 밑에 있던 예배당,
한여름 소나기라도 내리면 콩볶는 소리 요란한
양철지붕 얹은 교회의 어느 일요일 한낮에,
예배마치고 신발을 찾아신고 밖으로 나오는데
한무리의 아이들이 깔깔거리고 웅성이며 빙 둘러서있었다
무슨일인가 궁금하여 비집고 겨우 고개를 들이밀고 본순간
난 이미 낭패의 예단에 가슴이 내려앉고 있었는데,
그기엔 내 외삼촌,

백수날건달 주제에 바람둥이며
태껸연습으로 사정없이 나를 괴롭히는 내외삼촌,
별로 신뢰도 가지않는 내외삼촌이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러번 상상했었다,
야비한 의도로 나를 추행하는 그아이들에게
품위와 근엄을 갖춘 나의 외삼촌이 가하는
추상같은 나무람을,
그래서 뉘우치는 그아이들과 가슴서늘해 하는 목격자들의 시선앞에
너그러운 미소지으며 득의에 차 우쭐대는 내모습을.

지금까지도 내게 원망듣는 그날의 외삼촌은,
그들과 함께 나의 추문을 즐겼다고, 지금도 짙은 혐의를
철회 할수없는데 그이유는 이러하다.


' 내가 수경이 외삼촌이다, 누가 우리수경이를
일복(서장아들)이 각시라고 놀린노?'

' 홍기성이 하고 이준성이요~ (모두합창)'

' 너거는 우리수경이가 증말 일복이 각시라꼬 생각하나?'

(아이들 우물쭈물...조용~, 잠시후 한아이가 작은소리로)

' 네~ ' (갑자기 까르르... 웃음터짐)

' 누가 그애들 데꼬오믄 내 이거(사탕)준다.'

(잠시후 그둘이 사색이 되어 삼촌앞으로 대령했고)

' 너거가 우리수경이가 일복이 각시라꼬 했나...?'

(고개를 숙이고 작은소리로 네... )

' 증말이가...? 증말 우리수경이가 일복이 각시맞나??'

(????? ...... 삼촌을 빤히 치다본다)

' 니는 일복이 하고 어울린다꼬 생각하나??'

(빤히 치다보던 한아이가 작은소리로)'네~'
(또다시 까르르 웃는 아이들...)

' 우리 수경이 오데간노? 수경아~ 일루와바라.'

(할수없이 내가 비집고 한발앞으로 나선다,
판이 잘못돌아가고 있음에 거의 절망하면서)

' 수경아, 니가 은제 일복이 한테 시집간노?
이 아 들이 니가 일복이 각시라 하네?'

'(결연한 목소리로)삼촌, 니고만 집에 먼저 가라,
내 쫌이따 가께'

' 안된다, 내오늘 이놈들 혼내줄라꼬 안왔나,'


'(두아이 향해 눈을 이상하게 부릅뜨더니)
이노무 자슥들아,
너거들 또 그랄래? 으이? 또 우리수경이 보고
일복이 각시라 할래?

(그냥 꿀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삼촌은 검지와 중지 손가락 두개를 구부려서 차례로
그애들 코를 집게처럼 집어서 비틀었다, 그러더니)

'아이고 이노무자슥들아 코쫌풀고 댕게라,
애고 손에 코 다묻어따.'

( 묻은코를 그애들 옷에 쓱쓱닦고나서 또다시
잡아비틀고 또 묻은코를 그애들 옷에 문지러며
코 안풀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몇차례하더니)

' 빨리 잘몬했다, 다시는 안그럴끼다,
약속하고 가거라, 알긋나 이노무 자슥들아'

' 예... 코 잘풀고 다닐께요....' (아이들의 터지는 웃음)

' 그거말고!! '
(웃음참느라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외삼촌)

' 안그럴께요... 인자부터는 일복이각시라꼬 안하께요...'

 

 

 

 

 

 

 

 

 

 

 

사과를 받으면 뭘하겠는가,
추문을 몰랐던 아이들까지 이젠 다알게 되어 수군대고
내가 일복이 각시라는게 기정사실이 되버려
이미 스타일 만신창이 된후에.

크라이막스 기대했던 관객들은
시들해진 표정으로 흩어지고 나는 참담한 곤혹과 증오로
그때부터의 내주적을 외삼촌으로 삼게 되버렸으니
그후의 내 행패에 애꿎은 외할머니와 이모가
고스란히 당하는 비운을 맞게된다.
그날 나는 목도했다,
확대재생산이 가져다주는 폐해를.


그후 시들해진 관중들 덕(?)인지
추문은 시간이 지나며 소멸해갔고,
그러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는데
그것은 수경이네 외삼촌은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하자면 좀 돌던지, 어딘가 약간 모자라는
사람일것이라는,
그러나 드러내 말하다 코가 수난당할지 모른다는 공감이
출렁거리며, 쉬쉬거리며 확산되어
습한 그늘에서 포자 퍼지듯 음성적으로
배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유년의 감미롭지만은 않아
괴롭고 설운 시간과 함께 드디어 오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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