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windshoe.new21.org
체 게바라. 본명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이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이 과연 어느 때부터인지 내 기억의 창고를 아무리 뒤져봐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벌써 그렇게 나이가 들어버린 것일까? 하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고등학생 무렵, 이 사람처럼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숱한 다짐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직업 혁명가로서 그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모델이었고, 세계사 위인 전기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보다 더 멋있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에 대규모 폭격을 자행하여 비무장의 민간인까지 학살하고, 핵폭탄 사용을 강력히 주장했던 더글라스 맥아더를 존경했었다.(물론 그 시기엔 그런 사실을 몰랐다.) 더글라스 맥아더로부터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까지의 간격은 또 얼마나 멀고 먼 것이었으며 그러기까지 나의 삶은 또 얼마나 멀리 유랑해온 것일까?
원래 지금의 홈페이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만들기 전에 나는 체 게바라에 대한 홈 페이지를 만들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미 좋은 페이지가 있으므로 그와 중복되는 페이지를 굳이 또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더 좋은 홈페이지를 만들 수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인터넷의 기본정신은 지식과 정보의 공유라는 나의 믿음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링크라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은가? 지식과 정보는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것이며 그것이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더욱더 좋은 일이 아닌가? 애초 그에 대한 관심이 시작될 무렵 국내엔 그에 대한 자료들이 거의 없던 시기였다. 심지어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 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무덤이 알려지고 그의 유해가 송환되었고, 그의 생존을 원치 않았던 구소련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시기가 된 지금에 와서 그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과 그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지 말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반면에 이 글을 쓰고 있는 2001년 현재는 그의 유해가 발굴되어 쿠바로 송환(1997년)되었고, 국내에서도 그의 평전이 발간되어 비교적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난 뒤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그에 대한 간략한 전기적 지식을 나열하는 것(그렇다고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보다는 그에 관해서 평소 지니고 있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는 쪽으로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이다. 물론 그에 관한 좀 더 좋은 사이트가 있으므로 그 사이트를 소개하는 것 역시 잊지 않을 일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이 글은 게바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위한 것이다. 그에 관한 이 글은 대충 다음의 몇 가지 질문에서 비롯된다.
첫째, 체 게바라가 의사로서 안정된 삶의 지위를 떠나 직업혁명가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 했던 일은 무엇인가?, 셋째, 체 게바라가 쿠바 혁명 이후 안정된 직위와 안전을 버리고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 체 게바라가 꿈꾸었던 이상은 현재도 유효한가?,다섯째, 그에게 바쳐진 대중적이고 다소 상업적인 열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다. 이 글을 다 읽고 난 뒤 그런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을 드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생각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첫째, 체 게바라가 의사로서 안정된 삶의 지위를 떠나 직업혁명가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체 게바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체 게바라를 다른 혁명가들과 다른 존재로 우리들에게 인식시키게 된 계기는 그가 언제나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혁명의 최일선에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1928년 6월 14일, 아르헨티나의 로자리오에서 미숙아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르네스토 게바라 린치는 귀족의 후손이었고, 어머니 세실리아 데 라 세르나 역시 독립전쟁 당시의 군인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집안은 자유주의적 좌파에 속하는 무신론자들이었다. 그의 집안이 비록 부르주아 출신이었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안은 아니었다.
평생동안 체 게바라를 괴롭힌 천식은 그의 나이 두 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천식을 앓자 그의 가족은 아들의 건강을 위해 코르도바(근처의 알타그라시아)로 이사를 했고, 아들의 건강을 위해 그의 아버지는 에르네스토에게 여러 가지 운동을 가르쳤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옷차림이나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소탈하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종종 고독을 즐기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공부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청년 게바라는 모험을 즐기는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나이 17세 무렵 모터를 붙인 자전거를 이용해 아르헨티나 중부 지방을 여행하는 등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이 여행 후에 자동차 운전과 비행기 조종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1950년에 이혼하고 만다. 그는 어려워진 집안 살림 때문에 스스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94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자신의 지병인 천식으로 인해 그의 관심이 의학에 쏠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는 기회만 있으면 여행을 떠났다. 1952년에는 같은 의대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스(알베르토는 그보다 나이도 많고, 체 게바라에게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게 해준 인물이다)와 10개월여 동안 모터사이클을 이용해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한다. 그는 이때 갖은 고생을 하며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비참한 삶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특히 상파울루 나환자촌에서의 노동을 통해 "인간의 사랑과 유대감은 고독하고 절망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떠나 잠시 미국의 마이애미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는 이때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관계 속에 그 실상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는 귀국한 후, 의학공부에 몰입하여 1953년 3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게바라는 라틴 아메리카 여행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이 처한 현실과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미래가 보장된 의사에서 급진적인 혁명가로 변모하게 되었다. 의사가 된지 두 달만에 게바라는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새로운 정권이 수립된 볼리비아로 갔다. 그러나 이 무렵까지 게바라의 주된 관심사는 아직 정치적인 문제에 가 있지는 않았다. 라틴 아메리카는 서서히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곪아터지기 직전이 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시도했던 개혁시도가 수구보수세력의 저항에 부딪치며 좌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개혁 시도가 좌절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게바라는 좀더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이념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런 그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1954년 콰테말라에서 벌어진다. 중남미의 작은 나라 과테말라의 선거에서 자유주의적 좌파인 하코보 아르벤즈가 승리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과테말라의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혁신적인 정책을 실시했으나 과테말라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유나이티드 프루츠가 대부분의 경작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아르벤즈는 그런 경작지를 국유화시킨 후 그것을 다시 인디오와 빈농에게 재분배하는 개혁을 실시하고자 했다. 게바라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런 아르벤즈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민중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 굶주려 있다"는 아르벤즈의 사상에 대한 경외심을 평생동안 간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아르벤즈 대통령의 경제개혁 조치는 미국의 경제적 이해와 충돌하게 된다.
미국은 이 당시부터 직접적인 무력 침공보다는 CIA에 의한 비밀공작을 통해 제3세계를 지배하려는 공작을 펼치게 되는데 그 첫 무대가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정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해줄 우파 인물인 호세 카스티요 아마스를 통해 과테말라 내에서 군부 쿠데타를 획책한다. 그리고 이런 군부 쿠데타에 앞서 괴벨스에게서 배웠음에 틀림이 없는 정치적 선전공작을 펼친다. 그것은 방송과 언론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유언비어와 악소문을 퍼뜨리며 과테말라의 합법적인 정부를 흔들어 놓는다. 가령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퍼뜨린다던지, 특정 지역을 점령했다던지 하는 식의 소문을 퍼뜨려 우파 쿠데타에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과테말라의 사례를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군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는 독재자들은 거의 대개가 미국의 군사학교 출신이라는 점, 합법적인 선거에 의한 정부라 할지라도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헌법을 수호해야할 책임이 있는 군대, 경찰, 의회가 등을 돌리거나 방관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은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편을 참조하시길) 결국 과테말라의 아르벤즈 정권은 무너지고 만다. 아르벤즈는 미처 피신할 틈도 없었고, 게바라는 이때 처음 무기를 들고 저항을 시도했으나 그들의 저항은 애초부터 상대도 되지 못했다.
게바라가 평온할 수도 있었던 자신의 행로를 포기하고, 혁명의 일선으로 달려나가게 된 것은 무엇보다 그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중요성을 깊이 깨우쳤기 때문이었다. 과테말라 정부의 전복이 계기가 되어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학습을 시작했다. 이 학습을 통해 알게된 것은 가난하고 착취받는 나라의 혁명정부는 계속적인 착취와 수탈을 위해 미제국주의와 결탁한 자본가 세력에 의해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과테말라 침공을 통해 게바라는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와 민중의 삶을 착취하는 현장을 목격했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와 세계 민중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피델과 나는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의 부대의 의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이미 내 자신의 다리가 라틴아메리카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고, 과테말라에서는 가장 잔인하게 숨통을 조였던 제국주의의 실체를 본 후였기 때문에 압제자에 대항하는 혁명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내 한 몸을 바치는 데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있을 수 없었다. 피델은 비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들이 세운 계획은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낙관적인 태도에 공감하게 되었다. 아무튼 혁명은 코앞에 닥친 현실이었고 온몸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울부짖기만 한다든지 대충 적당히 해치워버린다든지 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1957년 초, 우리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산악지방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라 플라타강 하구에 위치한 소규모의 병영(라 플라타 병영)을 습격하여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험준한 산간벽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알려져 쿠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습격은 게릴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투쟁의 준비가 완전히 끝났음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였고, 부대전체에 있어서는 앞으로 다가올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것이었다. 게릴라군은 이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혁명 이후 게바라를 비롯해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 쿠바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들이 쿠바를 사회주의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로 이끌 것인지는 쿠바를 바라보는 많은 나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혁명을 이끌었던 그들 자신도 분명히 결론짓지 못하고 있던 문제였다. 혁명이 성공한 뒤인 1959년 6월 게바라는 인도, 이집트, 인도네시아, 유고 등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는 이 때 완전히 자본주의적 방법도 아니고, 공산주의적 방법도 아닌 새로운 경제 정책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동서냉전의 첨예한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그의 낭만적인 경제정책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고, 그들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가 쿠바중앙은행 총재가 되지마자 행한 가장 첫번째 일은 자신의 월급을 5천 페소에서 1천 2백 페소로 줄인 일이었다. 이때까지 상황의 추이를 바라보며 계산기를 두드려대던 쿠바의 많은 부르주아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미국의 마이애미로 도망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쿠바의 지폐는 미국에서 인쇄되고 있었다. 혁명이 일어난 뒤 미국은 쿠바의 새로운 정부를 괴롭히기 위해 많은 지폐를 시중에 풀었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 결국 게바라는 지폐 인쇄를 체코에 맡겼고 지폐에 자신의 사인을 남겼다. 그는 밤을 세우며 일했지만 그의 경제정책이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2000년 - 20세기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해인 2000년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책이 바로 이 <체 게바라 평전>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이상 열기를 분석해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게바라는 분명 스타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소모되는 스타와는 달리 우리 속에서 되살아나는 스타라는 점에서 다르다. 게바라에 대한 이 책은 사실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의 삶에 덧씌워진 신화적 행동에 대한 탐구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그만큼 그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컸던 탓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이 지닌 약점은 당시 게바라를 둘러 싼 시대적 분위기나 정치적 현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지 않고, 다루고 있더라도 상당히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체 게바라의 라틴여행일기/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지음/ 이재석 옮김/ 이후/ 2000년 - 국내에서 구해 볼 수 있는 게바라의 저작물 중 거의 유일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예전에 그가 쓴 게릴라 전술에 관한 글이 다른 책에서 일부 삽입된 적은 있다. 이 책은 그가 모터 달린 자전거를 이용해 라틴 아메리카의 곳곳을 살펴보던 시절의 일기이다. 아직 게릴라가 되기 전 청년기의 게바라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체 게바라/ 장 코르미에 지음/ 은위영 옮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99/ 1999년 -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은퇴한(?) 독재자의 아들이 사장인 출판사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이 나온다. 장 코르미에는 유럽에서는 인정받는 게바라 전문가 중 하나이다. 다만 그의 글이 재미없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꼬집을 구석은 없다. 사실 고마워해야할 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우리는 게바라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체 게바라/ 유현숙 지음/ 자음과 모음/ 1997년 - 특이하게도 이 책은 국내 작가가 쓴 소설이다. 지난 97년에 대학로 샘터 서점에 서서 한참을 뒤적이다가 결국 사지 않고 뒤돌아서 나왔는데 나중에 구입하려고 했을 때 절판된 것을 알았다. 국내에는 꽤 많은 체 게바라 매니아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다른 매니아들과 다른 점은 삶에 있어서 그를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는 점일 것이다.
체 게바라 /리우스 지음/ 오월/1991년 - 불행히도 이 책이 지금도 나오는지 알 수 없다. 헌 책방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 시리즈를 구입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당시 오월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게는 추억의 책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알려드릴 것은 만화책이라는 사실이다. 아주 유익하므로...꼭 읽어보시길.
현대게릴라전 연구/ 오상카 외 지음/ 편집부 편역/ 세계/ 1985년 - 나로서는 추억의 책이다. 소비에트 빨치산부터 마오의 홍군 전술, 게바라, 알제리민족해방전선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그야말로 현대게릴라전 연구서이다. 상당히 오래 전 책이기 때문에 그동안 어디에 처박아두었는지 한참을 찾았다. 누가 뭐래도 게바라는 게릴라였다. 이 책에는 그와 쿠바 혁명가들의 혁명과정이 자세히 다뤄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이성형 편/ 까치/ 1999년
-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 까치 출판사에서 여러 좋은 출판물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국내의 라틴 아메리카 학회 소속 학자들이 각자 논문을 만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 이번 시몬 볼리바르에 대한 글은 그 중 전북대 송기도 교수님의 논문이 큰 힘이 되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 우석균 지음/ 민음사/ 2000년
- 위의 책이 약간의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입문서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간략한 통사와 더불어 문화, 예술, 환경 등에 대해서 곽재성, 우석균 두 명의 필자가 재미있게 잘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한 가지 장점을 더 추가하자면 인터넷 시대답게 관련된 사이트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을 꼽으라면 적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대충대충이 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옥에 티인 셈이고, 라틴 아메리카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은 이 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리란 생각이다.
『세계와 미국』-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 이삼성 지음/ 한길사/ 2001년
- 밀레니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한길사가 마음먹고 출판한(뭐 단순히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책이다. 이삼성 교수가 서문에서도 밝혀두고 있듯이 미국과 세계에 관한 연구는 단순한 정치사나 외교사적 서술일 수는 없다. 우리의 존재양식, 우리의 사유양식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의 문명에 대한 연구이다. 이 책은 미국에 대해 관심있는 이들은 물론 관심이 없는 이라도 꼭 읽어보아야할 좋은 책이다.
『20세기 사람들』/ 한겨레신문 문화부편/ 한겨레신문사/ 1995년
조국이냐 죽음이냐
나의 모든 혁명적 열정으로써 당신을 포옹합니다."
잘가시오.....안녕히........
당신의 영광스럽고 강한 손....역사를 겨냥하고 있네,
당신의 혁명, 당신의 사랑 ...강건한 팔,
'책 · 펌글 · 자료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언, 알래스카 인디언 [2] (0) | 2008.06.24 |
---|---|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문화재 (0) | 2008.06.23 |
처칠과 유머 (0) | 2008.02.10 |
제시 제임스 (0) | 2008.01.30 |
하상주 단대공정 (0) | 2008.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