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 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

2018. 3. 27. 19:33책 · 펌글 · 자료/종교

 

 

 

 

 

 

초판발행. 1997년 2월 12일

지은이. 요헨 힐트만

옮긴이. 이경재, 위상복, 김경언

도서출판 학고재

 

 

 

차례

 

한 유럽인 예술가의 전생 찾기 / 이태호

 

제1부 용화세계

 

천도

왕복

주둥이와 장식

만산 계곡에서 1

역사

들쥐

미륵이 오시는 길

천불동 운주사

일종의 발전소

전해지는 이야기

풍수

立石

만산 계곡에서 2

중력과 갈망

부정적 이상향

장소의 소재성

미륵

 

제2부 천불천탑

 

성스러운 돌들 · 한스 요아힘 렝거

천불동에서 찾아낸 한국 문화의 뿌리 / 송기숙

 

 

 

 

 

 

 

제목 : [화제의 책] 독일 예술가의 눈에 비친 `미륵세계'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운주사는 미
래의 구세불인 미륵불의 도래를 기다리던 민중들의 바람과 좌절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천개의 석불과 천개의 석탑이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지면 미
륵이 다스리는 이상사회인  용화세계가 열린다는 믿음에 따라 세워졌다는
석불과 석탑이 좁고 긴 계곡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마지막 두개를  남겨
놓고 닭이 우는 바람에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는 운주사는 이제는 석불 70
위, 석탑 12기만이 남아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륵](요헨 힐트만지음,학고재)은 서구문명에 의해 일그러진  인간성
의 회복을 추구하는 한 독일인 예술가가 운주사 천불천탑을 통해 한국 민
중미술의 원형을 추적해 가는 기록이다.  1960년대 조각가로 출발한 저자
는  사진-비디오등 영상예술로 옮겨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평론도 함께 벌
이면서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극복을 시도해 왔다.

 

  함부르크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힐트만은 1985년 처음 한국을 방
문했고 이듬해에는  반년동안 전남대에 교환교수로 와 있으면서 운주사를
집중적으로 답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전생에 한국 땅에 살았던
승려같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감명과 일치감을 토로했으며 이런 느낌은
1987년독일에서 초판이 나온 [미륵]에 잘 나타나 있다.

 

  이책은 철학적인 기행문과 실증적인 보고서의 두가지 형식을 통해  운
주사 석불-석탑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제1부 용화세계]
에서 저자는 기행문 형식으로 운주사에 대한 기본정보를 충실히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산업문명과 인간주의, 삶과 예술, 진보와 이상향등  다
양한 주제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예술가 특유의 감수성 있는 문장으로
펼쳐낸다.  이어 [제2부 천불천탑]에서는 고고학자의 보고서를 떠올리게
하는 정밀함으로 남아 있는 석불과 석탑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또한
곳곳에  등장하는 수십장의 흑백사진은 저자가 사진예술가임을 새삼 깨닫
게하며 이책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이선민기자>

발행일 : 97년 02월 13일(조선일보)

 

 

제  목 :[책과 사람]「미륵-운주사 천불천탑…」펴낸 獨힐트만씨

 

    [金次洙 기자] 한국의 전통문화에 매료된 벽안의 독일학자가 전남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千塔)」을 보고 쓴 「미륵―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학고재)가 번역 출판됐다. 기행연구서 겸 사진집인 이 책은
  미술가이자 예술이론가인 요헨 힐트만교수(함부르크대)가 지난 87년 독일
  에서 출간, 한국의 전통문화를 독일에 알리는데 한몫을 했던 책이다.

 

    『조각논들 곁에 군데군데 불상과 탑들이 세워져 있고 바로 그 옆에서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는 운주사옆 만산계곡의 정경을 처음 대하고 저는
  충격이라 할 만큼 엄청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과 예술과 신
  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힐트만교수는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을 이렇게 회
상했다. 파독 간호사출신의 서양화가로 독일화단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
는 송현숙씨와 결혼한 힐트만교수는 지난 85년 한국에 처음 왔었다.

 

    천불천탑을 보고 첫눈에 한국의 전통문화에 반한 그는 이듬해 전남대
  교환교수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천불천탑에 관해 본격적으로 연구, 「미
  륵―한국의 성스러운 돌들」이라는 책을 독일에서 펴냈던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힐트만교수가 직접 찍은 천불천탑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
  1백여장이 실려 있어 현장감을 더해준다.

 

    힐트만교수는 만산계곡의 불상과 탑에는 미륵의 강림을 통해 펼쳐질 「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꿈꾸는 민중들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있다고 해석
  했다.

 

    힐트만교수는 『한국은 산업화를 통해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산업화로 인해 인간존중 등 소중한 가치들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걱
  정하면서 『문화적 전통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힐트만교수는 책 출간을 기념해 열리는 천불천탑 사진전
  (12~18일 서울 학고재화랑, 21~27일 광주 송원갤러리)에 참석하기 위해
12일오후 서울에 왔다.

 

발 행 일 : 97/02/12(동아일보)

 

 

 

 

 

 

 

1

 

내 친구들,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 송기숙과 황석영,

그리고 나를 한국의 옛 문화 속으로 안내해준

미술사학자 이태호에게 이 책을 바친다.

 

 

 

2

 

10년 전(1977년?) 운주사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었다. 능주(화순군)에서나 남평(나주시) 쪽에서의 운주사 길은 비포장도로여서, 그 시절 운주사 답사기행을 안내할 때면 꼭 이 거칠게 팬 길에서 겪는 진동과 비산비야의 창 밖 풍광이 전라도 민중의 삶과 상처가 응어리진 육자배기 같은 남도의 맛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만산 계곡의 탑들이 늘어선 공간에는 조각논들이 이어져 있었다. 운주사가 폐사된 이후 오랫동안 인근의 농민들이 그 좁은 빈 땅에 농사를 지어왔고, 불교유적이 자연스레 생산활동과 어울리게 된 것이다. 운주사 터는 고려시대 신성한 불교의 성지이면서, 석탑과 석불이 배열된 야외조각장이고, 먹고살기 위한 농토였던 것이다. 운주사는 그처럼 신앙과 에술과 생활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운주사는 힐트만 교수가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저주"할 정도로 옛모습을 잃었다.

 

 

 

3

 

20세기 유럽의 현대미술은 '이국 정서로부터 자양분'을 취하였고, 이국적인 가면이나 物神, 토테미즘적 · 제례적 기호' 등을 빌려쓴 경우가 많다. 고갱과 타히티 원주민, 피카소와 아프리카 탈, 헨리 무어와 마야 문명, 그 외에도 표현주의 · 추상주의 · 초현실주의 미술에 등장한 아프리카 · 아메리카 · 아시아 지역의 민속미술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면, 유럽의 20세기 미술은 '이국적인 보조'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면서도 힐트만 교수의 시각은 유럽 현대미술이 본래 원주민의 삶과 문화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이국적인 보조'로써 프리미티브한 형식만을 차용했던 데 그친 실상과 한계를 비판하면서, 삶에 뿌리를 둔 민속미술의 제의적 성격과 형식미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4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모든 사람들을 중생으로 파악했다. 중생이란 일반적으로 식물과 동물, 인간계의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중생의 개념은 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외경사상을 설명해 주고, 이 외경의 의미는 인간과 동물의 살상을 엄격하게 금하는 것, 또는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정신적 억압을 금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것이 바로 불교의 비폭력 사상인 것이다.

새들에게선 부드러운 깃털이 자라나고 알을 낳는다. 그렇지만 새들의 근원적인 의미는 인간이 먹을 알을 낳아주고 인간이 앉을 방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다. 생물들의 점진적인 종족사적 발전과정을 통해 새들은 우리 인간에게 생명 자체를 양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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