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눈과 언어가 아닌 내 눈으로 봤을 때 기쁜 것이야말로 진짜 명화인 것이다.
말로는 쉽지만 자신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 섞여 살고 있는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언제나 보이지 않는 교육을 받고 있다.
그것은 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때론 방해가 되기도 한다.
특히 그림을 볼 때 자신의 눈을 차단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카세가와 겐페이, 《명화독본(名畵讀本)》
저 양반이 이 책「명화독본(名畵讀本)」을 낼 때의 나이가 55세였다는군요.
딱, 제 나이 땝니다.
그래 그런지 저와 통하는 데가 많습니다.
지식이야 제가 터무니 없이 부족할테지만 그래도 저이가 뭐라고 하는 말들이 쏙쏙 들어옵니다.
우연스럽게도, 제가 평소 그림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과 거의 일치합니다.
이제「명화(名畵)」판별하는 법을 소개할텐데, 이것도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제가 어제 포스팅하면서 두 가지를 얘기했었죠.
하나,「내 눈으로 본다. 내게 즐거운 그림이래야 명화다.」
둘,「돈 주고 그림을 사서 안방에다 건다고 가정하고 봐라.」
오늘도 두 가지입니다.
셋,「전시관에서 그림 감상을 할 때 '속보감상'을 해라.」
'내 눈으로 본다'는 말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가서 빠른 걸음으로 스쳐지나가듯이 보라는 겁니다.
별로라고 생각되는 그림 앞에서는 괜히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고,
휙 휙 지나가다가 멈칫하게 잡아당기는 그림이 있을 때,
그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봐라.
볼수록 무언가 계속 끌리거든 그 그림이 명화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속보감상>은 눈도 팽팽하게 긴장하고, 감각도 춤을 춘다.
모든 그림을 동등한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좋은 작품을 빠르게 간파할 수 있다."
- 이 점은 인터넷으로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넷,「그림을 직접 그려보라.」
저도 그림을 보면서 바로 이 점에서 한계에 부닥친 적이 많습니다.
특히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재료나 도구, 기법만으로도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점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질감을 느낄 수 있으려면 자기가 직접 그려보는 방법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림은 감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그리는 것이다.
따라서 직접 그려보지 않으면 완벽하게 감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못 그리거나와 관계없이 일단 물감을 사용해 보면,
아, 저 감촉이 이것이구나, 하는 식으로 화가의 입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감촉 뿐이 아니다.
하늘색을 만들어 내는 어려움, 나무의 생생한 느낌을 표현해 내는 어려움 등을
자신이 직접 체험했을 때 비로소 그림의 묘미를 알 수 있다.
이는 야구공을 직접 던져본 사람이 프로야구 보는 재미가 몇 배로 늘어나는 것처럼
스포츠, 음악, 문학, 사진 등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림 감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꼭 그려볼 것을 권하고 싶다.
캔버스의 탄력과 유화물감의 감촉 등, 어떤 명화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최초의 관문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 얘기는 직접 전시관을 가서 봤을 때나 해당하는 것이지,
인쇄매체나 인터넷상의 사진상태로 보는 것은 해당 안되죠.
다섯, 아카세가와 겐페이氏의 결론입니다.
"명화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을 말한다.
명화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명화라는 명성에 질린 게 아닐까.
명화라는 명성만 보고 그림은 보지 않은 게 아닐까.
반대로 명화이기 때문에 본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겠지만, '명화이기 때문에' 보는 것 역시 명화라는 명성만 감상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단지 명화라는 이유 하나에 만족하고 정작 그림은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
미술에 대해서 평론하는 것도 역시 일본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글이나 책제목을 일일이 기억 못합니다만, 제가 이것저것 꽤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그림 해설 책은 그림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화가와 연관된 그림 외적인 얘기를 나열하는 식으로, 에둘르고, 방관자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설명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해서 어느 한 책만 보면 그 다음 책들은 건성으로 봐도 충분하더군요.
자신의 느낌이나 의견을 쓰는 사람은 드물고, 어디선가 베껴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누가 더 맵시 있게 쓰느냐....?
그런데 이 아카세가와 겐페이라는 일본사람이 쓴 책은 확연히 다릅니다.
베낀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쓴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화가에 대한 이력은 앞에다가 불과 몇줄 안 씁니다.
책의 내용 전부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생각을 쓴 거예요.
모델이 애인이니 누구니 하는 식으로 페이지나 채우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미술 평론가들의 말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였답니다.
챙피한 일이지만 그걸 지식이라고 떠벌리고 다닌 적도 있었고요.
이젠 그렇게 안하려고 합니다.
소위 미술 평론가라는 사람들의 판에 박힌 설명보다는 오히려 제 견해가 참신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기죽을 이유가 없더군요.
제 몫이 아직도 남아있단 걸 알았습니다.
일부러 평론가와 다르게 비틀어서 보면 감상이 더 재밌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겠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미술관을 찾아가서 많은 그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만 내공이 제대로 쌓일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봐서 아는 것하고, 직접 실물을 본 것하고는 차이가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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