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4. 17:39ㆍ음악/음악 이야기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때 라틴어 공부를 시키려고 마을의 작은 성당 부속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를 기숙사에서 끌어내어 본인이 직접 가르치려고 했다.
인내하면서, 꼼꼼하고, 지적인 방법으로, 내게 언어와 문학, 역사와 지리,
심지어 음악까지 가르치려고 애쓴 가엾은 아버지였다.
매일 호레이스와 베르길리우스 같은 고대 시인들의 시를 암송하라는 숙제는 너무 어려웠다.
베르길리우스는 내 열정을 건드리며 내 마음에 처음으로 길을 터주고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내가 아버지께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제4부를 설명하면서
얼마나 번번히, 벅찬 가슴에 목소리를 떨며 어쩔줄 몰라했는지!
- “이제 여왕은 사랑의 고통으로 스러진다.”-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그런 임무를 떠맡으려 했을까. 그럴 수 있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
예술가들 중에 괴짜가 많다지만, 그중에서도 베를리오즈는 꽤 독특한 인물에 꼽힌다. 극단적으로 예민한 감수성과 상상력, 대담하고 격정적인 성격은 그의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한 축복이자 그의 삶을 고단하게 만든 독이었다. 그의 엉뚱하거나 때로는 과격하거나, 독특하거나 섬세한 감정과 행동이 드러나는 삶의 순간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베를리오즈라는 평범하지만은 않은 한 사람, 거장이라 불리는 한 작곡가의 삶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거기에 그 삶의 순간들이 녹아든 자리에서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면서, 우리는 그의 삶도 그의 음악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저자 : 엑토르 베를리오즈
저자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18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유럽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 고전주의 음악을 넘어서 낭만주의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꼽힌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편협한 민족주의 음악을 뛰어넘어 현대음악이 국제성을 띠고 풍부해지는 토대를 쌓고 다리를 놓았다.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청년예술가 최고의 영예인 <로마 대상>을 수상했다. 당대 연극계의 최고 ‘스타’에게 몇 년 동안 절망적으로 구해한 끝에 결혼했다. 거장 리스트, 멘델스존, 파가니니와 민족과 나이를 뛰어넘은 깊은 우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전설도 남겼다. 그는 삶과 사람과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함을 끝까지 잃지 않으려는 숭고한 싸움꾼으로 살았다. 점잔을 떨지 않고, 자기 국민의 소시민 취향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베토벤을 일찍 알아보고 음악과 예술에 국경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작품으로는 「환상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 「로미오와 줄리엣」 등 교향곡과 오페라를 비롯해 많은 걸작을 남겼다. 평론가로서 음악의 기초적 이해를 돕기 위한 『관현악단의 저녁』, 『기악편성』, 『노래 섭렵』, 『베토벤 연구』 등 중요한 저술을 남긴 그는 역사상 보기 드물게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천재였다. 186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회상」과 「음악여행」을 담은 이 책은 그의 주옥같은 창작과 저술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유산이다. 음악계의 귀재들과 극장과 연주 환경 등 전해지는 기록이 많지 않은 음악계에서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극히 소중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솔한 고백으로 넘치는 이 책은 화가 반 고흐의 「편지」와 함께 매력 넘치는 한 인간의 내면을 놀랍도록 눈부시게 그려낸 전기문학 최고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역자 : 어은정
역자 어은정은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와 템플대학교에서 수학. 일리노이대학교 성악 연주 및 문헌 박사. 몽세라 카발레 등을 비롯한 유럽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했다. 오페라 「코시 판 투테」, 「사랑의 묘약」 등에서 프리마돈나로 출연했고 다수의 오페라 갈라콘서트 공연에 참여했다. 스티븐 A. 테일러의 오페라 「실낙원」의 세계 초연에서 프리마돈나를 맡았다. 그밖에 풍크타지아, 스펙트라 레코딩 사에서 연가곡집 등을 내놓았다. 코리아 필하모니와 협연하는 등 독창회와 연주회를 가졌다. 음악예술학회 학술분과부위원장, 현대앙상블 ‘필Phil’ 단원으로 숙명여대, 전남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역자 : 홍문우
역자 홍문우는 프랑스 파리1대학교 대학원(미학)을 졸업했다.
1. 문학과 낭만과 혁명과 음악의 탄생 - 베를리오즈의 회상
어린 시절, 음악에 대한 첫 기억 … 11
베르길리우스의 시를 배우며 … 14
음악은 사랑과 함께 찾아왔다. … 23
르쥐외르 선생님의 작곡 교실 … 42
좋은 가수는 드물다. 그러나 좋은 지휘자는 더더욱 드물다. … 51
글루크의 악보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 55
시인, 작곡가는 지옥에나 떨어질 존재 … 59
파리의 다락방 그리고 퐁뇌프 난간에 걸터앉아 … 64
로시니 패거리를 극장과 함께 날려버릴 수 있을까? … 78
베버의 「마탄의 사수」와 「오베론」 … 92
모차르트에 대한 오해 … 103
셰익스피어, 오필리아, 비탄의 엘레지. … 105
오르페우스의 죽음 … 115
지평선에 또 다른 거인 베토벤이 등장했다. … 119
그런데 베토벤 씨가 대체 누군데 그래? … 131
삶의 가장 잔인한 병 … 140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다. 「환상교향곡」을 쓰다. … 148
7월 혁명과 「전사의 찬가」 … 156
그 해 가을의 칸타타 … 164
환상교향곡 공연. 리스트를 만나다. … 172
2. 이탈리아 음악여행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 … 181
엉뚱한 사건 -복수를 위한 푸가와 반전 … 185
피렌체에서 만난 벨리니의 오페라 … 197
방랑 … 201
비에 젖어 산골을 헤매며 찾은 자유 … 203
수비아코 … 205
시골 청년이 부르는 소야곡 … 207
이웃 작은 마을에서 수집한 음악 … 209
정든 친구 크리스피노 … 211
로마에서 지은 곡 … 213
나폴리 … 216
시인 타소와 인어의 전설을 안고 있는 바다와 섬에서 … 217
밀라노 오페라 극장 … 222
대중의 사랑과 아름다운 목소리 … 224
3. 사랑은 음악이 되고, 음악은 사랑을 만들고
마침내 그녀는 나에게 왔다 … 231
파가니니를 위하여 … 239
4. 독일 음악여행
오귀스트 모렐에게
브뤼셀, 마인츠, 프랑크푸르트 - 여행의 시작과 베토벤의 「피델리오」 … 255
나르시스 지라르에게
슈투트가르트, 헤힝겐 -린드파인트너와 중세의 성 … 271
프란츠 리스트에게
만하임, 바이마르 -시인 실러와 청중들의 앙코르 … 289
슈테펜 헬러에게
라이프치히 - 멘델스존을 만나다. … 304
에르네스트에게
드레스덴 -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리엔치」 … 321
하인리히 하이네에게
브라운슈바이크, 함부르크 -관현악단과의 아름답고 행복한 연주 … 336
아브네크 씨께
베를린 - 글루크의 「아르미드」와 마이어베어의 「위그노」 … 352
데마레에게
베를린 - 「레퀴엠」과 「로미오와 줄리엣」 … 369
오스본에게
하노버, 다름슈타트
- 예술가와 부르주아에 대하여 / 안톤 보러를 만나다. … 388
베를리오즈 작품 목록 … 405
옮긴이의 말 … 409
베를리오즈는 24세 때,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영욱 극단의 셰익스피어극 상연을 보고 프리마 돈나인 스미드슨에게 반했으나 실연당합니다.(뒷 부분 해설 참조) 격렬한 열정과 끓어 오르는 사모의 정을 동기로 참신하게 묘사한 걸작이 바로 "환상교향곡"입니다.
1 악장 : 꿈, 정열
한 저명한 작가가, "정열의 파도"라는 마음의 병에 걸린 한 젊은 음악가가, 맘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의 매력을 다 갖춘 여성을 처음 만나, 무서운 사랑에 빠진다고 작자는 상상한다. 왠지 사랑하는 여자의 이미지가 하나의 악상과 결합되어 그의 마음에 들어온다. 그는 그 악상의 정열적인, 그러나 기품이 있고 내성적인 성격이 그녀의 성격과 같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 선율과 그녀의 모습이 이중의 고정개념(악상)으로서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닌다. 이 교향곡의 각 악장에 , 첫 알레그로의 개시의 선율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울한 몽상상태에서 , 착란한 정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가, 분노와 질투, 마음의 평안, 눈물, 종교적인 안위가 섞여 제 1악장의 소재가 되어 있다.
2 악장 : 무도회
그 음악가는 자기가 인생의 가장 복잡한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축제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 들기도 하고 자연미의 평안한 사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을에서도 들에서도 어디를 가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괴롭힌다.
3 악장 : 들 풍경
시골에서의 어느날 저녁, 멀리서 두 목동이 부는 목적 소리가 들린다. 이 목가적 이중주, 주위 환경 미풍으로 조용히 살랑이는 나무들의 속삭임, 그가 최근에 발견한 희망의 싹, 이러한 모든 것이 결부되어, 그의 마음을 이상하게 평온하게 하고, 그의 생각을 밝게 물들인다. 그는 스스로의 고독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이젠 고독을 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 그러나 만약 그녀가 모른다고 배신한다면 - 이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기분, 어두운 예감으로 어지럽혀지는 이러한 행복의 사념이, 아다지오 악장의 주제가 되어있다. 마지막에 목동의 한 사람이 다시 목적을 부는데 상대는 여기에 대답하지 않는다....멀리서 천둥소 리....고독.....정적.....
4 악장 : 단두대로의 행진
그의 사랑이 거절되었음을 확실히 안 작곡가는 아편으로 음독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치사량에 이르지 못하여, 그는 무서운 환상을 수반한 깊은 잠에 떨어진다. 그는 애인을 죽이고, 사형을 선고 받고, 단두대에 연행되어 자신의 처형을 보는 꿈을 꾼다. 행렬을 , 때로는 음울하고 거칠며, 때로는 당당하고 밝은 행진곡의 소리에 맞추어 행진하고, 무거운 발걸음이 굉장한 시끄러움을 타고 계속된다. 행진 끝에 고정악상을 나타내는 4개의 소절이 사랑의 마지막 추억처럼 다시 나타나는데 오케스트라의 결정적인 일격으로 지워져 버리고 만다.
5 악장 : 마녀들의 밤의 향연의 꿈
그는 그를 매장하기 위해서 모인 무서운 유령, 마술사, 마녀, 그밖에 갖가지 요괴들의 일단이 한 가운데에 있는 그를 본다. 야릇한 소리, 신음, 오싹하는 웃음,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다른 고함소리가 호응하는 듯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선율이 다시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 고귀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것은 이제 야비한 선율에 불고하고, 보잘 것 없는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녀가 이 밤의 향연에 찾아온다. 그녀가 도착하자 환희하는 요괴들의 떠들음....그녀는 악마적인 밤의 향연에 낀다. ... 장례의 종은 "분노의 눈"의 익살광대의 풍자다. 밤의 향연의 윤무. 윤무는 "분노의 눈"과 결합한다.
위의 장황한 설명은 다시 개작되어 전체 악장을 아편의 작용에 의해 생긴 괴기한 환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그 대요를 적어 보면 [병적인 감수성과 격렬한 상상력을 지닌 젊은 예술가가 사랑의 번민으로 절망의 구렁에서 아편 자살을 꾀한다. 그러나 복용량이 적어서 죽음에 이르지 못하고 기괴한 일련의 몽환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은 하나의 선율로서 나타난다.] 라는 이상 성격적인 것이다.
위의 해설에 대해서 너무 강박적으로 얽매이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곡가가 감상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곡에 대한 심상을 불어넣기 위한 도구로써 환상교향곡에 대한 감정을 북돋워주는 역할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휘자들은 자신이 의도한 환상교향곡의 충분한 이미지를 감상자에 충실하게 전달하면 된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느낌과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항상 동일한 모습의 환상을 바라는 것은 그렇게 마땅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특히 곡의 연주라는 재창조의 의미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작곡과 초연
베를리오즈는 22세 때 "로마 대상"의 예선에서 실격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는 예선에 통과했으나 과제곡에서 실패 절망한 나머지 병상에 누워 버렸다. 그러나 그 해 9월, 오데옹좌에서 영국 극단의 세익스피어 극 상연을 보고 오필리아나 줄리에트로 분장하는 주연 여배우인 스미드슨에 대해 열광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세상에 떠들썩한 대여우로서 가난한 음악학생 따위를 상대할 리가 없고 그후 편지로 결혼을 간청했으나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았다. 이 시기의 그의 정열적, 몽환적인 경향이 격렬한 짝사랑을 통해서 독특한 작품을 쓰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단기간에 완성하였는데 제3악장 "들녘의 정경"을 작곡할 때는 상당히 고심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이 작곡된 해인 1830년 드디어 대망의 "로마 대상"을 얻었으나 스미드슨에의 사랑은 한풀 꺾여서 로마 유학 전에 피아니스트인 모크와 약혼했으며 그 해 12월에 "환상교향곡"이 초연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모크는 딴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또다시 스미드슨에의 사랑이 재연해서 3년 후 주위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스미드슨과 결혼하게 됐으나 이미 인기가 하락한 여우와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다 한다.
초연은 1830년 12월 5일 파리 음악원의 연주회에서 아브넥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이 곡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에게 1845년의 스코어 출판때 헌정되었다.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베를리오즈의 초기 작품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은 바로 "장엄미사"이다. 몇 번의 연주 후에 사라진 뒤에 20C에 그 악보가 우연히 발견되어서 가디너에 의해 20C 초연을 가진 작품이다. 이 곡에 쓰인 모든 악상들이 베를리오즈의 여러 작품들에게서 나타내게 된다. 바로 환상교향곡의 3악장도 이 장엄미사의 한 구절이 늘어난 형태이다. 일단 초기의 작품은 합창곡으로 출발한 뒤에 환상교향곡으로 새로운 그만의 음악관을 세운 뒤에 "레퀴엠" 이나 여러 오페라를 통해서 점차 그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환상교향곡을 통해서는 그의 초기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일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마땅한 음악교육도 받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런 점이 관현악적인 스케치에 있어서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모자라는 만큼 베를리오즈는 의사의 길을 포기 더욱 열심히 음악에 심취해서 열정을 쏟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가 된 베를리오즈는 이러한 부분들로 인해서 자신만의 체취가 너무 강하게 표현되는 음악 때문에 타인들의 시샘이나 공격이 잦았었다. 이것은 20C까지도 의견이 분분할 정도이다. 베를리오즈 음악은 베토벤이나 그 이전 작곡가들의 토대 위에서 발전된 것이기도 하지만 이 고집스럽게 유별난 분위가 제일 특징적인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20C의 스트라빈스키의 " 봄의 제전 " 과 맞먹는 충격을 그 당시 사회에 끼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트라빈스키는 베를리오즈를 그렇게 훌륭한 관현악법을 구사한 작곡가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하고 속은 빈 상태의 작곡가로 생각하고 만다.
그가 존경해왔던 작곡가는 바로 베토벤이다. 그 당시 베토벤은 혁명이요, 새로운 변혁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은 베토벤을 고전과 낭만주의 사이로 분류하지만 베토벤 당시의 베토벤의 위치는 바로 새롭게 어떠한 개혁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었으므로 베를리오즈의 성향에 아주 적합한 우상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프랑스의 그 당시 교향곡은 하이든에 길들여져 있었으므로 교향곡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도중에 베토벤의 혁명정신이 파급되자 여기저기서 교향곡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베를리오즈 이전의 프랑스에서 이렇다 할만한 교향곡 작곡자가 없었던 이유는 프랑스의 토대가 이렇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파격적이며 당돌하며 항상 새롭게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는 베를리오즈가 교향곡에 눈을 돌렸던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될 것이다.
베를리오즈는 <교향곡>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을 1830년부터 40년까지의 10년간, 즉 그가 26세부터 36세까지의 사이에 전부 5곡 작곡했다 ("환상교향곡"의 속편인 "레리오"를 교향곡 속에 넣는다면). 이 5곡의 그의 교향곡은 어느 것이나 <관현악에의한 소나타>라는 형식으로서 독일에서는 전통적인 교향곡 형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베를리오즈에게 있어 교향곡은 단지 주제의 대비나 발전의 구성적인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기악곡, 즉 <절대음악>이라는 것은 아니고 어떤 애기나 정경을 중심으로 해서 정리된 기악의 극, 또는 풍경화였다.
그의 교향곡이 <표제교향곡(프로그램 심포니)>으로 불리고 그가 19세기 낭만파의 표제음악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따라서 악장의 구성도 특히 4악장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또 편성도 자유롭게 확대시켜 <이탈리아 해럴드>와 같이 비올라가 독주부를 담당한 것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와 같이 독창이나 합창이 가담된 것이나, 또는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과 같이 브라스 밴드에 의한 군악대 편성의 곡등도 모두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형태의 교향곡을 베를리오즈가 쓴 것은 그가 지극히 독창적인 작곡가였기 때문이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 프랑스에선 독일처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고전파 교향곡의 형식이 아직 뿌리를 뻗지 않았다는 것도 들 수 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단지 베를리오즈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교향곡사상 돋보이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작곡된 1830년에 멘델스존은 이미 5곡의 교향곡을 쓰고 있었으나 슈만은 아직 교향곡을 발표하지 않고 브라암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시대는 이미 낭만주의로 들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고전적인 기초를 파괴하지 못한 낭만성이었다. 거기에 갑자기 "환상 교향곡"과 같은 자극히 독창적인 태도로서 음악에 표제성을 도입시킨 작품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반응은 대단한 것이었다. 베를리오즈의 성격이 너무나도 다감하고 병적인 몽상과 육체를 불태울 만큼 정열의 소유자여서 그 때문에 형식에 구속된 고전적인 교향곡을 쓰기란 도저히 되지 않았고 멘델스존과 같은 객관적인 표제가 아닌, 대담하다기 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강한 충동에서 음악을 표제에 종속시켜 자서전적 내용을 만들었던 것이다.
구성이나 화성, 그리고 선율에도 과거의 형태와는 다른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의 위치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리스트나 바그너에게 그의 영향을 주어 자유로운 낭만주의의 꽃을 피우게 한 도화선 역할을 철저하게 한 것은 빼놓을 수 없을 일이다. 수법상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고정 악상 또는 고정 관념을 사용한 점이다. 이것은 이 작품을 작곡한 동기가 되었던 작곡자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성을 일정한 선율로 나타내고 각 악장마다 그 정경에 어울리게 끔 주로 리듬과 악기만을 변화시켜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후일 바그너에게 라이트모티프를, 리스트를 거쳐 프랑크에게 순환 형식을 사용케 한 발단이 되었다.
또, 관현악법은, 기본으로서는 베토벤 시대와 같은 2관 편성이나 표현의 요청 때문에 기형적, 변칙적인 방법을 무수히 쓰고 있다, 이 [환상 교향곡]에는 목관만 해도 파곳을 4, 금관의 튜바 2, 3악장에선 팀파니 주자를 4명, 또 그 당시로선 진기하게도 하아프를 2대나 쓰게 했고 이상한 음형을 추구한 나머지 Eb조의 클라니넷을 등장시켰고 종(또는 튜블러 벨을 대용)으로 울리는가 하면 현을 활의 등쪽으로 치는 콜 레뇨(col legno)등, 당시로서는 퍽 기상 천외의 수단을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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