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코투르노보 (불가리아) - '천험의 요새'

2013. 10. 19. 13:06발칸반도

 

 

차베레츠 언덕은 트라키아인과 로마인들의 정착지로, 비잔틴시대인 5세기와 7세기 사이에 이 언덕 위에 요새가 건립되었다. 요새는 8세기와 10세기에 불가리아와 슬라브인들에 의해 재건축되어 요새화되었으며, 12세기 초 비잔티움제국에 의해 다시 요새화되었다. 불가리아 제2왕정 때 최고의 부흥기를 맞이하였으나, 139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점령되어 파괴되었다.    현재는 400개 이상의 주택, 18개의 교회, 여러 개의 수도원, 상점, 성문과 타워 등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요새의 벽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출처] 차레베츠 요새 [Tsarevets Fortress ] | 네이버 백과사전

 

 

 

 

 

 

 

 

 

 

 

그야말로‘천혜·천험의 요새'입디다.

이처럼  완벽하게 생긴 곳은 처음 봅니다. '요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입구, 좁은 통로만 막으면 끝이예요, 다른 곳은 경계할 필요조차도 없게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오스만 터키에게 함락이 되었으니… 세상에 완전한 건 없는 법이죠. 난공불락의 성이란 없는 겁니다.

여길 보니까 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함락되던 얘기 듣던 게 생각나더군요.

 

 

 

 

 

 

 

 

정말 예쁩디다. 천혜의 미인입디다.

세르비아 여자들이 이뻐요. 죄다 쭉쭉빵빵.  나중에 베오그라드  가서 다시 얘기할 겁니다만.

불가리아 사람은 피부나 머리칼이 검고, 키도 작은 편입니다.

인종이 슬라브족과 좀 다릅니다. 불가리族?

지금은 많이 혼혈이 돼서 비슷해졌습니다만 시골 사람들은 표가 난답니다.

인도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이 지도를 잘 찍었어야 설명이 쉬운데....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조작하면 인형이 살짝 움직이며 말을 합니다.

가이드가 권 머시깽이 젊은 친군데, 잘 모릅디다.

 

 

 

 

 

 

 

 

 

성모승천 교회 

 

천혜의 요새였던 벨리코 투르노보 성벽 투어가 시작되는 성문에서 바라보면 멀리 차르베츠 요새의 언덕 위에 자리한 성모승천 교회가 보인다.

1985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마친 성모승천 교회는 차르베츠 유적 중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성당 내부의 천장과 벽에는 1393년부터 500년간 계속된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현대작가인 테오판 소케로브가 그려 1985년 기증한 그림으로 가득한데, 이 그림은 불가리아의 현대 종교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테오판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2년에 걸쳐 교회의 내부 전체에 그림을 그렸는데, 종교계의 성인들은 그려져 있지 않고 불가리아의 역대 왕과 귀족 등 역사적인 인물들만 그려져 있다.

 

 

 

 

 

 

 

 

 

 

 아래 10여점의 사진은 某카페에서 업어온 것입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 전의 문 오른쪽 벽에는 이 지역을 관할하던 대주교의 장례식이 그려져 있다.

 


 

그림 바로 밑에 있는 것은 그가 묻혀 있는 관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의 벽과 천장에 이런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

바로 테오판 소케로브(Teofan Sokerov)가 그려 1985년 기증한 것이다.

 

 

 

 

 

 

 

 

 

 

 

 

 

 

오른쪽 벽의 앞에는 벽화들을 그린 테오판 소케로브(Teofan Sokerov) 자신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왼쪽)

 

 

 

나중에 세월 지나면 유명세 톡톡히 타게 생겼습디다.

 

 

 

 

 

 

 

 

저 밑에는 공연장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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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내려가는 길입니다.

 

 

 

 

 

 

 

 

 

귀에 빨간 거 붙어 있는 거, 인식표입니다.

주인은 없지만 관리가 되고 있단 거지요.

 

 

 

 

 

 

 

 

 

 

 

 

 

 

 

 

 

 

벨리코터르노보("대(大)터르노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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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벨리코터르노보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68,197명(2011년 2월 기준), 높이는 325m이다. 얀트라 강과 접하며 과거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기 때문에 관광 자원이 많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 가운데 한 곳이며 기원전 3000년부터 사람이 살았다.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불가리아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가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발전했고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가 된 이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 여겨졌다. 14세기 비잔틴 제국이 쇠퇴하면서부터 발칸 반도와 슬라브계 정교회의 중심지로 여겨졌으며 한때는 제3의 로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년 동안 마을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었지만 1393년 오스만 제국이 3개월 동안에 걸친 포위를 뚫고 요새를 함락하면서 마을의 발전도 멈추게 된다. 또한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하면서 불가리아에 있던 마을과 교회, 수도원 대부분이 화재로 인해 사라졌다. 1598년과 1686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19세기에 일어난 불가리아 민족 부흥 운동은 불가리아 민족 의식의 고취와 강력한 저항 운동으로 이어졌다. 불가리아인의 독립 국가 건설과 불가리아 정교회 재건에 대한 열망은 1875년과 1876년 봉기로 이어졌으며 특히 1876년 4월 23일에 일어난 4월 봉기는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 지배 종식과 러시아-튀르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1877년 7월 7일 러시아의 장군 요시프 블라디미로비치 구르코가 터르노보를 해방시켰고 480년 동안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된다. 1878년 베를린 조약에 따라 승인된 불가리아 공국은 다늅, 강과 발칸산맥에 걸쳐 있는 터르노보를 수도로 삼았다.  1879년 4월 17일 최초의 불가리아 의회가 이 곳에서 소집되었으며 불가리아 최초의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은 불가리아의 수도를 소피아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피아는 지금도 불가리아의 수도로 남아 있다. 1908년 10월 5일 페르디난드 1세가 이 곳에서 불가리아의 완전 독립을 선언했다.

 

 

 

성 바오로성당

 

성 베드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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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40m에 이르는 꾸불꾸불한 얀트라 강 협곡에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는 능선에 있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가옥들은 마치 한 채씩 쌓아놓은 것같이 보인다. 이 강으로 인해 마을은 스베타고라· 차레베츠· 트라페지차라고 하는 3개의 돌출지대로 구분된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396)의 수도였던 투르노보는 화려했으나 투르크의 침략과 1911년의 대지진으로 대부분의 유물이 파괴되었다. 트라페지차 구릉과 차레베츠 구릉에서는 중세시대 마을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불가리아차르족의 본거지인 차레베츠 구릉에는 두꺼운 성벽과 방어물이 둘러쳐져 있어 도개교(跳開橋)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이 도시의 대부분 지역이 불가리아의 역사·문화 사적지로 복구되어 고대의 건축물과 마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선사시대 정착지였던 투르노보는 후에 로마의 요새 부지가 되었는데, 아마도 그곳은 카레백 구릉이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1185년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성립을 투르노보에서 선언했으며 투르크의 침략을 받아 불탔던 1393년까지 제국의 수도였다. 오스만 제국 때에는 교육·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교역 중심지로 번창했고 또한 불가리아 저항세력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불가리아의 예술품·공예품 및 과학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특이한 요소들이 투르노보에서 활발히 태동되었다. 14세기에 세워진 성베드로 교회와 성바오로 교회가 있다. 이 지역에 있는 11개의 수도원 중 불가리아 최후의 주교가 폭넓은 저술활동을 펼쳤던 성삼위일체 수도원과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현재의 벨리코투르노보에는 식료품·음료수·소비재·가구·섬유 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경공업 기지가 있다. 이곳은 아직도 공예품 중심지이다. 북동쪽에는 소피아와 국내선 공항이 있는 바르나로 갈라지는 철도 교차지점이 있으며 시장출하용 야채와 과일의 주요 재배 중심지인 고르나오랴호비차가 있다. 인구 67,644(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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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건너편에 있는 산봉우리에서 먹었는데, 전통마을이라고 합디다. 하회마을 같은.

실제로 하회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었답니다.

 

 

 

 

 

 

 

 

 

 

 

 

 

 

 

음식 이름은 모르겠고…,

저 그릇에 담긴 건  옥돔 같은 생선 스프입니다. 살만 발라놓았죠.

그리고 닭고기? 돼지고기? …,

그나저나 그릇이 독특하게 생겼지요?

- 배 모양입니다. 수저는 노고. 받침대는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