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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펌글 · 자료/역사

「아우슈비츠」를 찾아온 이스라엘 학생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에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찾아온다.

주로 단체 학생 관람객인데, 유대인 학교는 의무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뼈아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한다.

조용히 관람하는 일반 관람객들과는 달리 이들은 이스라엘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전의에 찬 표정으로 헤집고 다닌다.

이들의 얼굴에서는 참배와 추모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조용히 참배만 하기에는 전시되어 있는 유품이 너무나 생생하고 섬뜩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학생들의 표정은 ‘용서와 화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분노와 증오에 대한 확신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스라엘인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복수를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웃국가에게 해대는 행위는 보복과 다르지 않다.

나라 없는 서러움을 이기고 천신만고 끝에 팔레스타인 땅을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나라를 세운 유대인,

그들은 지금 이웃과 평화롭게 살기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분쟁 중 이스라엘이 관여되지 않는 것이 몇 개나 될까?

그래서 심지어 이스라엘이 없어져야 세계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간 유대인들에 대해선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지만,

이것이 ‘집단적 기억’을 통한 역사교육과 정치적 매커니즘으로 인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있음을 생각하면

또 다른 비극에 대한 우려도 생긴다. 발칸반도에서 세르비아가 그랬듯이 말이다.

여론조사가 이를 반증한다.

2010년 11월 이스라엘 여론조사기관인 지오캐트로그래피아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인의 51%가 “독일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19%가 “독일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응답해

“독일을 용서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3%에 불과했고, 7%는 별다른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고령자가 독일을 용서한다는 비율이 높은 반면에  젊은 세대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집단적 기억’을 조장하는 역사교육의 영향이 있는 것이다.

 

이종헌, 『낭만의 길 야만의 길』p25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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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깝깝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우리라고 해보란 말이지요.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손쳐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다큐멘터리 영상물은 많이 보셨을 겁니다. 바로 그대로예요.

박물관 자체가 당시의 수용소 건물을 고대로 쓰고 있으니까요.

그곳에 전시물만 들여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가보면 정말 숨이 콱 막힙니다. "정숙"이라고 써놓을 필요도 없어요. 아무도 말하는 사람 없어요.

학살 현장과 희생자의 유해 ·유품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데,

산더미처럼 마대자루에 쌓여있는 머리카락, 의치, 의족, 안경, 가죽가방, 여자아이 인형, 가스실, 화장터……, 

그런 걸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본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눈이 뒤집히고 피가 솟구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가이드가 그럽니다. 이스라엘 단체 관람객 가까이에 가지 말라구요.

사실은 그럴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특별대우를 받으니까요.

국기를 몸에 두르기도 하지만, 주인 행세하는 폼이 금방 표시가 납니다.

그리고 일반 관광객과는 다르게 박물관 측에서 별도의 안내자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관람하러 오면 일반인들은 다른 전시관을 봐야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독선적인 나라가 되어 막무가내로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다, 거칠 것이 없다, 이거죠. 

그 심정 이해는 됩니다.

이스라엘 땅에 사는 국민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제가 10년 전 터키 갔을 때, 텔아비브 시내에 자살폭탄 테러가 빈번할 때였는데,

그런데도 벨리댄스 공연장에 들어선 이스라엘 사람들, 전혀 두려움이나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터키는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인 이슬람 국가인데도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발칸반도(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의 인종청소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에 뺨맞고는 힘없는 보스니아에 분풀이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독일에 뺨맞고 팔레스타인에 분풀이 하는 꼴 아닙니까.

그러나 세르비아 ·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거나 동정받을 만한 과거가 있다고 해서 흉악 범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종청소국가’, ‘악의 축’이라는 세계인의 평결에 대해서 겸허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가해자인 독일 사람들은 끊임없는 반성과 속죄로 인해서 세계인의 존경받고 있는 반면에

정작 피해자인 이스라엘은 또 다시 저주받는 국민이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서양사회가 왜 2천 년씩이나 유대인을 경멸해왔는지 고개가 끄덕여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세계인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저지르고 있는 죄악을 나치보다 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 사는 국민과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은 다른 것 같습니다.

‘집단적 기억’을 조장하고, ‘집단적 증오’를 부추기는 역사교육과 정치적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