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4
김수영을 읽는 것은 자유를 읽는 것이다!
우리의 첫 시인이자 마지막 시인, 김수영의 서러운 리얼리즘 『김수영을 위하여』.
시인이자 혁명가였고, 진정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인문학자 강신주가 자신의 이야기를 덧입혀 읽어 내려간 책이다.
김수영에게 시인이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며 자유를 살아 내는 이를 뜻했기에,
김수영을 읽는 것은 자유를 읽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시인으로 오해 받았지만 사실은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다.
김수영이 죽은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도달한 인문정신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며
진정한 자유와 인문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김수영의 인문정신을 제대로 읽어 낼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의 억압을 극복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본책)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김수영을 위하여
머리말
프롤로그
- 김수영을 아는가, 자유를 아는가
1부 시인을 위하여
1장 인간적이거나 인문적이거나
2장 전쟁의 가르침과 사랑의 상처
3장 시인, 영원한 자기 배반자
2부 사람을 위하여
4장 가장 구체적이어서 가장 단독적인 것, 시
5장 공통된 중심이 부재한 사회를 꿈꾸다
6장 언어의 숙명과 시인의 소명
7장 자기 힘으로 도는 팽이가 되어라
3부 자유를 위하여
8장 행동을 낳는 생각을 하다
9장 자유를 살아 내다
10장 불온함은 긍지다
에필로그
- 굿바이! 김수영
편집자의 말
참고문헌
김수영 연보 및 본문 수록 작품 발표시기
*
*
1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성복(1952-) 시인의 멋진 말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도 전에 미리 사랑하는 방법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다만 실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삶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방법을 가진 삶은 삶이 아니다.
방법을 가진 삶은 박제된 삶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삶에서는 새로운 타자와 마주쳐서 자신이 변화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방법을 가진 예술도 예술이라고 할 수가 없다.
미리 정해진 방법이 있다면 예술은 창조성을 잃고 단순한 기술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임제)
- 자신이 아닌 어떤 것도 흉내 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스타일로 살아 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자 인문학이 추구하는 자유정신 아니겠는가.
2012년 4월
정신적 키를 한 뼘은 키워 준 김수영을 기리며
(※「머리말」을 발췌·축약함.)
2
지금 자유로워 보이는 젊은 대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유로운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한 편의 시를 읽었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시를 읽고 나서, 강연장을 가득 메운 교직원과 학생들의 얼굴을 보았다.
불쾌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당혹감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이 시는 시인 김수영이 1960냔 10월 6일에 쓴 <김일성 만세>라는 시다.
4. 19 혁명 이후 등장한 장면 민주당 정권이 이승만 독재정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를 설명하자 청중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시라고 하니까 그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청중들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김수영이 시를 쓴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내면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허탈했다.
그들 내면에 모종의 검열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우리가 아직 50년 전 김수영이 도달한 인문정신 근처에도 다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권력을 무서워 하고 검열에 찌든 정신이 어떻게 자유정신과 민주주의를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5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김수영의 정신이 만개하지 못하고 이렇게 위축되어 있는 것일까?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너희들 맘대로 해도 좋다."
- 이것이 바로 허용된 자유의 논리이다.
허용된 자유를 자유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게 된다.
체제가 우리를 겁박하려 할 때, 우리는 나약하게 외칠 것이다.
"저는 한계를 지켰는데 왜 이러세요?"
詩는 문학의 가능성이다.
형식도 모방하지 않고, 내용도 모방하지 않아야 시가 된다.
혹은 형식도 강요되지 않고 내용도 강요되지 않아야 시가 된다.
시는 글로 표현된 자유정신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시는 난해하다는 인상이 든다.)
급류를 따라 흘러가는 물고기는 오직 죽은 물고기 뿐이고,
강풍에 날려가는 새는 오직 죽은 새 뿐이다.
김수영의 마지막 시는 우리의 마음에 파람 멍울 하나를 만드는 것만 같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풀> (1968. 5. 29)
나의 육신은 아버지가 낳아 키워 주셨지만,
나의 정신을 보듬어 준 것은 김수영이다.
3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힌 채 생사의 기로에 섰던 반공포로들을 떠올리며,
혹은 전쟁과 포로 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자
1953년 5월 5일 다음과 같은 長詩를 쓴다.
조국에 돌아오신 상병포로(傷病捕虜) 동지들에게
- 김수영
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 하나의 부실한 처를 버리고
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
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
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현대의 천당을 찾아 온 것이었다
나는 원래 약게 살 줄 모르는 사람이다
진실을 찾기 위하여 진실을 버려야 하는
내일의 역설 모양으로
나는 자유를 찾아서 포로수용소에 온 것이고
자유를 찾기 위하여 유자철망을 탈출하려는 어리석은 동물이 되고 말았다
"여보세요 내 가슴을 헤치고 보세요
여기 장발장이 숨기고 있던 格印보다 더 크고 검은 호소가 있지요
길을 잃어버린 호소예요"
"자유가 항상 싸늘한 것이라면 나는 당신과 더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것은 살아 있는 포로의 애원이 아니라
이미 대한민국의 하늘을 가슴으로 등으로 쓸고 나가는
저 조그만 비행기같이 연기도 여운도 없이 사라진 몇몇 포로들의 영령이
너무나 알기 쉬운 말로 아무도 듣지 못하게 당신의 뺨에다 대고 비로소 시작하는 귓속 이야기지요"
"그것을 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지요
누가 거제도 제61수용소에서 단기 4284년 3월 16일 오전 5시에 바로 철망 하나 둘 셋 네 겹을 격하고
불 일어나듯이 솟아나는 제62적색수용소로 돌을 던지고 돌을 받으며 뛰어들어갔는가"
나는 그들이 어떻게 용감하게 싸웠느냔 것에 대한 대변인이 아니다
또한 나의 죄악을 가리기 위하여 독자의 눈을 가리고 입을 봉하기 위한 연명을 위한 아유(阿諛)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명이 지루하다고 꾸짖는 독자에 대하여는 한마디 드려야 할 정당한 이유의 말이 있다
"포로의 반공전선을 위하여는
이것보다 더 장황한 전제가 필요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의 용감성과 또 그들의 어마어마한 전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드르이 싸워온 독특한 위치와 세계사적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를 위하여 출발하고 포로수용소에서 끝을 맺은 나의 생명과 진실에 대하여
아무 뉘우침도 남기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자유를 연구하기 위하여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의 두꺼운 책장을 들춰볼 필요가 없다
꽃같이 사랑하는 무수한 동지들과 함께
꽃같은 밥을 먹었고
꽃같은 옷을 입었고
꽃같은 정성을 지니고
대한민국의 꽃을 이마 위에 동여매고 싸우고 싸우고 싸워 왔다
그것이 너무나 순진한 일이었기에 잠을 깨어 일어나서
나는 예수 크리스트가 되지 않았나 하는 신성한 착감조차 느껴보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여 나오려고
무수한 동물적 기도를 한 것은
이것이 거짓말이라면 용서하여 주시오
포로수용소가 너무나 자유의 천당이었기 때문이다
노파심으로 만일을 염려하여 말해 두는 건데
이것은 촌호의 풍자미도 역설도 불쌍한 발악도 청년다운 광기도 섞여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여러분!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시가 아니겠습니까.
일전에 어떤 친구를 만났더니 날더러 다시 포로수용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어봅니다
나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포로수용소에서 나온 것은
포로로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간 억류인으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나온 것이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빨리 38선을 향하여 가서
이북에 억류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UN군의 포로들을 구하여내기 위하여
새로운 싸움을 하라고 합니다
나는 정말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북에서 고생하고 돌아오는
상병포로들에게 말할 수 없는 미안한 감이 듭니다"
내가 6·25후에 개천 야영훈련소에서 받은 말할 수 없는 학대를 생각한다
북원 훈련소를 탈출하여 순천 읍내까지도 가지 못하고 악귀의 눈동자보다도 더 어둡고 무서운 밤에
중서면 내무성 군대에게 체포된 일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달아나 오던 날 새벽에 파묻었던 총과 러시아 군복을 사흘을 걸려서 찾아내고
겨우 총살을 면하던 꿈같은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평양을 넘어서 남으로 오다가 포로가 되었지만 아마 나의 영혼은
부지런히 일어나서 고생하고 돌아오는 대한민국 상병포로와 UN 상병포로들에게 한마디 말을 하였을 것이다
"수고하였습니다"
"돌아오신 여러분! 아프신 몸에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우리는 UN군에 포로가 되어 너무 좋아서 가시철망을 뛰어나오려고 애를 쓰다가 못 뛰어나오고
여러 동지들은 기막힌 쓰라림에 못 이겨 못 뛰어나오고"
"그러나 천당이 있다면 모두 다 거기서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넘어진 반공포로들이
다 같이 대한민국의 이북 반공포로와 거제도 반공포로들이
무궁화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진정한 자유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반항의 자유
진정한 반항의 자유조차 없는 그들에게
마지막 부르고 갈
새날을 향한 전승의 노래라고 부르고 싶어라!
그것은 자유를 위한 영원한 여정이었다
나직이 부를 수도 소리 높이 부를 수도 있는 그대들만의 노래를 위하여
마지막에는 울음으로밖에 변할 수 없는
숭고한 희생이여!
나의 노래가 거치럽게 되는 것을 욕하지 마라!
지금 이 땅에는 온갖 형태의 희생이 있거니
나의 노래가 없어진들
누가 나라와 민족과 청춘과
그리고 그대들이 영령을 위하여 잊어버릴 것인가!
자유의 길을 잊어버릴 것인가!
4
김수영 시인은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고 거제 수용소에서도 천신만고끝에 살아남아 아내를 찾아갔지만
아내는 이미 자신의 친구 이종구와 동거중이었다.
김수영은 아내 김현경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1년 후에나 돌아온다.
이 시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쓴 시이다.
너를 잃고
김수영
네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번 네가 없어 서러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는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네가 없이도 산단다.
네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네가 주는 모욕의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의 원주 위에 어느 날이고
네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 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네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1953년)
─ 1954년 김현경이 돌아온다.
그러나 김수영은 다시는 연애시를 쓰지 못하는 불구의 시인이 되고 만다.
"자식을 볼 때에도, 친구를 볼 때에도, 아내를 볼 때에도
그들의 생명,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
─ 사랑에 대한 김수영의 상처는 이처럼 컸다.
5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 나가게
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 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槪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연민(憐憫)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6
육법전서와 혁명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혁명을 ―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보라 항간에 금값이 오르고 있는 것을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리고 있다
보라 금값이 갑자기 8,900환이다
달걀값은 여전히 영하 28환인데
이래도
그대들은 유구한 공서양속(公序良俗) 정신으로
위정자가 다 잘해 줄 줄 알고만 있다
순진한 학생들
점잖은 학자님들
체면을 세우는 문인들
너무나 투쟁적인 신문들의 보좌를 받고
아아 새까맣게 손때 묻은 육법전서가
표준이 되는 한
나의 손등에 장을 지져라
4·26 혁명은 혁명이 될 수 없다
차라리
혁명이란 말을 걷어치워라
하기야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 되지만
그보다도 창자에 더 메마른 저들은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
(1960. 5. 25)
7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 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1960. 6. 15)
8
사람이 눈길을 걸으면 그의 발자국이 찍히는 법이다.
발자국이 찍히지 않았다면, 그곳에 사람이 없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