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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펌글 · 자료/역사

가해자와 피해자-두 얼굴을 가진 나라, 세르비아

 

 

 

 

 

인구 : 728만 명 (영토는 한반도보다 약간 작음.)

1인당 국민소득 : 6천 달러

인종 : 세르비아 82.9%, 헝가리 3.9%, 집시 1.4%, 보스니아 1.8%

종교 : 정교 85%, 카톨릭 5,5%, 이슬람 3.2%, 개신교 1.1%

 

 

 

 

1

 

어스만제국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된 베오그라드는 오스트리아 공격으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오스트리아에게 두 번이나 점령당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독일과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중 하나다. 베오그라드는 도시가 세워진 이후 총 40여 차례나 파괴되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으로 고대와 중세의 2000년 역사의 유적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2

 

밀로셰비치가 치고 싶었던 나라는 독립을 선포한 슬로베니아나 마케도니아가 아니라 따로 있었다. 바로 크로아티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지원을 받은 크로아티아의 파시스트 집단 '우스타샤'가 수만 명의 세르비아계 이주민을 학살한 사건을, 드디어 응징할 기회가 온 것이다. 화력에서 우세한 세르비아가 20만 명의 크로아티아인을 학살하고 크로아티아 영토의 3분의 1을 점령햇다. 양측의 대치 속에 보스니아에서도 전쟁이 발발하자 세르비아의 전력이 분산되면서 크로아티아군이 세르지아군을 격퇴하고 영토를 수복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3

 

세르비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협력한 크로아티아에게 수많은 세르비아계 주민이 학살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어렵게 세운 발칸의 국가연방인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 카톨릭 국가나 이슬람 국가에서 소수로 남게 될 세르비아계 정교도들이 또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할까봐, 이들을 구하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행한 전쟁인데, 기독교 중심의 국제사회는 이 아픔을 알아주지 않고 세르비아가 행한 학살만 기억하고 비난하고 응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종청소'의 방아쇠를 처음 당긴 것도 카톨릭의 크로아티아가 아닌가? 정교도들이 추앙하는 성인의 유골을 파헤치고 불태워 자극한 건 무슬림이 아닌가? 카톨릭과 개신교가 힘을 합치고, 여기에 수백 년 동안 숙적인 이슬람까지 통일전선을 구축해 정교를 집단학대하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와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세르비아를 감싸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유엔안보리의 승인도 없이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나토가 정치적 계산으로 일방적 공습을 행해 수많은 세르비아 사람이 죽고 다치고 파괴되었는데, 이들이 입은 엄청난 피해를 당연시하는 세상이 못마땅할 것이다. 아래로는 오스만제국에 얻어맞고, 위로는 오스트리아에 얻어터지고, 그래서 발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세르지아인들이 똘똘뭉쳐 더 강해지려고 한 것 뿐이데, 어째서 세르비아가 하면 학살이고 미국이 하면 도덕적 응징이란 말인가?

 

 

4

 

그러나 분명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발칸 땅에서 벌어졌던 모든 전쟁은 세르비아가 이웃국가들을 계속 움켜쥐려고 한 데서 비롯됐고,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원인이었다. 세르비아는 분명 오만한 역사의 가해자다. 그런데 피해자의 얼굴만 드러낸 채 '집단적 기억'을 조장하고 '집단적 증오'를 양산한다면, 그래서 그 이웃나라들도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강조하고 또 다른 정치적 매코니즘을 통해 집'단적 증오'를 부추긴다면, 보스니아는 세르비아에게,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에게, 다시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에게,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에게 보복하는 피의 악순환만 있을 뿐이다.

 

 

 

출처. 이종헌, 『낭만의 길 야만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