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의 그 손가락이 말이야……,

2014. 1. 18. 09:54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학자들 사이에 있는 그리스도  1515~1530년경, 베르나르디노 루이니, 패널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영국 

"중지를 가리키며 천주의 아드님임을 보여주고 계시는 예수님은 여성스러우리만큼 투명한 흰 피부에 긴 곱슬머리의 아름다운 모습이다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과 꼭 다문 입술에서 느낄 수 있는 확고함은 나이 들어 완고하고 노련하며 트집 잡고 싶어 하는 네 명의 학자들을 압도한다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고 학자들이 예수님보다 낮게 그려진 피라미드 구도의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암법과 라파엘로의 우아함을 합쳐 아름다운 화풍의 고전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조우리 베네딕다

 

 

 

 

잡티 하나 없이 저리도 곱게 잘 생겼는데 어디로 봐서 요절할 상이냐고?

관상쟁이들 있으면 말 좀 해봐바!

콧날 반듯하고, 콧구멍 안 보이니 재물 안 빠져나가게 생겼고,

아랫볼 도톰하고, 턱 동그스름하여 말년운 좋겠고,

입 살짝 오무려 고집 좀 있겠지만 귀상이 틀림없고,

눈썹 손질 안했어도 금근 듯이 가지런하고,

입술이랑 손 도톰하고 섬세한 것이 福 있고 재주 많게 생겼잖아.

어디로 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상이냔 말이야!

누가, 다 빈치와 카라바조가 그린 예수像을 관상학적으로 분석 좀 해보라니께!

폐일언하고,, 내가 지금 당장 궁금해 하는 것은 저 손가락인데.

왜 가운데 손가락이 하느님 아들이란 거냔 말이야?

보통은 엄지 손가락이 ‘으뜸’ 아닌가?

김병현이 보스톤서 직쌀나게 욕먹었었지. 중지를 내미는 건 욕이거든.

 

 

 

 

 

 

 

 

 

 

 

 

아래 게시물 출처. cafe.daum.net/globalagape/Kz1m/467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 진흙속의 진주처럼 묻혀져있던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불러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린 천상의 소프라노 드라마, CF, 라디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불후의 명곡 '카치니 아베마리아' . 이탈리아의 작곡가 지울리오 카치니(1551 ~ 1618)가 쓴 아베마리아는 1990년 이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노래였다. 악보가 유실되었던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 어느 가수들도 부르지 않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 노래를 갈란테 외에 슬라바, 샤롯 처치, 레슬리 가렛 등이 부르면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그러나 갈란테 만큼 절절하고 극적인 기도로 노래한 사람은 없었다. 갈란테만이 갖고 있는 예술적 영감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세계 무대에 널리 알리게 된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는 리투아니아의 리가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던 어머니와 테너가수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음악은 숨쉬는 공기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음악적 재능 또한 천부적이었다. 이네싸 갈란테는 1977년 리가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Rachel Shulov에게 사사했고 학생시절부터 리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을 했다. 주로 동구권 국가들에서 연주를 했으며 Kirov Opera에서 정규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모스코와 키에브, 오데사로 그 활동영역을 넓히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순회공연은 비평가들에게 그녀의 존재에 대하여 주목을 하게 만들었으며 예후디 메뉴인경과 주빈메타는 그녀에게 서부 진영으로의 데뷔를 제안하게 된다. 그러나 동서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녀의 서구 활동을 제약하는 커다란 요소였다.  1991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서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는 비로소 세계 무대로의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독일 만하임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Pamina 역할의 연주를 필두로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페라 "카르멘" 돈호세의 버려진 애인 미카엘라역을 호연하면서 마침내 이네싸 갈란테는 비평가들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95년 Campion Record에서 제작된 "Debut" 앨범의 선풍적인 인기는 세계 무대에 그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10월 스코틀란드 왕립 오케스프라와의 공연으로 영국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1997년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는 에비앙 페스티발에서 연주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뉴포트와 헐리우드 보울에서 연주를 했으며 1998년 12월 런던에서 연주를 하였다.

2000년 홀란드 플래티넘 디스트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2001년 1월 12일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연을 하였다.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
 
 
 
 

Ave Maria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Schubert, Franz Peter (1797-1828)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 조수미

구노의 아베마리아 / 이네사 갈란테

카치니의 아베마리아 /조수미

 

'아베마리아'는 영국 시인 Walter Scott의 서사시 'Lady on the Lake' 중 '엘렌의 노래'에 곡을 붙인 것으로 6번째 곡에 해당된다. 소녀 엘렌이 호반의 바위 위에서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성모상에게 비는 내용으로 그 당시에도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였던 곡이다. 이 곡은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빌 헬미가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해 더욱 유명해졌다.

 

마리아 (Maria) :

가톨릭·동방교회 등에서는 성모(聖母) 또는 성모 마리아라고 존칭한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갈릴리 지방 나자렛 마을에 살았고, 목수 요셉과 혼약하였으나 천사의 계시로 처녀잉태하였다. 출산이 임박하여 헤로데왕의 호적 일제조사 명령이 내려 베들레헴으로 갔으나 숙소를 잡을 수 없어 교외의 동굴 안에 있는 마구간에 들었다가 거기서 예수를 낳았다. 그런데 헤로데가 베들레헴에 장차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이 영아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화난을 피해 일단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후에 나자렛으로 돌아와 그리스도가 공(公)생활을 시작하는 30세 무렵까지 그 곳에서 조용한 생활을 보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처형되자 그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첼로연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flute연주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piano연주

 

현재 가톨릭의 교의(敎義)에 의하면 마리아는 죽은 후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것을 ‘성모승천(聖母昇天)’이라고 한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信心)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盛)하여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숭배되었고, 은총의 중개자로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마리아를 기리는 축일도 많은데, 주의 봉헌축일(2월 2일),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12월 8일)가 그 주된 것이다. 예로부터 마리아는 회화 ·조각 ·음악 등의 소재가 되어, 화제(畵題)로서는 《성모 영보(聖母領報)》 《성모자(聖母子)》 《피에타》 등이 알려져 있으며, 걸작이라고 할만한 작품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음악에서는 아르카텔트나 구노의 가곡 《아베 마리아》가 유명하다.  

아베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성모 찬가로, 고금의 작곡가의 손에 의해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사는 라틴어로 되어 있고 루가 복음의 전반부와 15세기 중반 성 베르나르도의 시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아베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주요 기도문 중 GLORIA(대영광송), CREDO(사도신경) 등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천사의 축복, 성모 영보 때의 마리아에 대한 찬미와 사촌 엘리사벳의 축하 노래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기도문을 아름다운 선율로 옮겨 놓은 것이기도 합니다.  

 

Ave Maria

Cello / Mischa Maisky

 

 

 

 

 

 

 

바흐의 평균율 제1권

제1곡 C장조 이 프렐류드는 구노가 「아베마리아」의 선율을 배치하여 널리 알려지고 있다. C장조로서의 분산화음에 의한 밝은 울림을 주체로 한 서법을 취하고 있는데, 그 뼈대는 어디가 지나 5성체의 화음 연결에 두어지고 있다. 이 푸가는 4성. 우선 알토로 주제가 제시되고, 2마디째의 3박째 후반에서 소프라노로 응답되는데, 푸가주제 그 자체는 2마디 3박짜의 E음 까지이다.  극히 쉬운 주제이지만 개성적인 명확성을 가지고 있다. 주제와 응답은 7마디째의 처음에서 끝나는데, 이 푸가에서는 4성의 경우의 통상 형태 (주제-응답-주제-응답)를 취하지 않고, 주제-응답-응답-주제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평균율" 중의 푸가에서는 단 하나의 예이다.그 위에 이 푸가에서는 거의 모든 마디에 주제가 배치되어 있어서 간주부라고 부를만한 것은 없고, 주제와 주제 사이의 근소한 박수(拍數)의 사이에만 경과적인 부분이 있는 데 불과하다.

 

 

prelude Glenn Gould, Piano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아베 마리아'(Ave Maria)라는 말은 원래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탄생 예고를 위하여 나자렛의 마리아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루가 1, 28) 고 인사했던 말의 라틴어 표기이다. 그러나 후일의 교회가 루가의 복음서 1장 28절과 2장 42절에 청원기도를 추가하여 하나의 기도문을 완성하고, 머릿 글자를 따서 '아베 마리아'라는 기도문 제목을 붙임으로써 '성모송'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아베 마리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유는 분명히 따로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공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모송을 가리키는 라틴어 '아베 마리아'는 우리 가톨릭 신도들의 기도 속에만 갇혀 있었을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계에서는 성모 마리아님을 칭송하는 가곡을 통털어서 '아베 마리아'라고 부르고, 대개가 성모송의 라틴어 원문을 가사로 하여 종교적 열정을 노래하는 장중한 곡들이다. 16세기의 아르카델트가 자신의 세속적인 곡에 성모송의 가사를 들어 맞춘 곡이 '아베 마리아'의 효시가 된 이래, 퍼시칸, 샤를르 구노, 쥬세뻬 베르디, 그리고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작곡한 곡들은 하나같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며 깊은 감명을 준다. 대개 라틴어로 부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교회 밖의 무수한 사람들도 절로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성모님께 기도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귀에 익었고 감동을 더 해주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독창곡은 그 가사가 '성모송"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시인 월터 스코트(1771 - 1832)의 시 '호상의 미인'(The Lady of the Lake)인 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스코트의 이 시는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시적 아름다움과 감각이 결코 수그러들지 않은 당대 최고의 서정시로 알려져 애송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의 슈토르크가 번역하여 독일인들도 너나 할 것없이 애송했다고 하느데, 슈베르트가 이 독일어 번역시에 아름다운 곡을 붙여 그의 '아베 마리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슈베르트는, 이미 아는 바와 같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서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였고, 또 일생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내며 활동하였지만 베토벤과는 사뭇 다른 음악의 길을 걷고 있었다. 베토벤은 음악을 계시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선민으로 자처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독일 유식계급의 눈에 비친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 초기 활동의 지도이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와 같은 선민의식을 갖지 않고, 스스로 즐기고 또한 타인도 즐겁게 해 주려고 작곡하였다. 여기에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이 있 다고 보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음악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열정이 극치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 마리아! 자비로우신 동정녀여,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쓸쓸하고 거친 이 바위동굴에서
나의 뜨거운 기도를 당신께 드립니다.

인류가 여전히 비참한데도
우리는 아침까지 편안히 잠을 잡니다.
오, 동정녀여, 어린 소녀의 슬픔을 보소서.
오, 어머니여, 간청하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숭고하신 동정녀여!
땅과 대기의 악마들은
당신의 자비로운 눈앞에서 도망을 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의 미소와 장미의 향기가
이 축축한 바위동굴로 날아들어옵니다.
오, 어머니여, 당신 아기의 기도를 들으소서.
오, 동정녀여, 어린 소녀의 울음을 들으소서.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는 1826년 7월 25일,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호상의 미인"을 작곡한 저의 새 곡은 성공했습니다. 제가 동정 성모의 찬미가에 표현한 종교적 감정이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고 놀라게 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감동하고 장엄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무리하게 종교적 감정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고 저 자신보다 강한 그 무엇인가에 의해 느낀 감정에 따라 신성한 음악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정말로 순수한 종교적 감정일 것입니다."

베르트의 편지에 의하면, 이 성스러운 노래는 교회에서 바치는 전례용과 달라서 아무런 종교적 장식이 없고, 단순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다. 쇼팽의 Nocturn(저녁 기도)이 전례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전례용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그러나 그 신앙적 열정과 정신은 전례적인 성가 못지 않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을 줄 안다. 

한 마디 부언하고 싶은 것은 슈베르트 외의 다른 '아베 마리아' 가사는 모두가 성모송이란 사실입니다. 따라서 작곡가에 따라 음악적 분위기가 다를 뿐이다. 슈베르트의 것과 쌍벽을 이루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성모송을 토대로 전례용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곡의 취향이 딴판이고 안톤 브루크너의 '아베 마리아'는 작곡자가 '떼데움'을 자곡한 성직자란 선입관 때문인지 지나치게 무겁다는 평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