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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펌글 · 자료/문학

마당 이야기 #2

 

 

 

 

 

 

 

 

겨울 마당은 감상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

겨울 마당은 따뜻한 방 안에 앉아서

참을 만큼 한기가 느껴지는 하얀 문창호지에 코를 박고

손바닥만한 유리창으로

거리감을 두며 바라볼 때에 참맛이 있다.

 

그렇게 하노라면 마당으로 잠시 날아왔다 떠나는 새들이며,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빠른 몸의 생쥐들이며,

잠깐씩 머물다 가는 햇살도 괜찮은 구경거리가 된다.

집이 부유하여 넓은 통창이라도 있다면

방 안에서 유리창으로 느끼는 이런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방 안이 아니라도 좋다.

햇볕이 잘 드는 마루 끝에 앉아

창 없이 마당과 적절한 미적 거리를 유지하고

하염없이 그 세계를 완상하듯 바라보는 일도 꽤 즐겁다.

그때 우리의 눈엔 무게 없는 풍경들이 그림처럼 흐르고 머물다 간다.

 

 ..........

                   

이렇게 너무 추운 곳은

조금 덜 추운 곳에 몸을 숨기고

눈으로만 그곳을 바라볼 때에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하노라면

대상은 현실이 아닌 풍경으로 변모하고

그렇게 변모한 풍경 앞에서

우리는 오랫만에 현실에서 비껴선 자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언제나 힘이 있고 절박하다.

그러나 너무 가혹한 현실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현실에서 조금 벗어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세계와 시간이 필요하다.

방 안에서,

햇살 드는 마루에서,

추운 겨울 마당을 비현실적인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에는

바로 이런 효용이 있다.  

 

 

- 정효구, 마당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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