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러시아! (레핀, 유럽에서 돌아와서)

2011. 2. 26. 11:47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예술이란 무엇인가?"

"왜 예술인가?"

 

라는 물음의 진정성은 다른 나라에서보다 러시아에서 더욱 진솔하고 간결하게 체험할 수 있다.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러시아보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정서적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개인의 도덕과 의식에 관련된 보다 철학적인 전망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음악가, 화가들이 매일매일 삶에서 그러한 문제에 직면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사라져라!

 

레핀은 예술보다 높은 이상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바쳐야 했다.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의미여야 한다.

이제 레핀의 주된 관심사는 러시아적 가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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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직자 (1877년) 캔버스에 유채(124 x 96 ) 트레치아코프 미술관(모스크바)

 

 

 

레핀이 스타일상의 변화가 드러난 첫 번째의 작품이 바로 부주교의 기념비적 초상화 <성직자>(1877)이다.

이 그림은 일련의 인상주의적인 작품들 뒤에 그려진 것이다.

레핀의 그림에서 성직자는 러시아 국민의 힘의 원천으로서 개성을 부여받는다.

이제 예술은 더 이상 지적으로 고양된 행위나 사회적 각성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성직자>에서 관람객은 슬라브인의 원초적인 직면한다.

 

레핀은 에르미타쥐 미술관에서 자주 렘브란트의 그림을 모사했다.

렘브란트의 스타일이 될 수 있는 한 어둡게 그리는 것이었다면,

이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한 손은 배에 올려놓고 한 손은 홀을 들고 있는 자세,

무거운 입체감과 두껍게 칠한 물감, 구도 등은 레핀이 렘브란트의 레퍼토리에서 벗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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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녀 소피아 (1879년) 캔버스 유채, 201.8 x 145.3 트레치야코프 미술관(모스크바)

                     - 노보제비치 수도원에 감금된 지 1년 된 황녀 소피아 엘렉세예브나.

                        1698년 그녀의 친위병을 처형하고 추종자들을 고문하고 있을 때. -

 

 

 

황녀  소피아가 팔짱을 낀 채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격렬한 성격의 그녀는 분노에 가득차 있다.

그녀는 폭발 직전이다. 지지자들에게 더 이상 무엇을 해줄 수가 없다.

레핀은 이 극적인 사건에서 강렬한 장면을 걸러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 화가들이 역사를 대하는 방식이다.

소피아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운명적 삶을 살며 인텔리들을 매료시켰던 팜므파탈의 러시아적 버전이었다.

 

레핀은 사실성을 깊이 연구함으로써 일종의 역사적 사실주의를 구현했다.

이는 역사에 대한 단순한 묘사와는 다른 것이다.

<황녀 소피아>에 나타나 역사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기존의 역사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레핀은 러시아를 국제 규격의 틀에 맞춘 표트르의 개혁은 억압적인 관료제도만 발생시켰을 뿐이며,

러시아적인 모든 것을 옹호한 소피아는 영웅적이고 숭고하다는 메세지를 전달한다.

 

'러시아적인 것'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표상은 바로 '민중'이었다.

러시아에서 민중을 성공적으로 묘사한 화가는 일종의 성배(聖杯)를 찾는 것과 같았다.

1870년대 중반 러시아의 인민주의자들은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레핀은 인민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제기하는 이슈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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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1880~1883) / 캔버스에 유채 (175 x 280) / 트레치아코프 미술관

 

 

 

군중이나 행진의 묘사에 있어 레핀은 동시대 예술가들 중에서 대적할 수 없는 최고의 능력을 지닌 화가였다.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에서 군중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시선이 일정한 인물들을 포착하기 시작할 때 각각의 인물들은 글자 그대로 일상에서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이 생겨난다.

등장 인물 중에서 레핀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인물은 절름발이 꼽추 소년이다.

 

이 그림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위대한 러시아와 러시아 민중의 모습을 포착하려는 모든 시도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의미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것은 모든 작가, 음악가, 화가 등 동시대 러시아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목표에 도달한 것이었고, 또한 레핀의 창작 활동의 정점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 회화의 인기있는 주제인 십자가 행렬을 그린 것이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관람객 앞을 지나간다.

행렬의 맨 앞에는 황금성체가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두 여인이 이콘함을 들고 간다.

그들 뒤로 도도한 부인이 들고 있는 화려한 이콘이 나온다.

관람객은 흙먼지와 함께 옆으로 물러서게 된다.

군중의 대부분은 상인, 소시민, 부농, 지주 등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경건을 가장한 오만 비슷한 것이 나타나 있다.

 

 

 

 

 

 

 

 

 

 

한마디씩 멘트를 붙이자면

 

 

(그림 1)

 

아직「레핀」책을 반밖에 못봤습니다만, 레핀이 걸어간 행로를 보면

황실 아카데미 시절 - 유럽여행시절 - 이동파 시절 - 독자적 활동 시절로 나눠집니다.

지금의 이 그림은 유럽 연수를 마치고, 러시아에 돌아와서 이동파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린 그림입니다.

유럽에 있는 동안 렘브란트나 인상파 쪽으로 경도됐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고,

자신과 러시아의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나, 변한 거 없당께!"  "역시 우리 러시아가 최고랑께!"

 

 

 

(그림 2)

 

황녀 <소피아 엘렉세예브나>에 대한 레핀의 해석은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기존의 역사 해석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역사의 양대 축은 <표트르 대제>와 <레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두 사람 다 러시아 국민들에겐 절대적인 존재들이죠.

중세 근세 내려오며 벌인 러시아 황실과 귀족들 간의 얽히고 설킨 권력다툼은 정말 볼만합니다.

"기대하시라! 액션/스릴/서스펜스/러브 大 로망!"

특히나 황제 자리를 놓고 벌였던 골육상쟁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잔혹했습니다.

 

제가 제 러시아 여행기 후반부에 <예카테리나 女帝> 나오는데서 상세히 썼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누가 누구였는지 헷깔립니다만,

어렴풋 기억나기론  저 <소피아 엘렉세예브나>란 여자는 독일 지방 영주의 딸이었는데,

결혼하고는 제 나라보다도 러시아를 더 걱정하고 사랑했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았죠.

지금 레핀의 평가는 거기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표트르 대제는 개혁 절대군주로서 왕권 확립과 러시아 위상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공은 큽니다만,

반대로 전쟁과 건설에 동원돼야 했던 국민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지금 저 창문 밖에 걸려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자신의 친위부대 장교들 모가지를 주렁주렁 매단 것입니다.

 

 

 

(그림 3)

 

레핀의 그림 설명을 듣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수사가 있습니다.

"기념비적인 작품!"

제가 지금까지 읽으면서 아는 것만해도, <볼가 강의 뱃사람들> <부주교 초상화> <십자가 행렬>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편지 쓰는 카자크들>........ ,,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을 이렇게 봐서 그렇지, 도판으로 크게 보면 정말 멋있습니다.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말에 끄덕이게 됩니다.

저 많은 군중들의 의상이나 자세나 표정이 전부 제 각각입니다.

일일이 스케치를 해서 모자이크 하듯이 끼워맞춘 겁니다.

 

저는 레핀의 그림 모두가  다 좋습니다. 

다른 화가들의 경우는 전체 작품 중에서 20~30%정도만 맘에 드는데,

이 레핀의 그림만은 90% 이상이 맘에 쏙 듭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골라봐라 한다면...서슴없이,

<터키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들>로 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나중에 자세히, 몇개로 나눠서 다뤄볼 생각입니다.

제 맘에 쏙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