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13. 7. 11. 09:11음악/음악 이야기

  

 

라벨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Maurice Joseph Ravel, 1875~1937

 

 

 

 

  

라벨은 자신이 쓴 피아노곡들을 상당수 오케스트라곡으로 편곡하여 원곡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1899년에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도 그 중의 하나로서, 그 우아하고 기품있는 선율미는 라벨의 음악이라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매력에 넘쳐 있다. 이 피아노곡은 원래 라벨이 에드몽 드 폴리냑(Edmondde Pollignac) 공작 부인을 위해서 작곡되어 그녀에게 헌정한 곡이다. 전체 연주시간 약6분 정도의 짤막한 소품에 불과하지만, 원곡의 아름다움과 기품은 각별하다.이 피아노곡은 1902년 4월에 국민음악협의회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10년에 라벨 스스로가 편곡한 관현악용 파반느는 12월 25일 성탄절에 초연되어 피아노곡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라벨 자신은 이 음악에 매우 엄격한 비판을 가하여 여러 가지 결점을 지적해 놓고 있다. 

1889년에 우선 피아노곡으로 작곡되었다. 라벨 자신에 의한 이 곡의 비평은 매우 엄하다. 「나는 결점을 잘 알고 있다. 너무도 명백한 샤브리에의 영향과 매우 빈약한 형식」. 젊은 시절의 라벨에게는 샤브리에에게 치우친 한 시기가 있었다. 이 곡을 샤브리에의 《목가(牧歌)》가 밑받침이 된 작품이라고 보는 비평가도 적지 않다. 그리고 사실 이 곡의 변주 방법에는 그렇게 새로운 맛은 없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했던 화성이 울리는 순간이 있으며, 라벨이 나중에 부그럽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선율은 감미로운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라벨. 《로만체》의 베토벤, 《트로이메라이》의 슈만, 《월광(月光)》의 드뷔시, 엄한 비평을 하면서도 라벨 또한 1910년에 일부러 작은 관현악을 위한 편곡을 했던 것이다. 애착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제명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데, 특별히 문학적인 프로그램은 없고 운(韻)이 있는 어조(語調)가 좋았던 것이 최대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딘지 곡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듯한 이론이다. 원(原) 피아노곡을 쓸 무렵, 라벨은 에드몽 드 폴리냑 공작부인(Princesse Edmond de Polignac)의 살롱에 자주 나와 공작부인의 요구로 이 곡을 썼다. 따라서 원 피아노곡은 공작부인에게 헌정되었다. 피아노곡의 초연은 1902년 4월 5일, 국민음악협회의 음악회(연주회장 살 플레이엘)에서 리카르도 빈녜스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작은 관현악은 1910년 12월 25일, 아셀만 연주회(Concertos Hasselmans)에서, 지휘는 카젤라(Alfredo Casella)가 맡았다. 자필악보는 발견되지 않았다. 피아노 악보는 1900년, 작은 관현악판은 1910년 모두 드메(E. Demets)에서 출판되었으나, 나중에는 모두 에슁(Eschig)에서 간행되었다. 

“라벨이 서민인 자기 신분과는 다른 왕녀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하나의 플라토닉 러브일 것이다. 그는 그림 속 왕녀의 기품있는 얼굴이며 몸의 아름다움에서 남몰래 새로운 짝사랑의 대상을 발견했다.”

17세기의 이름 높은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끔찍이도 사랑한 모리스 라벨(1875~ 1937)은 흥겨운 관현악곡 <볼레로>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작곡가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미술에도 역시 소양이 깊어 시적이고도 회화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그중 하나다. 라벨은 천재답게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24세 때 이 피아노곡을 썼다.

한편, 라벨은 62세에 죽기까지 이렇다 할 애인도 없이 오직 일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설령 애인이 있었다면 오직 홀어머니뿐이었고 인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사춘기에 본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을 음악으로 즐겨 그렸다. 루브르 미술관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대리석 조각인 <밀로의 비너스> 외에 많은 여인상을 그린 미술품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라벨이 유달리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홀린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밸라스케스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128×100cm, 1655년경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은 프랑스의 궁정화가 다비드의 작품보다 더 뛰어난 솜씨로 그지없이 우아하고도 신비롭게 그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색채와 구도에 있어 음악적인 요소가 푸짐해 라벨은 이 그림에서 얻은 영감을 피아노곡으로 꾸밀 수 있었다. 스페인에는 16세기의 일 그레코, 19세기의 고야, 그리고 20세기의 피카소· 달리·미로 등 위대한 화가들이 많지만 그는 유달리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었다.

그리스 신화에는 어떤 조각가가 스스로 만든 애인상에 반하여 그 조각을 애인 겸 아내로 삼고 일생 살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같이 작곡가 라벨에게는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이 고스란히 연애의 대상이 되었다. 벨라스케스가 온갖 정성을 쏟아서 그린,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의 모델이 된 바로 그 왕녀는 벌써 옛날에 세상을 떠났건만, 라벨은 그림 속의 왕녀를 영원히 살아 있는 인물로 느꼈다.

철학자 플라톤은 자기보다 2백여년 전에 태어난 BC 6세기의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를 짝사랑하여 일생동안 독신으로 살며 이 옛 여류 시인과 플라토닉 러브를 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라벨이, 서민인 자기 신분과는 다른 왕녀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하나의 플라토닉 러브일 것이다. 그는 그림 속 왕녀의 기품있는 얼굴이며 몸의 아름다움에서 남몰래 새로운 짝사랑의 대상을 발견했다.

라벨은 24세 때 피아노곡으로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11년 뒤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이 편곡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일류 오케스트라들이 즐겨 연주하는가 하면 디스크도 굉장히 많이 나와 있다. 이젠 작곡자 라벨마저 저승으로 갔기 때문에 이 곡은 <죽은 라벨을 위한 파반느>로 둔갑했다고도 볼 수 있다.

라벨은 이미 학창시절에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와 미국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을 사랑하여 오리지널인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미술적인 여운과 함께 시적인 표현이 풍부한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그는 30대 무렵인 20세기 초엽 프랑스 화가 보나르와 매우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아틀리에를 자주 찾았다. 이 때문인지 편곡에는 오리지널 피아노곡보다 한층 풍부해진 미술적 색채가 넘쳐 흐른다.
 

한편, 파반느란 것은 느린 2박자의 춤곡으로, 16세기에 꽃피었다가 18세기 이후에 거의 잊혔다가 라벨이 <왕녀 마가레타의 초상>을 음악으로 그리면서 되 살아났다. 이 곡은 멜랑콜리하지 않게 노스탤지어를 자아내는데다 섬세한 화음이 인상적이다. 플루트 2개, 오보에 1개, 클라리넷 2개, 바순 2개, 호른 2개, 하프 1개에다가 약음기를 낀 현악 5부의 편성으로 되어 있는데 벨라스케스 그림의 색채보다 더 강렬한 초상을 그려준다.

 

<월간미술:음악비평 김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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