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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펌글 · 자료/문학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

 

 

르 클레지오, 사라져가는 문명 증언한 ‘문학의 구도자'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68)는 일찌감치 수상이 점쳐지던 강력한 후보였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지한파 작가인 그는 지난주까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환교수로 1년간 한국에

체류해 국내 문단과 독자들로서는 그의 수상소식이 더욱 남다르다.

스웨덴 한림원은 “르 클레지오가 실험적인 소설과 에세이는 물론 아동문학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며

“그는 인간성 탐구와 관능적 환희, 시적 모험, 새로운 출발 등에 몰두한 작가”라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1980년작 <사막>에 대해서는 “이민자들의 눈에 비친 북아메리카의 잃어버린 문화가 잘 그려져 있다”고 평가했다.

 

 

 

 

 

 

또 40개의 작품 중 <사랑하는 대지> <도피의 서> <전쟁> <거인들> 을 주요작으로 꼽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을 접한 르 클레지오는 스웨덴 공영라디오를 통해 “매우 감동받았다. 큰 영광이다”라고 짧게 밝혔다.

이에 앞서 프랑스 엥테르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는 “상을 받는다는 건 시간을 얻는다는 걸 의미하며 글을 계속 쓰고자 하는

욕망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2000년 중국 출신으로 프랑스로 망명한 가오싱젠 이후 8년 만이다.

‘문학의 구도자’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는 1940년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태어나 영국 브리스틀대를 졸업했다.

 63년 등단작 <조서>로 저명한 르노도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 문단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거인들>(1973년), <저편으로의 여행>(1975년) 등에 이어 <사막>(1980년)을 발표하면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94년에는 리르지가 선정한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뽑혔다.

그는 ‘누보 로망’ 계열의 작가로 출발했지만 곧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소설은 거대하고 서사적인 세계를 그리는 대신 작은 모험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리얼리티를 우화로 표현한다.

동시에 평온하게 보이는 사물의 외관을 파고들어 인간의 내적 무질서 및 세상과의 불화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비서구적이고 친자연적인 그의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철학에세이, 종교적 성찰이나 명상,

때로는 주술사의 마술 같은 언어를 통해 현대사회에 맞서 약자와 피지배자, 자연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 인디언, 모리셔스섬의 아프리카인 등 역사적인 아픔을 겪은 민족이나 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의 글쓰기 여정은 문명과 도시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증언하던 초기 작품에서 시작해

서구사회에 대한 비판과 거부, 외부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으로 나간다.

이어 인디언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세계 속의 뿌리내림을 경험하고, 마침내 기원으로 회귀하는 문학적 여정을 겪는다.

이런 문학세계는 그의 생애로부터 구축된 것이다.

그의 가족은 프랑스 혁명기에 본국을 떠나 아프리카의 모리셔스 군도로 옮겨갔다.

프랑스계인 어머니가 영국인 아버지와 결혼한 뒤 니스로 건너가 그를 낳았으며

여덟살 때는 아버지가 의무장교로 일하던 영국령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영어를 배웠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 태국 방콕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불교와 선의 세계를 접했고

멕시코·파나마 체류를 통해 인디언 문화에 침잠했다.

정주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모리셔스에 사는 프랑스인이라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하면서

“도도새가 멸종되듯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 이 문화를 증언하는 것”을 문학적 임무로 삼았다.

그가 한국문화에 호기심을 갖고 장기간 한국에 체류한 배경에는 이런 개인적 성향이 작용했다.

그는 검소하고 겸손하며 치밀한 성품으로 주변에 감동을 주는 인물이다.

최근 그를 지켜본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작은 여행가방 하나를 갖고 와서 국제학생기숙사에서

정말 단출하게 살았다. 스웨터에 구멍이 뚫려있을 정도였다.

학생들보다 더 일찍 강의실에 도착해 기다리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가장 늦게 나왔다”고 말했다.

<조서> <혁명> <황금물고기> <사막> <아프리카인> 등 주요 작품 20여편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운주사 가을비

 

                     - 르 클레지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분이었으나 한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단풍속에

구름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불이

숲의 잔가지들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꾸실까?

 

( … 중략 … )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서울-파리

2001년 10월 22일

 

 

*로아의 신 : 곧은 콧대에, 반원형 눈썹을 한, 긴 얼굴의 이 아프리카의 신은 아이티를 거쳐서 한국 불교의 평심 속에도 발견된다.

*번역 :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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