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無識)

2008. 5. 28. 23:48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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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를 남깁니다, 무너졌어요..

 

 


여기 보이죠? 조각 조각들이.
수술해도, 안 해도 장애입니다...

이름도 살벌한 관절센타 병동,
다닥 다닥 붙어 쪽방 동네같은 구석진 방에 앉아있는 젊은 의사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보며
지극히 절제된 음절로 아끼듯 한마디씩 하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의자 뒤로 상체를 젖혔어.

저 그림이 과연 내 손이 맞는가.

 


갑자기 내 손이 가여워 눈이 뜨거워 지더군.
저 가늘디 가는 걸 혹사했구나.
저 손으로 참 많은 것을 했지.
낮밤 바뀐 아이를 밤새 안고 흔들기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움켜쥐고 껌뻑이는 신호등 놓칠새라 달음질 치기도,
몇시간씩 라켓 들고 망둥이 같이 뛰기도 했지...

 

 

 

계단을 발끝으로 더듬거리던 그 새벽은 박명薄明 이었어.
서둘지 않아도 상관없는 시간에 왜 계단 하나를 생략하고
옆으로 발을 내렸는지,
발 아래 그런 깊이가 있는 줄, 그런 나락이 있을 줄 몰랐어.
떨어지며 생각했지.
사고다, 큰 사고다..
아, 이 위치면 앞에 책장이 있는데, 제발 머리만......

 

응급실로 향하는 십여분, 새는 비명을 삼킬 수 있었던 건
눈 부비며 달려와 준 젊은 구조대의 사려 깊은 근심을 보았기 때문이야.


피하와 정맥에 찔린 진통제도 그다지 믿을게 못 되더군.
잠 덜 깬 전문의의 지시에 남녀 각각 한쌍씩
팔꿈치와 손가락을 두개씩 나눠 쥐었어. 그리곤..
아.. 더 기억하기 싫다.


집요하고도 질긴 통증이 몇날 며칠 계속 되더라.
먹고 먹어도 진통 효과 없는 알약을 수시로 입에 물고
어적어적 씹어대며 독기를 품었어.
시간만 빨리 가라.. 시간만..
어느 아우가 말했어,
힘줄이고 뼈고 신경이고 암튼 주변 조직이 모두 늘어나 상했으니
당연히 아프지요, 아플 거예요.
몇넘이 붙어 땡겼어요?  참지말고 진통제 맞으세요...

 

 

 

자판에 손이 닿으면 팔꿈치가 하늘로 향할때
머리속이 백지가 된 느낌이었어.
모든걸, 다 잃었구나.. 제대로 실감이 나더라.
인정머리 없는 물리치료사는 냉담하고 단호하게 손목을 비틀고 꺾었어.
덕분에...
희한한게 말이지, 손이 기억하더라구.
기억 니은의 위치를.

 

 

진짜 무식한게 뭔지 아니?
동산에 올라가면 시름이 없어져.
자리를 깔고 뒹굴며 몇자 읽다 잠들곤 하는데,
아이가 묻는 걸 하나도 대답 못했어, 무식하게도.
저 나무는?
저 새는?
저 꽃은?
이 나비는?
얘(곤충)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이름을 묻는 아이에게 난 하나도 대답 못했어.


강남과 분당의 지가地價,와 자동차의 엠블럼,
명품 종류와 가격..

아이는 생물에 관심이 있는데
나는 무생물 이름만 알고있으니, 이게 무식이 아니고 뭐겠니?
본질의 가치에 행복한 아이와
외형적 수사에 관심 기울여 얻었던 불행..
무식한 삶이었어.

그 새벽은 무지를 깨닫게 해준 薄明이었을까?
무거운 줄도 모른채 짊어지고 살던 모든걸 내려놓고,
가볍게 뉘인 어깨 옆을 지나는 작은 개미 행렬을 방해 않으려는
사려깊은 시선을 얻게 해준 薄明은 아니었을까...?

 

 

 

 

 < 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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