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핀의 혁명을 테마로 한 그림 중에서 <고해를 거절하다>는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작품이다.
그러나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이 작품은 분명 불경스런 것이다.
젊은 혁명가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앉아있다.
그에게 영혼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고해할 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혁명가는 고해와 축복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혁명가에게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그는 신부에게서 물러서려 하지만,
동시에 신부의 손에 들린 십자가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레핀은 지하 잡지《인민의 의지》에 실린 니콜라이 민스키의 詩 <마지막 고해>를 읽고
감동을 받아 <고해를 거절하다>의 작업에 착수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혁명가와,
고해를 듣기 위해 그를 방문한 신부의 대화내용으로 하는, 민스키의 시는 다음과 같다.
신이여, 용서하소서, 가난한 자들과 배고픈 자들을,
내가 마치 형제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신이여, 용서하소서, 영원한 선(善)을,
내가 실현 불가능한 동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
제가 여기에는 아주 그럴 듯한 음악을 깔고 싶었어여. 분위기에 딱 맞는......
아 근데, 여엉 마땅한 곡이 안 떠오르는 거예여.
레퀴엠 같은 장중한 곡이나 백학 같은 비장한 음악도 생각해봤는데여,
그건 아닌 것 같구여, 그렇다고 창창창창 나가는 불안한 곡도 안 어울리는 것 같구여....
누가 좀 갈쳐주고 가세여.
레핀의 그림을 보다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어여.
아니, 레핀의 그림 한 장 한 장마다, 마치 대작영화가 한 편씩의 소재가 되는 것 같아여.
들리지 않으세여? 보이지 않으세여?
사유 깊은 러시아의 장중한 음악소리, 찰칵찰칵하며 넘어가는 슬라이드 소리, 침통한 관객의 신음소리,
소설가가 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써내려가는 모습.....등등등.
한마디로 레핀이 그린 그림들은 미술, 음악, 연극, 문학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여.
지난번에 얘기 했던 「명화(名畵) 고르기」에다가 지금 이 얘기를 더 추가해야겠어여.
'마치 종합예술인 것처럼 여겨지는 그림은 명화다', - 이렇게여.
'대화가 통하는 그림은 명화다' 라는 말과 비슷하긴 한데, 뉘앙스가 좀 다르져.
이런 극적인 상황 연출 그림은 다른 화가들도 많이 그리긴 그렸지여.
그러나 이 레핀의 능력은 너무도 탁월해여. "비교불가!"
군중을 그린 그림이나 행진하는 그림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각기 다른 표정을 보면, 와 정말!
그런데 레핀은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여?
뭐, 여러가지 이유나 영향받은 것들이 있겠져.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은 안해보셨에여?
레핀이 프랑스 갔을때 그렸다던 그림, 《바다 왕국의 사드코》와 연관지어보면 어떨까여?
이거 오페라래여. 물론 레핀이 오페라를 보고나서 그렸겠져.
렘브란트 냄새가 진동하져?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거기까지만 주목하는 것 같아여.
레핀이 여기서 남다른 영감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은 안하는 것 같아여.
혹시나 레핀이 거기서 '종합예술(?)' 같은 걸 떠올린 것은 아닐까여?
그렇게 생각하고 '사드코' 그림을 한번 보세여. 미술, 음악, 문학, 연극을 다 버무린 것 같지 않아여?
오페라 라는 게 원래 종합예술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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