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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내 맘대로 그림 읽기

고흐 작품 경매에 대한 단상

  

 

1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검정색과 흰색같은 무채색은 쓰는 게 아니라구요.

그리고 형체는 색감만으로 나타내는 것이지 경계를 선으로 그려서 표시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라고 배웠습니다.

말하자면 위에 저 나무그림처럼 검정색으로 테두리를 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때 미술대회에 나갔더랬습니다. 전국규모는 아니고 도(道) 대회였습니다.

수채와와 파스텔화 두 부문으로 겨뤘는데, 저는 파스텔을 선택했습니다.

대회 장소가 뭔 절이었습니다. 고색창연한 대웅전의 기와지붕이 인상 깊어서 그걸 그리기로 했습니다.

청보라 계통으로 칠을 했는데, 색이 아주 맘에 들게 나왔습니다. 예감도 좋았구요.

중요한 데는 다 그리고 적당히 뒷배경만 그려서 마무리하면 됐는데,

웬걸, 다 칠하고나니까 어디가 절이고 어디가 산인지 구별이 안되게 색이 뭉뚱그려져 있는 겁니다.

두 세발짝 떨어져서 보면 형체를 어렴풋 알 수 있긴 한데, 그 정도로 될 일이 아닙니다. 

망연자실해 하는 중인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길래 돌아보니 미술 선생님이 서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다짜고짜 검정색 파스텔을 뺏아쥐시더니 지붕선을 카터칼로 자르듯이 확 거버리시더라구요.

그러곤 됐다고 제출하랍니다.

상탔습니다. 함께 갔던 미술부원 중에서 저 혼자만 상을 탔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그 미술 선생님이 <고흐>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눈이 움푹 들어가서 눈동자도 잘 안보일 정도였는데, 눈빛만은 번쩍번쩍했습니다.

총명한 눈빛이란 뜻이 아니라 미친 사람의 눈빛 말입니다.

발음도, 어눌하다고 해야 할지 궐궐하다고 해야 할지, 또렷하지가 않았습니다.

밤에 만나면 무서웠습니다.

미술시간이래야 칠판에다 가르치는 건 전혀 없었고 그림만 그리라고 시켰습니다.

나중에 들리는 풍문으로는 당시에도 심한 알콜 중독자였고,

어느 학교로 전근을 한 번인가 두 번 옮겨가서는 거기서 돌아가셨다더군요.

<고흐>가 죽던 나이쯤 되셨을 겁니다.

 

  

 

 

2

 

   

 (연합뉴스) 이상인 특파원 =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실하기 몇주 전에 남긴 어린 아이 초상화 1점이90여년만에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라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1일 보도했다. 추정가는 약 280억원.

 

 

 

경매시장에서 고흐의 그림이 젤 비싸게 팔린다면서요?

왜지요? 고흐의 그림이 저토록 높게 평가받는 이유가 뭡니까?

지나치게 '고평가(高評價)' 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보셨습니까?   

고흐의 그림에서 고품격의 지성이나 인간미, 또는 휴머니티같은 것이 느껴지십니까?

고흐의 그림에서 천재가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기법이 놀랍습니까? 

<고흐>의 어떤 그림이 영혼을 이끌어줍디까?

양심에 채찍질을 해주는 작품이 있습디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세상의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해줍디까?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스스로도 주체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로 말하자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인격수양'과는 거리가 먼 듯 보입니다.

'고흐의 고뇌'요?

살면서, 특히 예술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 <고흐>만한 고뇌를 안해본 사람 있을까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이 인기라니까 그 중에서도 화풍이 특출난 <고흐>의 그림이 비싸게 팔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고흐>의 그림을 한 점 샀다고 칩시다. 어디에 걸겠습니까?

저 불안한 그림들을 거실에 걸겠습니까? 서재에 걸겠습니까? 침실에 걸겠습니까?

지난 여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온통 <고흐>그림으로 인테리어를 해논 레스토랑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레스토랑이나 스탠드바에나 잘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개인이 소장한다는 것은 순전히 과시용이란 생각입니다.

물론 미술관이야 논외지요. ▒

 

   

 

 

3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기쁘거나 슬픈 감정들, 

때론 현장에서의 경험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들,

또는 <고흐>하면 따라다닌다는 '고뇌'같은 것. 등등등.

그걸 밖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 예술가겠지요. 시각적이건 소리로건.

보통 사람은 그런 재주가 없잖습니까? 역시 재능의 영역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답게,, 슬픔은 더 슬프게,, 고뇌는 더 큰 고뇌로,,,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거기서부터는 기술이 아니라 창조 · 예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예술적인 재능이나 그가 이룬 업적과, 인품은 사뭇 다르더군요.

옹졸한 사람도 많고, 아주 뻔뻔한 사람도 많습니다. 

개중엔 미쳐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흐>가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했다는데, (정신병이란 기준을 따지고 들면 골치 아프긴한데,)

여러분은 언제부터 그렇게 정신병자의 세계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으셨습니까?

일반 정신병자들에 대한 이해의 연장선상에서입니까?

아니면 고흐만의 특별한 배려입니가?

 

 

 

저는 <고흐>를 이해는 하지만 넋놓고 환호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 관점이 다를 것입니다.

다만, 좋으면 왜 좋은지, 싫으면 왜 싫은지, 좋고 싫은 내 마음의 정체는 분명히 밝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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