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생관 최북 (毫生館 崔北)1712~1786
최북(崔北)에 관하여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도 꼭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습디다. 천재라는 것, 성격이 괴팍하다는 것, 술꾼이라는 것, 가난하다는 것,, 천재라는 말은 요즘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하고요, 아마도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떠벌리고 다닌 데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정을 안해주니까 제 눈을 찔르는 등의 자해행위를 했겠지요. 자, 무엇일까요? 최북은 무엇을 가지고 자기가 최고라고 주장할 수가 있었는지, 왜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인정해주지를 않았는지. 여기서 최고니 천재니 하는 얘기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누구와 비교를 했단 것인지... 우리 함께 추리를 한번 해보십시다. 강세황(姜世晃,1713~1791) 정선(鄭歚,1676~1759) 김홍도(1745~?) 신윤복(1758~?) 잘 알다시피 18세기를 수놓은 조선의 대표적인 화가들입니다.
자, 표암 강세황부터 봅시다.
강세황의 초상화를 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습니다만, 빈틈 없게 생기신 분입니다. 서화에 있어서 본인의 기예도 뛰어났지만 그보다는 당대 최고의 감식가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단원 김홍도도 그 분에게 발탁돼서 도화서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일일이 확인할 시간이 없어서 대충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최북이도 표암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했을 개연성이 충분한데 표암이 최북같은 주정뱅이를 인정을 해줬을 리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최고 평론가의 눈에 벗어났으니 화가로서 끝난 셈이었겠지요. 일단 강세황은 최북이 저주하던「세상사람」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음은 겸재 정선 차례입니다.
최북이 정선파라고 되어있더군요. 당시의 사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과 같은 '화파(畵派)'로서는 보기가 어려울 겁니다. 다시 말해서 선후배 관계가 기득권으로써 얽혀 있는 것이 아니라, 화풍이 그렇다는 정도겠지요. 인맥의 연관도 없고, 직접 사사를 받은 것도 아니니까 정선이라고 해서 최북이 기 죽진 않았을 겁니다. 다만 "너는 죽었다 깨나도 정선한테는 어림도 없어!"라는 소리를 들었을 수는 있는데, 그렇더라도 40년이나 연배가 앞서는 정선을 경쟁자로 봤다는 것은 다소 무리 같습니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화가로서 20세부터 활약을 했다고 치면, 단원은 1765년부터, 혜원은 1778년부터가 됩니다. 그리고 호생관 최북은 1786년에 죽었습니다. 대략 단원은 20년, 혜원은 10년이란 기간 동안 최북(崔北)과 한 무대에서 뛰었겠군요. 김홍도가 1771년(영조 47년)에 왕세손 이산(정조)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26살 때입니다. (최북은 59세.) 그렇다면 김홍도는 이미 스무살 전부터 깃발 날렸을 겁니다. 최북이 시기질투할만 합니다만, 그러나 최북은 도화서 화원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질투가 가능한 일일까요? 가능할 겁니다. 당시에는 입시부정이 많았을테니까, 깜도 못되는 화원이 많았다고 봐야지요. 그렇지만 일단 도화서 화원이 된 다음부터는 재조· 재야 간에 실력차 확 벌어졌을 겁니다. 그런 와중에 혜원 신윤복까지 등장했으니 절망적이었겠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중의 인기도에 따라서 그림값이 크게 차이가 났거든요. 김홍도 같은 경우에는 그림 한 장에 집 한 채 값이라잖습니까? 야마 돌았겠죠. 그림 판 돈으로 술만 쳐마셨다는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거나 어쩌거나 최북이 '나 같은 천재를 몰라준다'고 한 말은 전후사정을 감안할 때, 아마도 김홍도를 타킷으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어딜 감히 김홍도에다 견주냐고 힐난할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제 생각에 이 문제는 선입견만 가지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최북이 김홍도의 명성에 가려서 덜 알려진, 또는 폄하된 부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에서야 최북의 그림을 자세히 봤는데 뛰어난 작품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풍설야귀도(風雪夜歸圖)》같은 작품은 눈이 번쩍 뜨이도록 훌륭합니다. 거꾸로 과연 단원의 그림 중에 그와 견줄만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정선의 어떤 그림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마찬가지로 듭니다. 적어도 산수화 부분에 대해서는 김홍도의 그림과 비교를 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난(蘭) 그림도 뛰어나구요. 전문가들이 한번 일대일로 붙여놓고 우열을 가리는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踏雪訪友
금강산 표훈사
공산무인도
"空山無人水流花開" (빈 산 찾는 이 없지만 물은 흐르고 꽃이 핀다) 「자신의 심경을 사람 없는 초막에 채워놓았다.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고 이처럼 빼어난 작품으로 조롱했던 것이다. 나무의 일부처럼 휘갈겨 쓴 화제에서 그런 심사가 엿보인다.」(전준엽)
한 눈에 봐도 그림이 짤렸지요? 가로 세로 다 짤려나갔습니다.
금강산 표훈사
조어산수
서치홍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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