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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반창회

 

 

 

오늘 저녁에 반창회 합니다.

 

 

고교 졸업하고 대학 1학년 때부터 반창회를 시작했는데, 햇수로 보자면 40년 만이군요.

반창회를 처음 시작해서 칠팔 년인가 십여 년인가를 걸르지 않고 했는데 우리반이 젤 잘 뭉쳤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흐지부지 그만둬버렸는데, 20여년 지나서 다시 만났지요.

아마도 담임선생님 환갑이나 정년퇴임 즈음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서는 다음 해에도 계속 이어가기로 호기 좋게 약속을 했는데

관리책임을 맡았던 제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뚝 끊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게 벌써 십 칠팔 년 전 일입니다.

((저희는 10개 반이라서 다른 반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문과 이과는 남남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반(班)으로 뭉칩니다.))

이번에 만나자는 명분은 ‘스승의 날’에다, ‘담임선생님 팔순’ 기념입니다.

 제 기억으로 선생님이 팔십이 넘으셨습니다. 88세 제 아버지보다 너댓 살 밑이셨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여든 둘이나 셋이 되셨을 겁니다.  아무튼지간에,

그 서슬이 퍼렇던 선생님이 어찌 늙으셨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이종국 교장선생님이, “매우 훌륭한 분이셨다더군요.”

제가 왜 이렇게 말을 하냐면, 교장선생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뵙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공부하라면서 월요일 운동장 조회도 안하셨던 분입니다.

선생님들에게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자애로운 아버지나 큰형님 같으셨답니다.

우리가 담임선생님을 존경하듯이,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을 그렇게 존경한 듯합니다.

부임하시고 얼마동안, 우린 교장선생님을 학교 허드렛일이나 하는 잡역부 아저씨인줄로 알았습니다.

운동장에 유리 쪼가리나 돌멩이, 담배꽁초나 줍고 다니셨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취임식도 안하신 것 같습니다.

삼선개헌, 10월 유신으로 시끄럽고 살벌하던 그 시절에,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당시, 우리도 반별로 모금해서 참여했었더랬습니다.

그러니 교장선생님이 어찌 무탈하셨겠습니까?

잡혀가서 수모를 꽤 당하셨다는데도 선생님들에게 일체 내색을 안하셨다더군요.

 

 

 

 

 

 

 

맨밑에 이 분은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때까지의 교장선생님이셨는데,

이종국 교장선생님과는 정반대이셨습니다. 독불장군으로 ‘권위적이고 군림하는’ 교장선생이셨습니다.

한여름에도, 월요일마다 꼬박, 선생님과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두고 1시간씩 훈화(訓話)하셨드랬죠.

"단상에 계신 교장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빠~ 빰빠빠~),

- 그 존재감으로 살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왜정 때 학교를 안 다녀봐서 모르지만, 일본사람 교장선생들이 아마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칼 차고 다니면 아주 잘 어울렸을, 그런 사람이었죠.

 

 

 

 

 

 

 

담임선생님에 대한 얘길 다 하자면 깁니다. (언젠간 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제일 무서운 수학선생님이면서도 가장 존경 받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1, 2년차 후배들에게서도, 옮겨간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서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원리원칙만 찾는 분이신데,

의외스럽게도,, 모든 선생님 가운데 가장 먼저 교장선생님이 되셨습니다. - 50세 전이셨죠.

수학 과목 선생으로 교장선생이 되기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어려운 일 아닙니까?

도교육위원회 인사 실무도 하시다가 교육장으로 나가셨지요.

풍문으로 듣자니 교육장을 하시면서도 귀감이 될만한 흔족을 많이 남기셨더군요.

암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름을 다 알겠는데, 갑자기 보면 생각이 안나요. ^__^))

명찰 만들어 달자니 늦었고, 이따 만나면 견출지에라도 이름 써 붙이자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