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24. 11:37ㆍ책 · 펌글 · 자료/문학
글을 잘 쓰는 비법 |
글쓰기.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 말이다. 고교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글이 왜 그리 밋밋하고 매가리가 없는지. 콤플렉스 때문에 ‘작문용 단어장’을 따로 만들기까지 했다. 글로 벌어먹은 지 10년이 돼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는 나날이 줄지 않는다. 이번주 나온 신간 가운데 손이 간 책이다. ‘조선조 500년 글쓰기의 완성 이건창’이라는 부제에 혹했는지도 모르겠다. 명미당(明美堂) 이건창(1852~1898). 김택영, 황현과 함께 ‘구한말의 3대 문장가’로 꼽히는 인물이다. 15세에 문과에 합격, 최연소 과거 합격자 기록을 갈아치우고, 고종이 임오군란 때 청나라로 잡혀가는 대원군을 위해 주문(奏文, 임금에게 아뢰는 글)을 써달라고 찾았던 당대의 명문장가였다. 책은 이건창이 쓴 산문 50여편을 뽑아 옮기고 해설을 붙였는데, 특히 ‘문장론’이라 할 만한 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건창에게 작문은 “반드시 먼저 뜻을 얽어야” 하는 것이기에 “뜻이 연속하고 관통하게 하여, 분명하고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서 “어조사 따위의 쓸 데 없는 말을 구사할 겨를”이 없고, “속어 사용을 꺼릴 겨를”이 없다. 다만 “바른 뜻을 놓쳐버리는 것과 하고자 하는 말을 싣지 못했는가를 염려해야” 한다. 그는 또 “쉽고 단순해져야 정밀한 것이 온다”(‘정매하과록서’)라고 강조한다.
책 곳곳에 드러나는 글쓰기에 대한 이건창의 자세는 구도자의 그것과 흡사해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하루에 한 번 고쳐서 일 년에 몇 편을 짓고, 또 몇 편 중에서 산삭(刪削, 필요없는 글자나 글귀를 지움)해 남겨두는 것이 몇 편이 되게 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고칠 것이 없고 더 이상 산삭할 것이 없는 글이 바로 내 마음에 흡족한 글이 된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10년 세월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이다.
그는 또 “비록 천만 글자로 이루어진 장문일지라도 한 글자를 놓는 데 전전긍긍하여, 마치 짧은 율시 한 편을 짓듯이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선? “지은 글을 글상자에 던져두고 이삼일 밤 뒤에 남의 글 보듯이 엄정하게 하면 옳은 것은 즉시 옳게 보일 것이고 그른 것은 즉시 그르게 보일 것”이라는 답을 들려준다.
“작문에 어찌 비법이 있겠습니까? 독서를 많이 하고 많이 써보는 것뿐입니다” (이건창).
지당한 말씀이다. 비법이란 게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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