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남한산성

2008. 5. 23. 12:03책 · 펌글 · 자료/문학




  청태종 홍타이지                                                                          




칸의 문장은 거침없고 꾸밈이 없었으며,

창으로 찌르듯 달려들었다.

그 문장은 번뜩이는 눈매에서 나온 듯했다.

내가 이미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랐으니,

땅 위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나를 황제로 여김은 천도(天道)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또 내가 칙(則)으로 命하고, 조(詔)로 가르치고, 스스로 짐(朕)(稱)함은

내게 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네가 명(明)을 황제라 칭하면서

너의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말하라.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지붕 밑에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는 까닭을 듣고자 한다.
하늘의 뜻이 땅 위의 대세(大勢)를 이루어 황제는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다.

네가 그 어두운 산골까지들어앉아서 천도를 경영하며 황제를 점지하느냐,

황제가 너에게서 비롯하며, 천하가 너에게서 말미암는 것이냐,

너는 대답하라.

 

……

……


너의 아들과 대신을 나에게 보내 기뻐서 스스로 따르는 뜻을 보여라.

너희의 두려움을 모르지 않거니와, 작은 두려움을 끝내 두려워하면

마침내 큰 두려움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임금이니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라.

너의 아들이 준수하고 총명하며,

대신들의 문장이 곱고 범절이 반듯해서 옥같이 맑다 하니 가까이 두려 한다.

내 어여삐 쓰다듬고 가르쳐서 너희의 충심(忠心)이 무르익어

아름다운 날에 마땅히 좋은 옷을 입혀서 돌려보내겠다.

대저 천자의 법도(法度)는 무의(武意)를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말먼지와 눈보라는 내 본래 즐기는 바가 아니다.

내가 너희의 궁벽한 강토를 짓밟아 네 백성들의 시체와 울음 속에서

나의 위엄을 드러낸다 하여도 그것을 어찌 상서롭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江)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軍馬)를 이끌고 건너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

 

……

…… 

 

조정은 얼어붙었다.

아무도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침묵은 얼어서 편전 땅 밑으로 깔리고,

그 위에서 언설은 불꽃으로 피어올랐다.


 

 

 

……

……

네가 기어이 나를 동쪽으로 부르는구나.

너희가 산성(山城)에 진(陣)을 치고 있나 하나, 나는 대로(大路)따라 너에게로 갈 것이니

너희들의 깊은 산성은 편안할 것이다.

너는 또 강화도로 가려느냐.

너의 강토를 다 내주고 바다 건너 작은 섬에 숨어서

한 조각 방석 위에 화로를 끼고 앉아 임금노릇을 하려느냐.

너희 나라가 유신(儒臣)들을 길러서 그 뜻이 개결하고, 몸이 청아하고, 말이 준절하다 하나

너희가 벼루로 성을 쌓고, 붓으로 창을 삼아 내 군마를 막으려 하느냐.






 쑨쯔 (청나라 세번째 황제)





내관이 용골대의 문서를 쟁반에 담아 서안에 올렸다.

임금은 신료들 쪽으로 서안을 밀쳐 냈다.


- 들어 보자. 읽으라.

병조판서 이성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신들은 차마 망측하여 읽을 수가 없나이다. 전하.

- 당상의 벼슬이 무거워서 적의 문서를 못 읽는가. 과인이 경들에게 읽어주랴?

- 전하. 무슨 그런 말씀을…….

임금이 승지를 불렀다.

승지가 당상의 뒷전에 꿇어앉아 용골대의 문서를 소리 내어 읽었다.

 



너희가 선비의 나라라더니 손님을 대하여 어찌 이리 무례하냐.

내가 군마를 이끌고 의주에 당도했을 때 너희 관아는 비어 있었고,

지방 수령이나 군장 중에 나와서 맞는 자가 없었다.

안주, 평양, 개성을 지날 때도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칸의 뜻을 전할 길이 없어 거듭 강을 건너 이처럼 멀리 내려오게 되었다.

 

너희가 나를 깊이 불러들여서 결국 너희의 마지막 성까지 이르렀으니,

너희 신료들 중에서 물정을 알고 말귀가 터진 자가 마땅히 나와서 나를 맞아야 하지 않겠느냐?

나의 말이 예(禮)에 비추어 어긋나는 것이냐.....  

 

승지가 마저 읽기를 머뭇거렸다.

 


너희 군신이 그 춥고 궁벽한 토굴 속으로 들어가

한사코 웅크리고 내다보지 않으니 답답하다.

 


승지가 읽기를 마치고 물러갔다.

임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적들이 답답하다는구나


            



           

  챈룽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성과 강토를 다 비워 놓고,

군신이 언 강 위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산성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나의 선대 황제 이래로 너희 군신이 준절하고 고매한 말로 나를 능멸하고

방자한 침월로 나를 적대함이 자심하였다.

이제 내가 군사를 이끌고 너의 담 밑에 당도하였는데,

네가 돌구멍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몸뚱이는 다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을 굴속으로 처박은 형국으로

천하를 외면하고 삶을 훔치려 하나, 내가 너를 놓아주겠느냐.
땅 위에 삶을 세울 수 있고,  빼앗을 수 있고, 또  구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을 훔칠 수는 없고, 거저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는 明을 아비로 섬겨. 너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려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
지금처럼 돌구멍 속에 처박혀 있어라.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말고 말하라.”



                                                                                                            


- 전하, 비가 올 만큼 왔으니 이제 해가 뜰 것이옵니다.

 

임금이 손바닥으로 마루를 쳤다.

 

- 군병이 얼고 젖으니, 병판은 해뜨기를 기다리는가?

이성구가 허리를 더욱 낮추었다.


- 전하, 백성은 사시와 더불어 사는 것이고 군병에서 풍찬노숙은 본래 그러한 것이옵니다.
해가 떠서 옷을 말리면 군사는 다시 원기를 회복할 것이옵니다. 성심을 굳게 하소서. 전하.

 

임금의 시선은 천장에 박혀 있었다.

 

- 병판이 가디라지 않아도 해는 뜬다. 떠서 적의 옷을 말릴 것이다. 어쩌면 좋겠느냐?

 

 

영의정 김류가 말했다.

 

- 전하, 자꾸 어쩌랴 어쩌랴 하지 마옵소서.
어쩌랴 어쩌랴 하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옵니다.

받들기 민망하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 알았다. 내 하지 않으마. 경들도 하나마나한 말을 하지 말라.

그러나 어찌해야 하지 않겠느냐?

 




      

                                                                                                          


- 전하, 지금 말들이 굶어죽고 있으나

이제라도 먹이면 오십 마리 정도는 부릴 수 있습니다.

말은 군사의 핵심입니다.

말이 없으면 어찌 군왕의 위엄을 세울 수 있으며,

먼저 지는 싸움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 가마니를 거두소서.

가마니를 풀어서 죽을 쑤어 말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이성구가 말했다.

 

- 말은 많이 먹은 짐승인지라 가마니를 썰어 먹여도 결국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군병의 추위가 더 절박한 일이오니……

 

김류가 이성구의 말을 가로챘다.

 

- 병판은 어찌 그리 아둔하오. 군병은 사람이고 말은 짐승이니.

사람은 그 뜻의 힘으로 견딜 것이고 짐승은 견디지 못하는 것이오.

병판은 마병 없이 싸우자는 게요?

 

임금은 여전히 화로의 불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하나, 군병의 언 몸을 덮어야 하지 않겠느냐.

 

김류가 말했다.

 

- 전하, 신인들 어찌 가마니가 아니라 숯불 화로 한 개씩을 총아마다 나누어주고 싶지 않겠사옵니까.

성처에 가마니를 나누어준들 곧 젖고 썩어서 못 쓰게 될 것입니다.

속히 거두어 말을 먹이게 하소서.

 

이성구가 말했다.

 

- 영상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으니, 전하. 어찌하오리까?

 

임금이 시선을 거두어 이성구를 바라보았다.

 

- 그것이 임금이 정할 일이냐?







가마니를 풀고 초가지붕을 벗겨서 말을 먹이는 자리 옆에서

번을 교대해서 내려온 군병들은 말뼈다구를 뜯고 있었다.

김류는 말과 군병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말을 삶는 김 속에서 군병들은 허겁지겁 먹었고, 말들은 느리게 먹었다.

허기를 면한 군병들이 멍석 위에 주저앉아 옷을 벗어 이를 잡았다.
토병들이 순청 마루에 앉은 김류를 향해 이죽거렸다.


- 영상대감도 말국 한 그릇 드시오. 말 내장이 아주 부드럽소.

 

- 아니, 말을 잡아주시려면 살 잡으시지 어찌 주려서 바싹 마른 뒤에 잡으시오.

 

- 깔개를 거두어 말을 먹이시고, 또 그 말을 잡아 소인들을 먹이시니,

소인들이 전하의 금지옥엽임을 알겠소이다.  

 

 

기한에 몰린 군병들은 겁 없이 시시덕거리며 영의정을 조롱했다.
비장이 군병을 꾸짖었다.

 
- 닥쳐라. 아가리를 찢겠다. 먹여주는 뜻을 어찌 모르느냐.

 

김류가 비장을 말렸다.

 

- 내버려 둬라. 모두가 나의 허물이다.

 

- 대감, 언짢아 마소서. 저 놈들은 어영청 군사가 아니고 무지한 향병들이옵니다. 

 

김류는 말없이 군병들을 노려보았다.

영의정의 시선을 받으면서 이를 잡던 토병이 또 이죽거렸다.

 

- 대감, 옥관자가 빛나는구려.

우리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가서 한판 크게 지휘해주시오.

 

군병들은 낄낄 웃었다.

 

그 날이 머지 않았는데, 버티는 힘이 다해서 성문을 열고 나가 투항하는 날,

저것들을 모두 청의 포로로 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 전에 싸움터로 내몰아 모두 없애야 하는지,
그 날까지 저것들을 먹일 수 있을 것인지

김류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것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김류는 생각했다.

 






                                                                                                                 
 

관량사는 부상자들에게 지급하는 곡물을 하루 세 홉 반에서 세 홉으로 줄이고

잡곡의 비율을 절반으로 올렸다.

춘궁기에 양식이 떨어진 민촌의 노약자들에게 주던 곡물 배급을 끊고,

싸우고 돌아온 자들에게 주던 포상 급식을 폐지했다.

그렇게 해서 스무날치 군량을 스물다섯 날 치로 늘릴 수 있다고 관량사는 어전에 고했다.

김류가 아뢰었다.


- 전하, 몫을 줄이면 날짜가 늘어나고, 날짜를 줄이면 몫이 커지는 것이온데,

끝날 날짜를 딱히 기약할 수 없으니

몫을 날짜에 맞추기도 어렵고, 날짜를 몫에 맞추기도 어렵사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 그렇겠구나. 경들이 뜻대로 시행하라…….








(항복문서를 누가 쓸 것인가.)
 

 

 

정육품은 붓을 들어 쓰기 시작했다.

임금에게 올리는 차자였다.

 


“신(臣)은 어려서 공맹(孔孟)과 퇴율(退栗)을 읽었으나 먼 말류(末流)를 더듬었고,

나이 들어서는 성은으로 출사하여 두메에서 목민(牧民) 하였으나 아무런 치적이 없었나이다.

(功) 없이 늙어가는 천한 몸에 병(病)마저 깊어서

하릴없이 성 안에 들어와 곡식을 축내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몸 안에 물기가 다 말라서 살갗이 비듬으로 부서져 흩어지고,

물을 자꾸 마셔도 이내 오줌으로 다 나와서 몸에 머물지를 못하옵니다.

음식을 보아도 입안이 말라서 침이 고이지 않는데

잠 잘 때는 공연히 침이 흘러나와 베개를 적시니 추악하옵고,

울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웃을 때는 겨우 눈물이 나오기 괴이하옵니다.

또 가끔씩 자다가 아래가 저절로 열리고 대소변이 새어나와 더러운 거름 위에 뒹굴고 있으니

어찌 국서(國書)를 적을 수 있으며, 어찌 어전에 나아갈 수 있겠나이까.

며칠 전에는 성첩(城諜)을 살피러 올라갔다가 빙판에 넘어지면서

인사불성이 되어 들것에 실려 내려왔사온데 ,

그 뒤로 눈이 핑핑 돌고 오장에서 화기(火氣)가 들끓어 앉도 서도 못하며

밤낮으로 망령이 보여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주절대고 있나이다.

정신이 혼미하고 몸이 아득해서 이미 문자(文字)를 다 잊어버렸고,

서책을 덮은지 오래되어 장구(長句)를 엮어 낼 도리가 없사옵니다.

더구나 빙판에서 넘어질 때 오른쪽 어깨를 삐어서 밥 숟가락조차 들기가 어렵나이다.
신의 더럽고 잔약한 육신을 불쌍히 여기시어 국서를 지으라시는 분부를 거두어주시고,

어명(御命)을 받들지 못하는 죄를 따로 다스려 주소서.

신의 몸에 내리시는 벌(罰)조차도 성은(聖恩)일진대,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나이다.”



 

 


 

이것 말고도 웃긴 대목 엄청 많습니다.

 

꼭 사서 보십시요. 진짜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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