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를 묻고 떠나려 하자, 노자는 전송하며
‘내가 듣건대 부귀한 사람은 재물로 전송하고 어진 이는 말로써 보낸다고 하오’
(吾聞富貴者送人以財, 仁人者送人以言)라 했다.(‘사기’)
자로(子路)가 길을 떠나기에 앞서 공자에게 인사를 하자
공자는‘네게 수레를 줄까, 아니면 말을 해줄까?’(贈汝以車乎, 以言乎)라고 했다. (‘說苑’)
공문이 적막하니 넌 집을 그리워했지 /
운방(雲房)에 인사하고 구화산(九華山)을 내려가렴 /
동무들과 죽마 타고 놀고픈 맘에 /
절집에서 불법 공부 뒷전이었지 /
시내에서 물 긷다가 달 부름도 그만이고 /
차 다리다 꽃 희롱할 그런 일도 없을 게다 /
잘 가거라, 자꾸 훌쩍이지 말고 /
노승에겐 안개와 노을이 있지 않으냐.
- ‘送童子下山’
신라의 김교각 스님(696~794)은 산문에서 동자를 내려보내며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아이는 왜 물을 긷다가 달을 불렀고, 차를 달이다가 꽃을 희롱했을까?
고향의 어머니와 가족이 그리웠던 것이다.
스님은 아이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법(法)이니 이(理)니 하는 건 모두 부질없다.
그걸 모두 감싸고 있는 건 정(情)이며, 아이에게 최상의 법이란 바로 어미의 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막상 내려가며 그간의 정 때문에 눈물을 훔친다.
이를 본 노승의 마음 또한 적잖이 흔들렸다.
노승은 못내 울며 떠난 아이를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 것이다.
물은 모두 달빛을 머금어 있고 /
구름을 아니 두른 산이 없단다 /
겹겹이 둘러싸인 산수의 맛을 /
널 보내며 두세 번 거듭 말하네.
조선후기 최눌(1717~1790) 스님이 산문을 나서는 사미에게 준 시이다.
그는 왜 산중의 아름다움을 누누이 얘기할까?
돌아오지 않을까 저어하기 때문이다.
왜 “꼭 돌아오렴!”이라고 말하지 못할까?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속내 말은 다 못하고 혼자 마음을 끓이는 것이다.
.
.
정신분석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어머니의 모태를 벗어나며 분리를 체험하고,
이때 생긴 외상은 평생 불안을 조성한다고.
탄생은 곧 분리의 아픔인 셈이다.
그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자주 마음을 줄수록 이별도 잦고,
사랑이 깊을수록 헤어짐의 상처 또한 깊게 마련이다.
세상에 갈라지지 않는 길이 어디 있으며,
그러니 이별의 사연이 그칠 날이 언제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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