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큰아버지 얘기

2007. 7. 13. 08:06이런 저런 내 얘기들/내 얘기.. 하나

 

 

 

 전라도 큰아버지

 

 

                    

                          서상우 화백 畵

 
 

1.
 

아버지 사촌 형님이면 내게 5촌당숙이 되는 거쟈?
워낙에 친척이라곤 없이 살다보니 촌수도 잘 모른다 야.
내가 얼마 전에 익산에 초상치루러 간다고 하지 않았었냐?
그때 돌아가신 분이 바로 그 이 분이여.

참으로 착하게 살다가 가셨지.
동네 젊은이들이 다 나와서 山役해주면서 고인을 칭송하더라.

 


강원도 양구 · 인제 어간에서 사시다가 해방전후에 남으로 내려와서
지금의 대둔산 벌곡 수락리에다 자리를 잡으셨다더군.
6.25 전란때 인민군이나 남로당 본부가 전주에 있으면서 대둔산이 북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지.
대둔산, 모악산, 덕유산, 지리산......

대둔산 자락에 사는 사람치고 그들에게 밥 한 번 안 해 준 사람이 있겠냐. 

그러니 국군이 올라오면 빨갱이라고 죽임을 당하고,

다시 북한 인민군이 내려오면 이번엔 반동분자라고 죽임을 당하고,

(국군이 죽일 때는 재판이고 뭐고도 없었디야.

누군가가 지목하면 그걸로 끝.)

수락리 중턱쯤에다 저 묻힐 구덩이를 크게 파게 하고서는

거기에 몰아넣고 죽였다는데,

총으루 쏴 죽이다가 나중엔 총알이 아깝다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다가,

나중엔 산채로 막 파묻어버렸디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렇게 천 명도 넘게 죽었디야.

아니 수천 명이라던가?

 


다행인 건지 불행한 건지

그때 큰아버지는 마침  멀리 집을 떠나 있어서 화를 면했다누먼.

결국 그 집안에서 혼자만 살아남으신 거야.

돐 안된 젖먹이까지도 한 명 남김없이 몰살 당하셨으니 ─
모두가 열 한 분, 시체도 못 찾은 ─

그럼에도 빨갱이 소리 들을까 무서워

그런 사실조차 입에 못 올리고 평생 살았단 거.

 

 

내가 잘 알지만 큰아버진 공산당관 전혀 연관 없는 분이셔. 
그저 인정만 끝 간 데 없으신 분인데.....
참말로......ㅠ 

제사 지낼 때면 메를 열한 그릇을 퍼 놓는다더라.

그걸 보구 울 아버지도 많이 우셨다더군.

 


그런 연유로 해서 우린 그 분을 '전라도 큰아버지'라고 부르게 됐는데,,
내가 그 어른을 처음 뵌 건 한 30년이 채 안된다.
강원도 양구에 있는 큰댁에 구정인가 추석인가 아버지랑 갔었을 때여.
저녁상을 물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뭔 인기척이 나더라고.
"여기가 李元康씨 댁이냐"며 노인 한 분이 들어서는데,, 
덥썩!

어른들끼린 한 눈에 바로 알아보시더라니?!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었다 야!

몇 날 몇 밤을 새우며 얘기한들 

생사조차 모르며 살아온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끝이 나것냐. 
얼마나 사는 게 힘드셨으면 소식도 못 전하시고 ─.


연세로 보면 그 전라도 큰아버지가 세 분 사촌형제간 중에 중간이 되시는데, 
아주 팍 늙으셔서 젤 위 큰아버지 보다도  나이가 훨씬 위로 뵈드라. 
지금  그 자손들은 다들 잘 살고있지. 자식 넷이 모두 공무원이야.
형제들 모두가 直心이고 착혀. 
큰아버지가 재혼을 하셨으니 다들 내 동생이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상우화백 畵



2.

양촌에서 운주 가는 길에 보면 좌측으로 요즘에 세운 커다란 비석이 몇 개 있단다.
무슨 공적빈가 전승비라고 써있는데 그게 말썽인가 보더라.

내가 얼마 전에 거기서 우연히 그 공적비의 주인공을 만났었는데,
자기 말로 당시 대둔산 '빨갱이' 토벌대의 지대장이었다고 하더군.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나와 내 아버질 붙잡고 당시의 얘기들을 길게 떠벌리더라고.
바빠서 가야겠다는데도 놔주질 않는 겨.
그 바람에 자세한 사연을 알게 됐지만서두.


양촌이란 데도 대둔산의 남향자락이거든.
대둔산에서 죽은 사람이 수 천명이니까, 양촌에도 희생자 없는 집안이 드물지.
그런데 느닷없이 외짓 놈이 나타나서 전승비니 공적비니......하니,

동네 사람들 심사가 편컸냐? 

제막식하는 날

논산시 국회의원, 군수, 지역유지들  불러서 성대하게 한판 벌리려고 했던 모양인데,

동네사람들이 비석을 가려놓고 방해하는 바람에 불발 됐디야.
그러니 워쪄? 돈만 날린 거지.
결국 그 공적빈가 뭔가는 흉물이 돼버리고 만 셈인데,


자식들이 원해서 했겠냐?

즈 아버지가 토벌대 지대장 노릇한 걸 맨날 노래하고 사니까 입막음으로 했겠지. 

 

 

..........


이번 어버이날에 가봤더니 철거해서 안켠으로 옮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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