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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내 얘기들/네 얘기 · 쟤 얘기

종달새

 

 

 


 

 

 

 

 

 

 

 

 거울을 보면서 미장원엘 가야겠다고 맘먹은 건,

- 안녕히 주무셨어요?

공튀듯 탄력있게 외치는 아이의 인사 뒤에 터져나온
탄성 때문이었다.

- 우와~~ 울엄마 이~뿌다아~~

민소매 흰색셔츠 몇장으로 여름을 나다
창으로 밀려드는 선선한 기운에 빨강색 니트를 꺼내입은 나를 보고
즐거워한다.

이왕이면... 이뿌다 소리까지 들은 마당에 머리까지 손질하자,
더 이뿌게 보여 즐겁게 만들어 줘야지,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운 모습을 보여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의무가 내게 있지? 아마?


제법 이삭이 패고 있는 논 사이로 난 작은 길을,
한번도 본 적없어 더욱 그리운 어느 친구를 앞에다 세우고
끝없이 펼쳐진 파란 논을 푸른 주단이라 여기고
전쟁과 평화였던가? 햅번이 추던 왈츠 장단을 흉내내본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겨우 알아 볼만한 작은 꽃들이 아우성이다.
- 나도 꽃이예요, 나도 봐주세요~
앙증맞은 모습이 예쁘고도 안스럽다.

- 어머나!! 어서오세요오~~ 오랜만에 나오셨네요오~~

높은 옥타브로 반기는 미장원 주인은 서른아홉된
멋쟁이 노처녀인데
대체 어디서 구입했는지 아바타가 옷을 입은 것같은 모습을 하고있다.
나도 모르게 쿡, 웃음이 난다.

펼쳐든 가운에 팔을 꿰면서 대충 둘러보니
자잘한 이름 모를 꽃들이 화분에 가득 꽂혀있다.
아기자기한 실내가 더욱 오밀조밀, 동화속 어느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데쟈뷔에 잠깐 현기증을 겪는다.

가위소리도 경쾌하다.
싹둑싹둑 자르고 약을 칠하고,
그 사이에도 그녀는 종달새같이 지저귄다.
동시에 두가지를 못하는 나는 마냥 신기하다.
찌게와 볶음을, 통화와 필기를 동시에 못하는데
극복하려 욕심부리단 어김없이 손을 베고 誤記하는 나로선
그녀의 작업이 위태하고도 부럽다.

이야기에 허기진 사람같다.
대단한 열정으로 허겁지겁 장르를 넘나든다.
부시가 인류에게 끼치는 해악부터 시작하더니
경제에서 주식으로 정치에서 문화로
여행에서 음악으로 ....겅중거리며 정신없이 오락가락,
그 사람에 대해선 어케 생각하세요?
청산은 꼭 하고 넘어가야 되는 거 맞죠?
그 나라는요~ 이래서 그렇거던요오~~
하더니,

드뎌
ㅇㅇ 어머니...
저 요새 누구 만나고 있어요.... 하며 배시시.. 웃는다.

- 어쩐지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표정에 생기가 도는 것이 봄아가씨를 연상케 하더니
이런~ 그새 바람이 낫구먼, 축하해요..

요,자가 미쳐 끝나기도 전에

- 아유~ 감사합니다아~~ 하곤

그 사람, 만난다는 그 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풀어놓는다.

그래.... 어떤 만남이든 다 운명이지,
우리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고
장미와 어린왕자, 왕자와 여우같이 서로 길들여지고
그후에 얻어지는 건 안정감이지,
그건 신뢰가 구축되었다는 반증이기에 서로에게 확신을 갖게되지...


- 지루하실텐데 이거라도 들으세요오~

아니, 이럴수가!
츠츠츠츠 스크라치 요란한 비틀즈 LP를 걸어두곤
그녀가 총총 사라진다.
세상에, 나는 허겁지겁 일어나 뒤진다.
한 구석엔 책이 아무렇게나 잔뜩 쌓여있다.


우리집엔 십수년도 더된 수백장의 LP판이 먼지를 덮어쓰고
천덕꾸러기같이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있는데,
한장 한장 사 모으며
베토벤에 가슴뛰고,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에 흥분하고,
토스카에 가슴저리고, 리스트의 광시곡을 들으면서 울던 기억이 새삼스러워
지나간 젊음이 주던 열정이 가슴 한켠을 저리게 채운다.


퍼머가 다 끝나고 앉아 보라더니
내가 잡지에 시선을 뺏긴 사이에 몬가 일을 저질렀나보다.

- 지금 들어가시자 마자 샤워부터 하셔햐 해요오~~ 꼬옥!!

논두렁가에 핀 작디작은 꽃도 보고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일몰에 감탄도 하면서
이것저것 아주 옛날에 배�던 스텝으로 걸으면서
괜히 내가 연애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는데,

아차! 씻으랫지..... 하고 거울을 보니 아뿔싸......
내 머리에 꽃이 알록달록 피었다.
브릿진가 몬가 부분염색을,
내 몰래 또 저질렀다, 그 악동이.


가끔 젊은 생기가 그리울 땐 적당한 핑계거리 찾아서
미장원엘 간다.
옆구리에 먼지 털어낸 커다랗고 촌스런 LP한장 끼고서
길가 작은꽃들에 말도 건네며
종달새를 보러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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