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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루벤스 & 카라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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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1577~1640)는 카라바조(1573~1610)의 미술을 잘 알고 있었으며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루벤스는 플랑드르로 돌아온 때로부터 수년이 지나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을 모작한다. 원작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표현은 더 자유롭게 느껴진다. 카라바조에 대해 루벤스가 지니고 있었던 높은 평가는 그의 작품 <성모의 죽음>(루브르 박물관)을 빈첸초 공작으로 하여금 금화 280스쿠도에 사도록 권유한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루벤스』: 콘스탄티노 포르쿠 외 지음. 이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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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 & 카라바조

 

 

 

 

                                                 루벤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1611-1614

 

 

 

루벤스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교성이 좋아서 승승장구했던 사람입니다.

당대에도 인기가 좋았던 국제적 인기 화가이자 수완 좋은 사업가로, 궁정화가 겸 외교관으로......

구매자가 원하는대로, 상황이 바뀌면 또 바뀌는대로......

짝퉁을 방비하느라 판화로 만들기도 하고...... 하여, 공방에 조수가 수백 명이었다는.......

 

이러한 루벤스가 카라바조를 높이 평가했다잖습니까.

그래서 많은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모작하고, 거금을 주고 사기까지도 했다는.

그런데 카라바조가 루벤스보다 많이 앞선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동시대 사람이예요.

카라바조 1573 - 1610년 / / 루벤스 1577 - 1640년.

20대에 함께 이태리에서 활동했던 사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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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을 보면 카라바조의 냄새가 물씬 나죠.

우측 상단에 있는 사람의 인물상도 그렇습니다만,

예수를 그린 걸 보면 완전 ‘카라바조 버전’이예요.

얼굴을 잘 보십시요, 어디선가 본 듯하지 않습니까? ─> 바로 카라바조입니다.

 

 

 

  카라바조 

 

 

 

카라바조가 자기 얼굴을 그린 것도 있었죠. 말하자면 자화상인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이란 그림에서의 골리앗.

 

 

 

 

 

 

어떻습니까?  카라바조 = 골리앗 = 예수,,

교황청에서 눈치를 못 챘나봐요. 알아더라면 당장 모가지가 날아갔겠죠.

카라바조의 작품은 이런식으로 불온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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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루벤스는 카라바조에 껨이 안됩니다.

카라바조는 창조적 재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에 맞서 항거를 했었죠.

(카라바조가 성격이 포학하네 어쩌네 했다는데, 100% 믿지를 못하겠어요.)

그의 작품엔 이런 식의 비아냥이 숨겨져 있어요.

화가로서의 자부심도 교황과 대척할만큼 대단했었지요.

그림으로 입신출세하려던 루벤스와는 격이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카라바조,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 1602-3

  

 

자, 카라바조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의 그림을 한번 볼까요?

죽은 예수 얼굴과 마주 대하고 있는 어두컴컴한 화면 속의 젊은이 보이시죠?

이 부분이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잘 보세요,, 젊은이가 날카롭게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어요.

그래서 카라바조가 일부러 어둡게 그린 겁니다.

 

 

카라바조는 이태리 르네상스 후기 사람이죠. 바로크로 넘어가는...

그의 고뇌는 단순히 종교의 허구성에만 머문 게 아니었습니다.

르네상스 반동으로 표현의 자유가 좌절되었던, 깨어있는 지식인들의 총체적 절망이라고나 할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눈치 못 채게 항거했을 뿐이죠.

 

그러니까 카라바조가 수 백년을 앞서 간 사람이 아니라,

그의 사고와 업적이 수백 년간 잊혀졌거나 과소평가된 거라고 봐야 합니다.

르네상스 속에서의 지식인들의 좌절이 생각할수록 안타까와요.

 

 


↙ 참고로,

루벤스가 모사했다는 카라바조의 그림,「성모의 죽음」(1604)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년 2월 12일.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